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_골목의 꽃3] 가리봉동 '터줏대감', 동네 슈퍼 (가리봉동)
공단부터 차이나타운까지
구로공단의 조성 및 발전에 이은 1970년대. 인근 지역 가리봉동의 쪽방촌 부동 현재 가리봉 차이나타운에 이르기까지 50년에 달하는 가리봉동의 생생한 변화를 접할 수 있는 여행을 떠나보자.
가리봉동 주민들에게는 동네 터줏대감으로 불리는 '동네슈퍼'가 있다. '동네슈퍼'라는 이름의 가게를 찾기 위해 가리봉동 주민센터 왼쪽 금강여인숙 옆 샛길을 걸어 들어갔다. 가리봉동 뉴딜 골목 정비 사업으로 깔끔하게 새 옷을 입은 골목길을 걷다 보면, 멀찌감치 보이는 '동네슈퍼'를 만난다. 50년 가까이 묵묵하게 한자리를 지켜왔음을 증명하듯, 낡고 촌스러운듯해 보일 수 있는 간판에서는 오랜 연륜과 추억의 감성이 묻어난다.
아늑한 분위기의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가게 주인 차설자(71)씨가 "어서 와요"라며 선한 미소로 반겨준다. 주인장 차 씨는 구로공단으로 인해 가리봉이 활성화되어 있던 지난1978년도부터 42년째 가게를 운영해오고 있다.
작은 가게 안에는 과자 사탕 껌 등 상품뿐만 아니라 가리봉동 주민들의 '사랑방'이 있었다. 차 씨의 안내로 들어간 사랑방은 바로 가게 안쪽 자그마한 평상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옆자리를 내어주며 "구로공단이 성행하던 1978년도부터 지금까지 매일같이 가게를 지켜왔다"며 가리봉동의 옛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옛날엔 공단 사람들이 주요 손님이었고 지금은 중국 손님들이 주 손님이죠. 세상이 바뀌었으니까. 예전엔 직공들이 월급날이면 항상 우리 가게에서 쌀이며, 과자며 식료품을 사가곤 했어요. 가게 앞은 직공들 웃음소리로 끊이질 않았어요. 월급날이잖아요. 그 웃음을 들으면 행복했고". 70년대 월급날 저녁, 동네모습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요즘은 중국 친구들이 와서 술이며 담배며 사 가요. 시대가 바뀌니 손님들도 바뀌는 거지 뭐... 서로 소통하며 말하는 데는 큰 어려움도 없어요. 중국 친구들이 무섭다는 것도 편견이죠".
50년 가까이 된 '동네 슈퍼' 자체가 평상보다 더 큰 주민사랑방임은 인터뷰가 진행되는 내내 체감할 수 있었다. 동네슈퍼 주인장을 찾은 주민들의 화제는 옆집 공사부터 자녀이야기, 셋방살이 청년 이야기까지 다양했다. 차 씨는 푼돈을 내미는 초등학생 손님부터 무뚝뚝하게 담배 한 갑을 외치는 중국교포들에게까지 온화한 미소로 맞이했다.
"모두 고맙죠, 이런 보잘것없는 가게를 늘 찾아준다는 것이 고마워요. 중국인이면 어떻고 어린 아이면 어때요. 다 나에겐 소중한 손님이에요. 이 가게를 하면서 사기도 당하고, 남편도 먼저 잃고 어려운 순간들이 너무 많았어요. 근데 가게 덕분에 자식들도 키우고, 손님들도 와서 나에게 웃어주고. 나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요. 이게 행복이에요".
구멍처럼 작은 가게라는 뜻인 '구멍가게'들이 개발과 유통의 변화로 사라져가고 있는 오늘, 동네 주민들의 발길과 웃음이 이어지고 있는 가리봉 작은 상점에서 들은 행복론이 그 어느 철학보다도 더 오래도록 여운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