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주민 차별보다 정책을 요구할 때
구로에 초대받지 않은 이들이 혐오의 말들을 뱉고(쏟아내고) 사라졌다. 지지하는 정치인들이 만든 거짓 뉴스를 신봉하며 사실을 말해도 믿지 않으려 한다.
'중국인은 6등급도 서울대 간다' '아파트도 돈 없이 살 수 있다' 심지어 '중국 유학생은 잠재적 간첩이다'. 하도 말이 안 돼 반응하기도 싫은데 그것을 그대로 믿는 이들이 생각보다 위협적이다.
도대체 왜?.
어떤 이들은 유튜브 돈벌이 때문이라고 하고 어떤 이들은 미국의 마가(MAGA)에 의한 지원 때문이라고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잘못된 종교 때문이라고도 한다. 어찌 되었든 이를 거짓 뉴스로 치부하지 않고 믿는 이들이 제법 있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구로가 어떤 동네인가. 나의 삶 속엔 구로만 한 곳이 없다. 학교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지니'처럼 나타나서 도와준 이들이 어디 한둘인가. 눈이 아픈 아이. 맘이 아픈 아이, 끼니를 굶는 아이, 외로운 아이, 중국어로 상담이 필요한 아이까지…. "도와주세요!" 라는 소리를 내면 어느새 내 앞에 도와줄 분들이 나타났다.
어디 그뿐일까. 전교조 활동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지지한다며 힘내라고 응원을 보내주었고 직영 급식, 교복 공동구매, 혁신학교, 내부형 교장공모제 그리고 혁신교육지구 사업까지, 서울교육의 새로운 시도는 모두 구로에서 비롯되었다.
교육에 있어 선도적 활동을 하던 구로가 한국에 들어온 이주민들의 첫 정착지로 변한 지는 시간이 좀 되었다. 이제 구로구 주민의 10퍼센트 이상은 외국인이다. 목소리도 크고 알아듣기 어려운 중국어로 말하고 때로는 분리수거도 잘 안되어 불편하다는 사람들이 생겼다. 중국인 가게가 늘어나고 중국인들이 많아지고 몰려있으니 무서운 곳이 아니냐는 주변의 우려도 나온다. 동네가 점점 낯설어 지는 것만 같다고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외국에 가면 다를까?. 환영만 받을까?. 우리가 이주민이라 하여 비난하는 많은 내용들을 재외 동포들이 겪고 있음을 우리 모두 다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미국에서 재미교포의 60%는 오직 한인끼리 만 어울린다는 통계도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한인 17만 명이 미등록으로 살고 있다. 무엇보다 국내 이주민은 250만이지만 우리나라에서 나간 재외동포는 700만이 넘는다. 재외 동포들은 환대받으며 살고 있을까?.
다른 것이 불편한 것은 인지상정일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늘 새로운 것보다는 익숙한 것에 몸이 먼저 움직이는 매우 보수적인 면이 내게 아주 많다.) 그러나 불편함을 뒤로하고 그 속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우리를 조금은 인간답게 살게 하는 것이 아닐까. 되돌아보면 그 노력 덕분에 얻은 관계들과 그로 인한 에너지는 내 삶의 깊이와 너비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확장시켰다. 이미 이주의 물꼬가 터져 나라별 이주민의 유입은 훨씬 증가하는 추세다. 인구 절벽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는 것을 보니 아마도 이주 정책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정부의 이주 정책은 돌봄 노동이나 제조, 건설 노동 같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리는 대신 이주민으로 채우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고 그런 이주민들이 늘어날수록 정주 방식들이 확대될 것이다.
이제는 정책으로 답을 구해야 한다. 구로에서 혹 분리수거가 안 되는 이주민이 있어 도로가 지저분해졌다면 이주민을 탓하기 이전에 정책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요구해야 한다. 좀 더 살펴서 깨끗해지도록 하고, 그림이든 다국어든 안내 방식들을 확대해 교육하고 설득해야 한다. 이주민이 낯선 지역에서 움츠러 있을 때, 그들을 공격하기보다 도로가 깨끗해지도록 구청에 요구하고, 구청은 시청이나 중앙정부에 이를 지원하는 방안을 정책으로 내어달라고 해야 할 일이다.
이주 정책은 단순히 지역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의 이주 정책, 노동 정책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정책으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를 지역에서 알아서 감내하라고 하는 것에 대해, 당당히 지역에 대한 지원을 요구하고 지역을 안전하고 살기 좋게 하기 위한 정책 마련을 요구해야 할 일이다.
아이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같은 일만, 같은 것만 경험하는 것에서 새로움의 발생은 어려운 일이다. 다른 것을 경험하고 알아가는 것에서 새로운 배움이 일어난다.'라고. 그것이 창의성을 키우는 교육일 것이다.
구로는 이미 시작하고 있다. 나와 다른 존재들을 만나는 일을 먼저 경험하면서 나에 대한 이해도 다른 이에 대한 이해도 확장하는 경험을 이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세계는 다른 이와의 세계와 함께 더 큰 세계로 이어질 것이다. 낯선 다름을 제대로 배울 수 있도록 정책을 요구하는 그래서 더 큰 구로로 성장하는 계기를 만드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제는 이주민에 대한 차별적 시선보다 정책 요구로 답을 찾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