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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우리동네이야기 10]아쟁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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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우리동네이야기 10]아쟁이터
  • 박주환 기자
  • 승인 2014.08.11 11: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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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오류골 간이역 일대 아이들 병정놀이터

아쟁이터는 현 궁동 연세중앙교회 인근에 있던 자연마을로 경인로를 지나 가다가 수궁동으로 들어서는 초입의 어귀를 말하는데 이곳은 여러 가지 의미로 어린아이들과 인연이 깊은 곳이다.

명칭의 유래부터 남다르다. 당시 1899년부터 1909년 경 이 부근엔 오류골 간이역이 있었는데 이 지역에서 어린아이들이 모여 전쟁놀이와 병정놀이를 했기 때문에 아쟁이터라고 불렸다.

아이들이 이곳에 함께 놀기 위해 모였던 이유는 무엇보다 넓은 공간 때문이었다. 간이역이 생겼을 무렵 이곳엔 많은 아이들이 뛰어놀며 전쟁놀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평지가 펼쳐져 있었다고 한다.

또 철도 개통 초기에는 큰 기적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기차를 따라 달리기도 했다니 특별한 놀이문화가 없던 당시 아이들에겐 익숙하면서도 새롭고 신기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오류골 간이역은 오류동역으로 사람들이 몰리게 되자 끝내 폐쇄됐지만 아쟁이터라는 지명은 1990년대 까지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 하면 아쟁이터엔 슬픔이 묻어나는 이야기를 간직한 장소도 있다. 삶을 온전히 살지 못하고 일찍 유명을 달리한 아이들의 무덤이 모여 있었다는 애기무덤이 그곳이다.

궁동 주민 권창호 씨는 "애기무덤의 위치는 연세중앙교회 뒤편으로 산 아래에 있던 곳인데 당시엔 환경이 열악하니 아이를 낳는 출산과정에서 죽는 경우도 더러 있었고 유행병이 돌면 면역력이 약한 어린아이들이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언제부터 그곳에 죽은 아이들을 묻어 왔는지는 모르지만 옛날엔 그 곳에 공분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애기무덤이 사라진 건 시간이 지나며 의료환경이 좋아진 덕도 있겠지만 직접적인 이유는 이곳에 무허가 주택들이 하나 둘 들어서면서 부터였다.

원주민 마을 사람들은 이곳에 집을 짓고 살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들은 지대의 사정도 잘 모르거니와 살 곳을 마련할 일이 시급하니 무허가 주택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현재는 무허가 주택도 마을 깊은 곳에 몇 채가 남아있을 뿐 빌라 등 다세대 주택들이 상당히 들어선 상태다.

지금은 오랜 시간이 지나 아쟁이터라는 지명의 흔적도 찾아보기 어려웠지만 아직 마을의 과거를 기억하는 주민들에겐 즐거움과 슬픔이 함께 공존했던 곳으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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