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바람’에 떠는 고척시장 상인들
명도집행 막으려 수개월째 농성중, 지난 12월 중순 전기도 끊겨
동장군의 칼바람이 몰아치는 이 한겨울, 전기 끊긴 건물에서 추위와 싸우며 밤을 지새우고 있는 이들이 있다. 바로 고척1동에 소재한 고척프라자 시장 상인들이 그들이다.
고척프라자 시장 상인들이 지난여름부터 건물에 대한 명도 집행을 막기 위해 시장 건물 1층에서 수개월 동안 숙식을 해결하며 상주하고 있는다. 이 가운데 해당 건물주 측에서 지난해 12월 19일 건물의 전기를 끊었다. 이어 최근엔 시장상인 9명에 대해 가압류 신청까지 한 것으로 확인됐다.
고척쇼핑 시장상인 세입자 문제가 불거진 시점은 지난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7년 12월 고척쇼핑 건물을 인수한 정성E&G가 세입자 전원에게 계약 만료를 통보했고, 당시 구청측의 '고척시장은 시장이 아니다'라는 해석에 의해 명도소송이 진행됐다.
이에 항의해 오던 상인들은 2010년 구청복도를 점거 하고 농성을 벌인 끝에 지방선거로 새롭게 당선된 당시 이성 구청장으로부터 '입점 상인 지위 확인서'를 받았다. 구는 이 확인서를 통해 소유주의 시장정비사업계획 수립 시 입점상인 보호대책을 마련해 신청할 경우에만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현 고척프라자의 소유주인 이 모 씨는 A건설업체의 대표로 지난 2014년 4월 경매를 통해 건물의 소유권을 갖게 됐다. 고척시장 상인들은 이에 따라 이 씨 사무실로 한 달 간 찾아가 접촉을 시도했고 사무실 밖에서도 한 달 가량 집회를 열었지만 끝내 직접 만나서 대화할 수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구로구청에 의하면 이후 이 씨 측은 같은 해 7월 2일 서울남부지방법원에 명도소송에 대한 소를 제기했고 지난 8월27일 법원은 이 씨의 손을 들어줬다.
상인들이 본격적으로 고척프라자 1층에서 숙식을 직접 해결해가며 상주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7월 말, 8월 초 무렵이다. 명도소송이 들어 온 만큼 언제 판결이 나고 집행이 될 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상가를 비워둘 수가 없던 것이다.
명도 집행에 따른 강제철거는 영하 8℃로 떨어진 지난해 12월 19일 실시됐다. 다행히 이날 집행은 온전히 정성E&G가 소유하고 운영해오던 2, 3, 4, 5층에 대해서만 이뤄져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상인들도 누구보다 평화적 해결을 바라고 있는 만큼 1층을 손대지 않는 다는 법원의 대답을 듣고 2층으로 올라가는 길목을 열어줬다.
그러나 바로 이날, 지하를 제외한 해당 건물엔 전기가 끊겼다. 상가를 떠나지 못하는 상인들은 추위와 어둠에 떨 수밖에 없었고 이 같은 상황은 1월 중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항의 농성을 벌이고 있는 고척쇼핑 상인 30여 명은 밤이면 소수의 인원이 남아 현장을 지키고 있다. 추위 때문에 명도집행 다음날 연탄난로를 설치했고 밤이면 곳곳에 촛불을 켜 놓는다. 가장 젊은 상인도 40대 후반. 60대도 많지 않다. 대부분 70대 이상의 여성 어르신들이 난로 주변에 만들어 놓은 간이침대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어르신들이 가장 걱정하는 건 추위보다도 화재문제. 겨울이 깊어지면서 언제 한파가 들이닥칠지 모르는 것도 큰 문제지만 1층 내부는 연탄난로, 촛불은 물론 의류, 이불 등 가연성 물품들로 둘러싸여 있다.
게다가 미리 주문한 연탄도 놓을 곳이 없어 1층 한 쪽에 쌓아두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상인들이 철창으로 막아놓은 반대쪽의 입구는 건물주에 의해 폐쇄됐다. 불이라도 날 경우 어르신들이 갖고 있는 유일한 생존 방안은 철창 입구 앞에 세워둔 소화기 2개뿐이다.
한 어르신은 "소방서에서는 불이 나면 소화기로 끄면서 입구로 대피하면 된다고 하는데 입구에서 불이 나면 어쩌냐"며 "또 소화기 사용법을 말로만 한 번 알려주면 우리가 어떻게 아느냐. 정말로 불이 날까봐 제일 걱정"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오랜 항의 농성으로 상인들의 개인 삶도 엉망이 됐다. 인도명령이 결정되면서 입구를 막을 수밖에 없어 장사를 못한지도 수개월이다. 수입이 끊긴 것은 물론 가족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해 삶은 점점 더 어려워져만 가고 있다는 전언이다.
상인 9명 가압류 신청
여기다 최근 상인 9명에 대한 개인 주택 가압류가 신청됐다. 고척시장세입자비상대책위원회 김지현 위원장은 가압류는 이미 진행된 사안이며 소유자 측 인물이 지난 13일 찾아와 이 사실을 상인들에게 알려왔다고 말했다. 가압류 된 상인들은 60대 2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75세 이상 어르신들이다. 가압류 액은 개인당 540만 원정도이며 이 중 1명은 1000만 원이 넘는다.
김 위원장은 "예전에 상인분들에게 인도명령이 결정되면서 그 결정문에 의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들어올 수 있다고 설명해 드리기는 했지만 실제로 가압류까지 와버리니까 어르신들의 상실감이 크다"고 말했다.
"우리의 요구는 대화"
현재 이들 고척쇼핑 상인들이 요구하고 있는 바는 '대화'다. 구청을 통해서 중간에 서로 내용을 주고받은 임차인 보상금에 대한 격차에 대해 서로 설명을 하고 대화를 해야 조정도 가능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김지현 위원장은 "아직도 사업 시행자는 정성 E&G로 돼 있지만 이미 법원에선 현 소유자의 권리에 손을 들어줬기 때문에 답답하기만 하다"며 "일단 인간적으로 대화가 돼야 한다고 본다. 우리는 가서 돈을 따진 게 아니다. 행정적으로 풀어야할 부분이 많으니까 '대화를 해서 풀어나갑시다'라고 얘길 한 거지 '입점상인보호를 받는 상인이니 이만큼 주시오'라고 무조건 주장하는 게 아니다"라고 전했다.
구청 측은 이에 대해 "구청 입장에서도 영세 상인들의 생활이 어려운 만큼 원만히 해결되길 바라고 있지만 보상에 대한 의견이 달라 중재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 씨 측은 시장정비사업이 아니라 리모델링 등을 통해 개별적 용도로 활용하려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상인 비대위 측에 의하면 '개별적 용도'란 요양병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지현 위원장은 "리모델링을 하더라도 관련법에 따라 이해관계인들의 동의가 필요한 사항"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