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_영화속 구로] '범죄도시'프레임에 가리봉은 마음앓이
[영화속 숨을 구로찾기] "주민들 반발로 대림 등 다른 동네서 촬영"
"어느 날 갑자기 통보하듯 가리봉동에서 범죄 영화를 찍겠다고 했어요. 가리봉시장 상인회 모두 반대했죠. 이미 그전부터 '신세계'나 '황해' 이런 영화들을 보면 조선족이나 중국 사람들의 범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니(중국동포에서) 귀화한 민족이 많은 가리봉동은 영화에 반대할 수밖에 없죠". 가리봉시장 상인회 소속 중국식품백화점 한 점주(남, 60대 전후)가 당초 가리봉에서 촬영하려던 영화 '범죄도시'와 관련 된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해주었다.
지난 2017년 개봉된 강윤성 감독의 작품 영화 '범죄도시'. 영화는 '1990년대부터 중국 동포들은 서울 가리봉동에 정착. 그들만의 차이나타운을 만들었다'라는 문구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2004년 가리봉동에서 벌어진 '조선족 조폭 소탕작전' 사건을 소재로 만들어졌다. 대중들에게는 유쾌한 액션 영화로 평가되었지만, 가리봉동 주민들에게는 '가리봉동의 이미지를 망친 최악의 영화'라는 혹평과 비난이 이어졌던 영화이기도 하다.
"매체에 나온 것만큼 무서운 사건들은 없었어요, (가리봉) 원주민들은 자기 집 가지고 착하게 살고 있어요. 중국인들도 열심히 살고 있죠. 그런 폭력적인 영화가 나와서 가리봉 주민들은 피해가 커요. 범죄영화들이 가리봉동을 배경으로 했다고 말하니 누가 여기 와서 살고 싶겠어요. 실제로 전혀 위험하지 않아요"
가리봉에서 50년 넘게 거주했다는 김영호(71)씨는 가리봉동을 소재로 한 범죄 영화들에 대해 이처럼 불편하고 불쾌한 기색을 나타냈다.
'범죄도시' 영화 촬영에 대한 가리봉동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범죄도시' 촬영은 결국 인근지역인 영등포구 대림동과 신길동 일대에서 진행됐다. 하지만 영화 개봉후 가리봉동 주민들은 아직까지 "가리봉은 범죄도시"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답답해하고 있다.
2030세대에게 가리봉동을 알리고자 '온라인커머스 트레블러스 맵'을 통해 '가리봉 투어'를 진행 중인 '봉여사단'의 대표 방숙(62) 씨는 "가리봉 여행 상품을 기획하며 많은 청년들을 만났지만 청년들에게 가리봉은 범죄도시의 이미지로 남아있어, 투어 신청을 꺼리기도 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방씨는 "가리봉은 중국동포들이 80%이상 거주하고 원주민의 비율은 20%에 불과하지만, 중국 동포들은 한국인의 삶에 피해가 되지 않도록 방범 치안 센터를 만드는 등 '범죄도시 오명 벗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 "가리봉동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한국인과 중국인 모두 골목을 정비하는 등 쾌적한 가리봉동 만들기에 동참하고 있지만 범죄도시 이미지를 벗기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구로시민센터 김현주 사무국장도 "다문화 연합회에서 이주민이 (원주민의 삶에) 잘 스며들고 녹아들기 위해 가리봉동 꽃길 조성 등 이주민들이 자부담으로 가리봉동 골목 미화 산업에 신경을 많이 썼다"면서 현실과 다르게 알려진 왜곡되고 부정적인 이미지에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가리봉동에선 쓰레기 문제가 많이 대두되는데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외국인들이 함께 기존 원주민인 한국인들을 도와 도시 미화 사업도 진행했어요. 가리봉동 중국동포등 이주민들이 한국인의 삶에 상부상조하며 융화하려는 노력이 영화 '범죄도시'와 같은 폭력적인 상업 영화들에 가려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구로동을 잘 아는 김현주 사무국장의 말이다.
상영시간 2시간 내외인 영화는 지역민조차 잊고 살았던 지역의 역사를 회상시키기도 하고, 지역민의 일상을 녹여내기도 하며, 사라져버린 장소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지난 2019년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발표한 영화소비자 행태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들이 1년 동안 평균 관람하는 영화 편수는 15.7편. 올해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9 국민독서 실태조사'에서 나온 연간 독서량 '7.5권'에 비해 2배가 넘는 수치이다. 영화가 자연스럽게 일반 대중들에게 얼마나 강한 영향과 전파력을 갖게될 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수치이다.
과거 구로와 관련한 영화로는 한국 경제와 사회상의 명암이 교차하던 '구로 공단'(구로 공업단지)을 중심으로 한 영화들이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최근의 상업 영화들은 15년 전 일어난 '조선족 범죄사건'등 자극적 소재에 초점을 맞추어 구로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범죄도시'의 프레임을 짙게 씌워버리면서, 가리봉에 거주하는 이주민들과 원주민들이 오히려 '범죄도시' 주민들로 외부인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는 등 오히려 역차별을 받으면서 마음앓이를 하고 있다.
구로시민센터(구로2동 소재)측은 "구로 지역의 경우 오랜 시간 다양한 변화를 겪었다"며 "1970년도부터는 노동자들의 이주로 공단의 역사를 썼고, 2000년대에는 디지털 산업단지로 변화하면서 대한민국 디지털 산업 발전에 앞장섰다"고 말했다. "2000년대 안팎으로는 외국인들이 들어오면서 다문화의 싹을 틔워 현재 2020년에는 타 지역의 귀감이 될 정도로 원주민과 이주민이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시대적 변화를 설명했다.
"현재 영화 산업이 상업 영화에 초점이 맞춰져 지역의 역사가 충분히 가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극적 소재만을 선호한다는 것이 안타깝다"는 구로시민센터 관계자는 "(영화는) 사람들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인 만큼 부정적이고 자극적인 소재보단 시대에 맞춰 공존하려 살고 있는 구로구 내 다문화가정의 모습이나 매봉산, 항동 철길, 푸른 수목원 등 지역의 아름다운 명소들을 대중에게 알려주길 바란다"며 지역에 대한 애정 어린 소망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