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단상] 구로동 백골담긴 종이박스 기사를 접하며

2025-10-30     어용 (구로타임즈 독자)
어용 (구로타임즈 독자)

백골담긴 종이박스와 유골함 항아리가 백주 대낮에 마을에서 발견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하니, 대략 50여년전에 구로동  이웃에서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고향이 어딘지는 알 수 없으나 어린딸들만 서넛 있던 집에 그 집  가장이 40대 나이에 밤새 급사하여 동네가 우울했었다. 어떻게 어떻게 장사를 치르고  화장하여 유골항아리에 담아 왔으나  당시  구로동에 사는 대부분  주민들이 타향에서 올라와서 경제 자립을 못하던 궁핍한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그집  큰 딸이 열일곱이나 되었나 하는 정도였는데, 구로공단에서 미싱공으로 일하면서 고단하게 가정을 돕고 있던 터라서 그런지 철이 일찍들었는지, 부친 유골을 보충대 야산(지금 고대병원  뒤 언덕 주택가, 꼭대기에는 지금 절이  있었지만 당시에는 보충대 내무반 터였음)에 임시 매장하고 나중에 돈을 마련하면 산소터를 마련하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50여년 전 이야기이니까, 그 이전에 구로동 생활상은 그야말로  더 궁핍하고 고단한 삶이었을 것이다.

그 가족 가장의 유골항아리에 대해서는 그후 들은 바가 없다. 하지만 가난하기는 했지만 가족의 유골을 소중하게 여기고 잘 모시겠다는 소녀 가장의  애특한 그 마음은 당시 구로동 주민  모두 같았으리라.

지금은 정부에서 책임지는장례 복지가 어느정도 나아져서 이런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요즈음 타지에 살면서 가끔 구로동을 방문해 보면 오육십년 전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에는 지방에서 가난을 벗어나겠다고 구로동으로 모여들었는데. 이제는 조선족(?) 또는 중국사람들이 되풀이 하는 듯하다. 골목 곳곳이서 벌어지는 도박판과 대낮에도  일거리 없이 빈들거리는 모습 등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이번 유골항아리 사건  때문에 그동안 잊고 있던 구로동의 어린시절이 생각나서 몇자 적어보았다. 구로동에서 앞으로는 애처로운  사연이 화제가 되는 일이  없길 바라면서 주위에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웃이 있는지 살펴보고 서로 마음을 모아 새로 거듭나는 구로동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