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의 소리] '기름'부은 새벽3시 펜스설치
항동주민들 지난 13일 주말집회 돌입 "심야 도둑공사" 국토부 국회의원 규탄
"국토부, 서서울, 이인영 의원, 구로구청. 모두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 집, 당신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 밑이라도 이런 비상식적인 고속도로 공사를 계획하고, 묵인하시겠습니까? 항동 주민들도 국가가 지켜야 할 국민입니다."
토요일이던 지난 13일 항동 수직구 공사 예정지(푸른 수목원 인근, 연동로·서해안로 접점).
오후 3시가 되자 항동 주민들이 모여들었다.
한 손엔 피켓을 들고, 한 손엔 고사리같은 자녀들 손을 꼭 잡은채 하나 둘 늘어났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조치로 1인 시위 이외에는 집회가 전면 금지되던 지난 8월, 항동주민들은 이인영 구로(갑)지역 국회의원의 지역사무소와 항동수직구예정지에서 '학교 밑 발파 금지, 수직구 절대 금지'라는 내용의 피켓들을 들어올리며 1인 시위'를 진행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 10일(수) 광명-서울고속도로 2공구(구로지역) 시공을 맡은 ㈜한양건설은 새벽 3시 수직구부지에 공사 진행을 위해 펜스를 설치했고(구로타임즈 11월15일자 '항동수직구 펜스 설치, 건설사-주민 긴장 '팽팽'' 보도 참조), 이에 항동 주민들의 분노는 절정에 달했다.
항동주민들은 한양건설이 새벽3시경 펜스를 설치한 것에 대해 "주민 동의 없는 '도둑 공사'를 시작했다"며 "주민 의견 따윈 반영되지 않은 '공사 강행'"이라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결국 지난 13일(토) 한양건설의 '새벽3시 도둑공사'에 반대한다며 '위드코로나' 거리두기 정책에 맞춰 '수직구 공사강행 규탄 집회'에 들어갔다.
이날 모인 항동주민은 120여명.
홀몸 아닌 임신부를 비롯해 부모 손을 잡은 채 패딩점퍼에 몸을 싸매고 나온 어린이들, 신혼부부, 중년 부부, 어르신들에 이르기까지 차가운 초겨울바람에도 직접 만든 피켓까지 챙겨 들고 수직구 공사 예정지로 모여든 것.
오후 3시 10분. 집회 예정 시간이 10분 이상 지연될 만큼 집회현장을 찾는 주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들은 코로나19예방을 위해 참가자 명부 작성은 물론 발열체크와 마스크착용, 일정 간격 유지 등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기도 했다.
◇ "안전할 권리 위협"
'(광명-서울)고속도로 수직구 저지 항동비상대책위원회'주관으로 진행된 이날 '수직구 공사강행 규탄 집회'는 공사 시작을 알리는 심야 펜스 설치로 시공사와 항동 주민들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상황.
새벽 3시 주민동의 없는 '도둑공사'를 강력 규탄 하는 날선 주민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한양은 공사 요식행위를 위해 3일간 고작 29명이 참석한 '유령주민설명회' 쇼를 펼쳤습니다. 그리고는 주민과 소통했다는 거짓 보고서를 올리고 모두가 잠든 새벽 3시, 용역을 동원해 기습적으로 펜스 설치 '도둑공사'를 진행했습니다. 이 공사가 정상적이고 정당한 공사라면 결코 시도하지 않아도 되는 일입니다."
집회 참석 주민들은 머리 위로 피켓을 들어 올리며 '지하고속도로 공사 반대', '수직구 철회하라'를 한목소리로 외쳤다.
집회장에는 약 20명 안팎의 경찰 인력이 배치돼있었다.
집회를 주관한 '고속도로 수직구 저지 항동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측은 "항동 주민이 잠든 한밤중에 벌어진 이번 일은, 국민을 보호해야할 국가기관이 주거안정권을 침해하는 일로 절대 용서할 수 없는 도발이자 폭력"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대위 측은 그동안 주민동의 없이 이뤄지는 광명-서울 고속도로 온수터널 공사의 부당성과 공사강행의 폭력성을 지적 하며 "국토부와 코오롱글로벌, 서서울 고속도로가 직접 '주민대상의 설명회'를 개최할 것을 요구"해왔으나, 국토부와 서서울은 단 한 번도 주민과 진정성 있는 대화에 나설 생각이 없었다며 비판을 이어나갔다.
이어 이들은 △수직구 공사예정지 안 펜스 구조물 즉각 철거 △국토부와 서서울이 직접 주민대화에 나설 것 △주민들 동의 없는 공사강행 시도를 당장 중단할 것 등을 강력하게 요구한다며, "국토부와 서서울뿐 아니라 이인영국회의원과 서울시, 구로구청 등 지자체 행정과 정치인 모두 '항동 주민의 주거안정권' 침해에 함께 연대하고 대응해달라"고 간절한 목소리로 요구했다.
이날 시위에는 비상대책위원회 소속의 항동보금자리 1·2·5·6단지별 대표 뿐 아니라 일반 주민들도 다수 참여해 비판의 목소리를 더했다.
집회에 참여한 이들의 분위기가 절정에 달하자, 한 주민이 나서 행정과 정치인에게 반드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마이크를 잡았다.
지하 고속도로 관통 예정지인 1단지에 살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이 주민은 "지난날 '의경' 업무를 하며 집회현장을 '저지'하던 사람이라, 집회가 세상에서 제일 싫었다"며 "집회를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분노가 치밀어 여기 (집회현장)에 직접 나오게 됐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 주민은 "처음 항동지구 청약에 당첨됐을 때 드디어 우리가족의 소중한 보금자리가 생기게 된 것이란 사실에 감격하며 아내를 붙잡고 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그 행복도 잠시 우리가족이 살 아파트, 내 자식이 다닐 학교 밑에 다이너마이트를 터트리고 아이가 다니는 통학로에 수직구가 설치돼 초대형 공사차량이 오갈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우리가족은 '힘들게 얻은 첫 보금자리이지만, 내 가족의 안전을 위해 항동을 떠나야하나'를 고민해왔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그는 "집회를 싫어한다고 말했지만, 당장 내 가족의 안전이 위협받게 되니 나부터도 집회에 나오게 되더라"며 "국토부 김현미 장관과 구로주민을 대변한다는 이인영의원, 이성구청장은 당신들의 집 밑에 지반침하가 우려될법한 초대형 고속도로가 뚫리고, 당신 자녀가 다닐 학교에 폭약을 발파하며, 아이들의 통학로에 하루 수 십 번 덤프트럭이 다녀 아이들부터 어르신까지 동네 주민 모두의 안전할 권리를 위협받는 상황을 상상이냐 해 보았냐"며 "도대체 그들은 상황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주민을 위해 무엇을 했느냐"고 분노어린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 "항동 주민 철저히 무시한 것"
이날 집회는 약 한 시간 30분가량 진행됐다.
집회 후 자녀손을 잡고 나온 한 학부모(여)는 취재중이던 구로타임즈에 "항동 주민 대다수가 '고속도로'와 '수직구'공사를 반대하는 이유는, 내 집 밑은 안 된다는 단순한 지역이기주의의 '님비현상'이 아니라, 내 가족, 더 나아가 우리의 자식들의 안전을 확보받기 위한 생존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다시금 공사 집행에 대한 강한 반대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학부모는 또 "이런 주민들의 불안을 해결하고자 국토부와 서서울고속도로주식회사에 '주민설명회'를 요청한 것인데, 국토부와 서서울은 주민들 요구를 귓등으로 들은 채 시공사인 한양 뒤에 숨기 급급했고, 한양은 고작 주민 29명을 데리고 진행한 '요식적인 주민설명회'를 근거로 주민 어느 누구에게도 고지하지 않은 채 새벽 3시 펜스설치 도둑공사를 진행한 것"이라며 "이는 국토부와 서서울, 서울시, SH공사, 구로구청, 한양 모두가 '항동주민을 철저히 무시한 태도'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 학부모는 이어 손을 잡고 있는 어린 자녀를 지켜보면서 "다이너마이트가 터질 항동초등학교와 항동중학교에 다닐 아이들은, 국가가 보호해야할 미래의 큰 자산임에도 국가는 단기적인 이익에 눈이 멀어 있다"며 "아이들을 생각해 달라"고 당부의 말을 남기며 집회 자리를 떠났다.
다른 학부모들도 "고속도로와 수직구 공사가 강행된 뒤, 인명피해가 난다면 그때는 공사를 중단하기에 이미 늦어버린 시점"이라며 "아직 공사가 시작되지 않은 지금 정부가 항동주민의 안전할 권리를 보장해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의견등을 전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항동주민들의 '수직구 공사 저지 집회'는 오는 20일(토)에도 오후 3시 재차 열 계획이다.
고속도로 수직구 저지 항동비상대책위원회 측은 "시공사인 한양과의 펜스 설치 공방전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주민 안전권을 보장받는 날까지 항동 주민과 함께 싸워가겠다"는 강한 뜻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