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우리동네 이야기33] 서울과 경기도가 만나는 '장터'
안양천 뚝방 중심으로 성황
고척동 동양미래대학 뒤편 언덕에 자리한 마을을 장터골이라고 불렀다.
왜 장터골이냐 하면, 말 그대로 동네 앞에 장터가 있어 다양한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팔았기 때문. 이곳에는 경기도 지역 주민과 서울사람들이 교류하는 장소였음은 물론 미군부대의 물건들도 장터에 나와 각양각색의 교환이 이뤄졌다는 전언이다.
장터골은 안양천변 고척지하차도 옆에 위치한 마을로 고척스카이돔, 대학가, 아파트단지들 사이에 자리하고 있지만 이상하리만치 한적한 주택가의 정취를 유지하고 있다. 몇 미터만 밖으로 나가도 수많은 차량이 이동하는 경인로와 마주하지만 동네 자체는 대학건물과 작은 산으로 둘러싸여 아늑한 느낌마저 든다.
이곳 주민들에 의하면 장터골은 주변 일대에 다른 취락지대가 없을 때에도 사람들이 모여 살았을 만큼 오래된 자연마을이다. 마을 사람들은 작은 산을 뒤로 삼은 채 집을 짓고 앞에는 안양천을 둬 배산임수의 전형을 이루고 살았다.
당시 안양천에는 손으로 잡힐 만큼 물고기가 많았다고 한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하천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는 풍경 위로 뚝방에서는 장터가 열렸다. 장터엔 경기도 강화, 시흥, 안양 지역의 사람들이 먼 곳까지 찾아와 서울사람들과 농산물, 생활필수품 등을 교환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마을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당시 마을 인근에 미군부대가 있었는데 그곳 물건들도 장터로 흘러 나왔다고 귀띔했다. 할머니는 "장터가 사라진 것도 부대가 사라진 때와 비슷한 시기였는데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50년도 훨씬 더 된 이야기"라고 말했다.
장터가 열리고 사람들로 북적였던 것은 이미 오랜 옛일이지만 아직도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장터골로 기억하고 있다. 마을입구에 자리한 슈퍼마켓의 상인도 당시를 알진 못하지만 장터골이란 이름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은 마을에 장터골이라는 이름을 가진 식당도 있었을 만큼 이곳에서는 지금도 익숙한 지명이라고 덧붙였다.
한때는 이 일대 유일한 취락이자 외지 사람들로 붐볐던 장터골은 1970년대를 지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변했다. 서울시 첫 재개발 사업지역으로 선정되면서 과거의 가옥들이 모두 정비된 것이다.
1970년 경 장터골에는 일반 가옥도 많았지만 절반 이상이 이른바 판잣집이라고 불리는 무허가 가옥이었다. 이때의 집들은 1974년 재개발 사업이 시작되면서 대부분 철거됐고 산지를 깎아 택지가 조성됐다. 택지사업이 시작된 후, 매년 수해피해를 입던 이 지역은 당시 영등포일대에서 가장 전망 좋은 주택지로 각광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