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수칼럼] '공공성' 팔아 재정 낭비하는 나라
홈플러스가 사모펀드의 손에서 흔들리는 동안, 우리는 그보다 훨씬 일상적인 곳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서울 시내버스, 쓰레기 소각장, 저가 커피 프랜차이즈까지. 사모펀드는 이제 우리의 하루를 이루는 거의 모든 영역에 조용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단순한 자본의 이동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공공의 영역이 민간에 넘어가면서, 그 비용은 시민과 국가 재정이 고스란히 떠안는 구조로 굳어지고 있습니다.
민간위탁이 만든 역설
대한민국 행정은 오랫동안 '작은 정부'와 '효율화'라는 명분 아래 복지·교통·환경 등 핵심 공공서비스를 민간에 위탁해 왔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재정 절감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달랐습니다. 민간사업자의 수익을 보장하는 구조가 만들어지면서, 국가는 오히려 더 많은 보조금과 손실 보전금을 지출하게 되었습니다. 서울 시내버스의 준공영제가 대표적입니다. 운영 적자를 세금으로 메우는 구조 속에서, 사모펀드는 리스크 없이 안정적인 수익을 챙길 수 있는 최적의 투자처를 발견한 것입니다.
폐기물 처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소각·매립 시설을 민간에 넘기고 처리 단가를 보장해 주는 방식은, 지자체가 민간의 이익 구조에 종속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사모펀드 입장에서 이보다 매력적인 투자처는 없습니다. 수요는 줄지 않고, 단가는 보장되며, 리스크는 공공이 흡수합니다.
시설 중심 복지의 함정
복지 영역도 같은 논리에 갇혀 있습니다. 한국의 사회복지는 지역사회 중심의 돌봄보다 시설 중심의 서비스에 집중 투자되어 왔습니다. 요양원, 장애인 거주시설, 아동복지시설 등은 운영을 민간법인이나 사모펀드 연계 사업자에게 위탁하는 방식이 일반화되었습니다. 그 결과, 서비스의 질은 시설의 수익성에 종속되고, 국가는 단가를 낮추기도, 서비스를 직접 통제하기도 어려운 구조에 빠집니다. 재가 돌봄이나 지역사회 통합 서비스로 전환하면 비용이 줄고 당사자의 삶의 질도 높아진다는 것은 이미 여러 국가에서 입증된 사실입니다. 그러나 시설을 운영하는 민간사업자의 이해관계가 정책 방향을 왜곡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재정건전성'이란 이름의 착시
정부는 재정건전성을 이유로 공공 직접 운영을 축소하고 민간 위탁을 확대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는 지출의 성격을 바꿀 뿐, 총비용을 줄이지 못합니다. 오히려 민간의 이익 마진과 사모펀드의 수수료·배당이 더해져 사회 전체의 비용은 증가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정부 지출만 줄어 보일 뿐, 시민이 요금으로 부담하거나 지자체가 보조금으로 메우는 숨겨진 비용은 오히려 늘어납니다. 이것이 기계적 재정건전성의 함정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짚어야 할 오해가 있습니다. '민간이 하면 효율적이고, 공공이 하면 비용이 많이 든다'는 통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신화에 가깝습니다.
영국 런던은 1990년대 버스 노선을 민영화했다가 요금 급등과 서비스 질 저하를 경험한 뒤, 단계적으로 공공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했습니다. 반면 일본의 일부 지방 철도는 민간이 운영하면서도 공공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유지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폐기물 처리는 공공과 민간이 역할을 명확히 나누고 원가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방식으로 효율을 높였습니다. 북유럽 국가들은 복지 시설을 공공이 직접 운영하면서도 지역사회 돌봄 중심으로 재편해 오히려 시설 비용을 줄이고 만족도를 높였습니다.
이처럼 민간이냐 공영이냐가 핵심이 아닙니다. 어느 분야에, 어떤 방식과 어떤 원칙 아래 운영하느냐가 결과를 결정합니다. 민간 위탁이 실질적인 경쟁과 투명한 계약 구조를 갖추면 효율적일 수 있고, 공공 직영이라도 관료주의와 책임 부재에 빠지면 비효율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운영 방식의 선택 자체가 아니라, 그 선택을 뒷받침하는 원칙과 제도의 부재입니다.
합리적인 재정 조건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민간 위탁의 전면 철회도, 공영화의 무조건적 확대도 아닙니다. 핵심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원가와 성과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입니다. 민간이 운영하든 공공이 운영하든, 비용 구조와 서비스 품질이 공개되어야 합리적인 판단이 가능합니다. 지금처럼 보조금은 지급하되 원가는 불투명한 구조에서는 어떤 방식도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어렵습니다.
둘째, 수익 보장 구조를 설계할 때 공공의 이익을 전제로 삼아야 합니다. 사모펀드가 공공 인프라에서 안정적 수익을 가져갈 수 있는 것은, 계약 구조 자체가 민간의 리스크를 공공이 흡수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운영 주체가 누구든 시민의 부담은 줄지 않습니다.
셋째, 재정 성과의 기준을 '지출 삭감'이 아니라 '국민 만족도와 서비스 지속가능성'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버스 요금을 올리거나 복지 시설 정원을 줄여 단기 지출을 줄이는 것은 재정건전성이 아닙니다. 시민의 삶의 질이 유지되고 서비스가 안정적으로 공급될 때, 비로소 재정이 제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공공성은 이념 아닌 전략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공공성과 효율성을 대립 관계로 바라보는 시각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잘 작동하는 공공서비스 체계를 들여다보면, 이 둘은 충분히 함께 갈 수 있습니다. 공공성을 유지하는 것이 곧 장기적인 재정 절감으로 이어지고, 국민 신뢰를 높이는 것이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민간이냐 공영이냐를 둘러싼 소모적 논쟁이 아닙니다. 어떤 방식으로 운영하든 시민의 일상을 안정적으로 지탱하고, 재정을 합리적으로 운용하며, 그 결과를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지금 대한민국 공공행정이 답해야 할 진짜 질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