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우리동네이야기 22] 천왕동 연지마을
‘ 흥사단의 땅’
구로구 천왕동에 연지마을이 있다. 마을의 위치는 천왕연지타운 2단지와 천왕 이펜하우스 3단지 사이 천왕동 10번지 일대. 마을 이름은 마을 북쪽에 위치한 산봉우리가 연지봉이라 연지마을이 됐다고 전해지지만, 원래 연지마을이라 불렀고 산봉우리가 마을이름을 딴 것이라는 얘기도 있어 유래가 분분하다.
지금은 주변이 모두 아파트로 개발 됐고 연지마을만 홀로 시간이 멈춘 듯 판잣집과 노후한 건물들로 남아 있는데, 이는 지난해 8월까지 이 일대가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있었기 때문. 현재는 집단취락지구로서 주거환경개선이 가능해져 앞으로 주거시설 건립이나 개량을 할 수 있게 됐다.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개발 전, 이 일대는 대부분 논밭이었다. 1950년대를 기준으로 한다면 천왕동 전체에 45채 정도의 집이 있었고 현 연지마을 자리엔 아무도 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조상대대로 마을에 거주해온 한만선(65)씨의 기억에 의하면 연지마을 땅에 터를 잡고 오랫동안 살아가기 시작한 사람은 국내 학군단(ROTC) 1기 출신의 승병선 씨다. 학군단 1기가 1963년에 배출됐던 것으로 미뤄본다면 승 씨가 천왕동 연지마을로 이사 온 건 60년대 중반 이후로 추정이 가능하다.
한 씨는 "어렸을 때 논, 밭으로 가려면 연지마을을 지나가야 하는데 승병선 씨가 집을 짓고 살면서 닭을 키우는 모습을 오가며 봐 왔다"며 "현재는 돌아가신 걸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한 씨는 또 과거 농협 책자에서 읽었던 기억을 더듬어 현 연지마을이 과거엔 도산 안창호가 세운 흥사단이 소유했던 땅이었고, 승 씨가 이를 5000평정도 불하받아 양계장을 시작했다고 일러줬다.
실제로 승 씨는 1970년 경 29살의 나이로 서울 영등포 천왕동에 논 1천500여 평, 밭 1백 평, 양계장 2200평을 소유하고 닭 1만2700수를 키워 농민상을 받았던 기록이 남아있다.
그렇게 한 사람이 일군 땅에 본격적으로 마을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건 베트남전 이후였다. 당시 정부는 연지마을에 사망한 참전자들의 부인들이 모여살 수 있는 미망인촌을 조성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남편을 잃은 과부들이 모여들지는 않았고 외부 주민들이 마을을 구성하기 시작했다는 전언이다.
천왕동 일대는 2011년 천왕이펜하우스 1단지 입주를 시작으로 급격한 변화를 맞이했다. 하지만 연지마을은 과거에도 척박한 땅이었으며 1971년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인 이후 지금도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이곳의 주민들의 삶은 주거개선사업으로 좀 더 나아질 수 있을까. 현재 마을엔 주거시설 25곳, 근린생활시설 8곳 등 33개의 건축물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