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동기획 6]항동마을기록 더 이상 늦출 때 아니다
인천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 서울장수박물관 등 눈길
300년의 집성촌 역사를 지닌 항동 안쪽마을은 본지가 지역 향토사에 관심을 갖던 2000년대 초반부터 주목해오던 마을 중 한 곳이다. 서울 대도심에선 보기 드문 마을산신제 같은 유서깊은 전통뿐 아니라 녹슨 철길, 붉은 석양 아래 펼쳐진 황금 들판 등 자연보고가 따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 곳이 항동보금자리주택지구로 지정돼 조만간 SH에 의해 4600호 규모의 아파트일대로 개발된다. 항동뿐 아니라 지역내 많은 마을들이 그동안 재개발 재건축 바람속에 '과거'를 쓸어내고 '오늘'만 담아냈다. 고유한 유산과 전통, 삶의 문화가 담겨 존속되어 온 마을에 대한 기록의 필요성이나 관심조차 구로지역은 거의 갖지 못했던게 사실이다.
'항동의 추억, 항동의 유산'기획은 바로 그같은 문제의식의 일단에서 출발했다. 일부 마을주민은 항동에 특별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항동은 한 때 무형문화재로 등재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정도로 산신제 같은 전통이 살아있는 곳이었고, 끼니를 때우기 조차 어렵던 60년대 식량산업의 한축을 담당하던 농촌진흥원 원종장이나 닭부화장 등이 있던 곳이다.
영국등 외국에서 보듯 작은 마을의 중고서점 하나가 세계적인 관광지로 마을을 살리기도 한다. 마을의 경쟁력, 살맛나는 마을을 만드는 차별화 전략의 핵심중 하나인 스토리텔링도 컨텐츠가 살아있을 때 가능하다. 그 컨텐츠는 또 발굴과 기록, 보존이 있을 때 가능하다.
더 늦기 전에 사라질 마을 항동등 지역 마을들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와 기록 보존작업이 시급하다.
<편집자 주>
[기획_항동의 추억, 항동의 유산]
- 글 싣는 순서 -
1. 서막, 항동의 유래와 변천
2. 항동사람, 평생을 살다 1
3. 항동사람, 평생을 살다 2
4. 항동사람, 오늘을 살다
5. 항동마을 문화생태지도
6. 항동의 꿈, 항동의 기록
사라지는 마을에 대한 고민은 비단 항동만의 문제가 아니다. 개발로 인해 급격한 변화가 진행되는 서울과 경기도 등지에선 진작부터 마을기록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됐다.
그 중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도내동의 사례는 단연 눈에 띄었다. 특히 이곳은 원흥보금자리 사업으로 곧 사라질 마을이었다는 점과 고려시대 때부터 거주해온 인동 장씨, 김해 김씨 등이 집성촌을 이뤄왔다는 점에서 항동과 비슷한 부분이 매우 많았다. 항동 안쪽 마을 역시 10대 이상 터를 잡아온 김해 김씨들과 100년 가까이 살아온 순흥 안씨들의 역사가 보금자리 개발과 함께 사라지기 직전에 있기 때문이다.
고양시는 이 마을에 대한 역사를 남기기 위해 거주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민속유물을 수집하는 등의 활동을 벌였다. 또 이 조사를 바탕으로 360°사진, 동영상, 위치기반서비스 등의 콘텐츠를 제작하기도 했다.
이 같은 기록의 목적은 정보를 잘 정리해 개발 후 살게 될 주민들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고양시는 이밖에 개발로 인해 변해가는 공간 곳곳에 대한 기록사업을 진행 중이기도 했다.
경기도 고양시 문화예술과 정동일 주무관은 "고양시가 그린벨트 등 개발규제에 묶여 있다가 동네가 개발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면서 한옥집들이 연립, 빌라 등 아주 일반적인 건물로 바뀌어 가는 게 안타까워 마을 기록을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따 라서 "사진을 찍어두는 게 가장 중 요하고 동네의 옛날 지명이라든가 마을에 내려오는 이야기를 홈페이지에 올리는 것은 물론 책, DVD 제작 등을 계획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 주무관은 또 "마을기록사업은 기초자치단체에서 반드시 해야 할 사업 중 하나다"라며 "가령 2013년 그 도시 그 마을의 모습은 어떠했다라고 참고하려면 기록해 남겨야 하고 그래야 콘텐츠를 만드는 등 다양한 방식의 활용도 가능하다"고 마을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최근 서울시에서 조성한 장수마을 사례도 주목할 만했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삼선동에 위치한 장수마을은 올해 5월 재개발정비구역 해제절차를 밟고 주거환경관리사업을 통해 생활환경은 개선하고 마을의 특징을 지키는 작업을 해왔다.
이 사업 중에서도 눈여겨봐야 할 건 마을박물관 건립이었다. 마을박물관은 2층, 109㎡의 규모로 건립됐는데 한양도성 옆에 자리해온 주민들의 역사적, 문화적 삶을 기록하고 전시한 공간이다.
서울시 주거환경과는 "주거환경관리사업내용에 따라 주민공동이용시설확충의 일환으로 마을 박물관을 건립해 주민들의 이야기를 모아 전시하고 책자로 만들기도 했다"며 "한양도성과 인접한 곳이다 보니 예전 모습이 잘 남아있는 곳이라 박물관 건립을 추진했다"고 밝혔다.
장수마을의 박물관 건립 사례가 중요한 것은 단순한 기록뿐만이 아니라 주민들이 실제로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물리적 시설이 필요함은 물론, 항동 주민들 사이에서도 역사박물관 건립에 대한 요구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5회에 걸쳐 기획으로 진행했던 우리지역 항동에 살고 계시는 김영서 어르신이 특히 박물관 건립을 강조했는데 "앞으로 항동이라는 마을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동네 역사박물관이라도 지어서 이런 마을이 있었고 이런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남겨야 한다"라며 "마을 입구에 보면 '마음의 고향 항골'이라고 적혀있는데 마을토박이가 만든 게 아니라 여기서 20~30년 산 친구가 여기는 내 고향이라고 세웠다. 그런 마음들을 최소한 개발하면서 살려줘야 한다"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하지만 역사박물관 건립 등 마을기록화 사업을 전면적으로 다루는 부서는 현재 없는 상태다. 국립민속박물관이 2008년 서울시 마포구 아현동 재개발 사업이 진행될 때, 그 일대 마을 구조의 독특성과 예술적인 요소에 주목해 마을 기록을 남기는 등 개별적인 사례들은 더러 있었지만 계속성을 갖고 진행된 개발 관련 마을기록사업은 없었다는 게 서울시 재개발과의 답변이었다.
서울시 미래유산보조사업 1,2천만원 보수비 지원
서울시는 다만 개발과는 별개로 미래에 남길만한 유산을 선정하고 기록하는 사업은 진행 중이었는데 문화정책과의 이른바 미래유산보존사업이었다.
문화정책과 이대호 주무관은 "미래유산 사업의 경우 문화재가 아닌 것 중 남기고 알릴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을 시민들에게 전하고, 관리 및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중요한 가옥 등은 올해도 한 건 매입해서 박물관이나 기념관을 조성한 사례가 있다"며 "성미산 마을 등 공동단위들도 가치가 있는 곳들은 미래유산으로 선정을 했고 충무로 인쇄골목이라든지 골목이나 시장 등도 선정대상이다"라고 말했다. 이 주무관에 따르면 항동 안쪽 마을 또한 미래유산으로 심의를 요청해 볼만 했다.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 작은 단위의 마을일지라도 보존가치가 있다면 검토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선정이 된다면 서울시는 마을에 대한 역사와 사진 등을 미래유산 홈페이지에 등재한다. 또 심사위원들의 심의를 통해 1~2천만 원 가량의 보수비를 지원받을 수도 있다.
문제는 그러나 산신제 터, 서낭당 고개, 70년 된 담뱃가게 등을 물리적으로 보존하기 위한지자체나 시행사의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어렵다면 최소한 이곳 중 한 곳을 활용해 박물관으로 만들려는 의사가 있어야만 한다. 개발로 사라져 보존할 것이 없어진다면 미래유산으로 제안해 볼 수도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래유산 선정 및 보존 작업은 재산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진행되므로 주민 보상 후, 시행사인 서울도시개발공사(SH)의 의지가 없다면 시행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관계자도 이에 대해 "기본적으로 이런 내용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면 지역의 남겨야할 흔적들이 정비 사업으로 인해서 다 없어지는 만큼 지자체나 시행사 등을 통해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게 가장 좋다"고 의견을 내비쳤다.
SH, 구로구청 관심과 지원필요
항동주민들 사이에서도 항동에 대한 기록이나 보존의 필요성이 조금씩 제기되고 있다.
항동 대책위원회 어용위원장은 "항동지구에 5000여가구가 들어서는데 오랜세월동안 만들어진 풍습과 전통을 살린다면 항동단지는 새살 돋는 단지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민간단체나 신문사 등이 남긴 항동마을 자료 등에 근거해 성황당이나 우물자리 표식과 약사라도 남겨놓으면 이후 문화적 재현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제안했다.
어 위원장은 이를 위해 보금자리 시행사인 SH나 구로구청이 이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해야 할때라고 강조했다
항동 주민비상대책위원회 이윤호 위원장은 "다른 사안이 워낙 급박하니 작은 문제들은 관심도 없어 제안하지 않았다"라며 "도서관이 들어선다면 한 편에 중요한 사진이나 각 집집마다 기증받은 과거 사진을 앨범에 담고 마을을 대표할 수 있는 물건들을 마련해 전시하면 좋겠다"고 전했다.
항동은 300년 가까이 한 가문이 터를 잡아왔고 산업화 시대엔 개발로 갈 곳 없어 밀려난 사람들이 모여든 서울의 끝이었다.
이 서울의 경계에 모인 다양한 사연의 경계인들은 때로는 부대끼며 갈등을 겪기도 했지만 서울 도심과 또 다른 문화부락을 형성하며 이어져 왔다.
항동은 서울이지만 시골인 곳, 서울이지만 경기도와도 가까운 곳이었기에 독특한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있는 곳이다.
따라서 보금자리주택 준공 이후 이곳으로 이주 올 주민들은 물론 항동을 떠나 살게 될 향토민들을 위해서도 박물관 건립 등 마을기록관련 사업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위해 구로구와 SH의 의지가 절실한 상황임은 두 말할 나위없다.
■ 기획취재팀
김경숙· 윤용훈 · 박주환· 신승헌 기자
■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