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공단'의 역사를 찾아...

역사기념사업 토론회, 청소년교육연극 등 잇따라

2013-02-08     송희정 기자
구로공단을 매개로 부모세대와 자녀세대의 공감과 소통을 시도한 참여형 교육연극이 구로아트밸리 무대에 올려져 참여학생과 교사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사진은 지난4일 오후 영림중 3학년생들이 함께 한 무대 전경.

은회색 고층 지식산업센터 너머로 아스라이 사라져간 구로공단의 역사가 우리 앞에 성큼성큼 다가서고 있다.

지난 4~6일 구로구와 금천구에서는 구로공단의 산업화와 노동의 역사를 미래세대에 물려줄 가치 있는 유산으로 만들기 위한 뜻 깊은 시도들이 잇따라 이뤄졌다.

옛 구로공단 전역을 살아있는 역사기념관으로 만들기 위한 '구로공단 역사기념사업 세부계획안수립 연구용역 토론회'와 구로공단을 매개로 부모세대와 자녀세대의 시대를 초월한 공감과 소통을 이끈 '구로 노동역사 이해를 위한 교육연극'이 그것이다.

 복원 … 기록 … 체험
 공단 전역을 기념관화
지난 6일 금천구 가산동 우림라이온스밸리 라이온스홀에서는 경영계와 노동계, 시민사회단체, 학계, 구로·금천구청 관계자 6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구로공단역사기념사업 세부계획안 수립 연구용역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은 구로공단역사기념사업(이하 역사기념사업)이 시작된 이래 민·관·산·학 관련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댄 최대 규모의 공론장이었다.

역사기념사업은 지난 2006년 성공회대학교가 구로구와 추진하려다 한차례 수포로 돌아간 이후 2011년 4월 금천구가 민관협력추진사업으로 역사기념사업을 채택하면서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다.

금천구는 작년 1월 기본계획수립용역을 마친 후 4월 구로구청, 한국산업단지공단 서울본부 등과 삼자기관 공동추진에 합의했다. 이들은 각각 용역비 5천만원씩을 부담한 가운데 9월 4일 성공회대 민주자료관(연구책임 김동춘 교수)에 의뢰해 세부계획수립용역을 발주했다.

이날 토론회는 용역기관인 민주자료관 측이 용역최종보고서 제출일(2월 14일) 전에 가안으로 도출된 사업계획안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보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토론회는 역사기념사업 총론과 국내외 사례, 주요 거점공간 발굴현황, 체험코스 개발, 사업프로그램 등 주제별 연구원들의 발표로 포문을 열었다.

이날 민주자료관 측은 역사기념사업의 기본 컨셉으로 △단일 박물관이 아닌 공단 전체의 기념관화 △점(현장)과 선(시·공간적 역사이야기)으로 연결된 역사교육과 체험의 장 △단일 주체가 아닌 지역사회 운동으로서의 기념사업 추진 등을 꼽았다.

또한 구로공단 내 체험관과 전시관, 교육관 등으로 적합한 장소후보지 44곳을 제시하는 한편 향후 장소발굴과 선정의 객관성 등을 위해 '(가)구로공단산업문화유산 민관합동 보존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

이와 함께 '한강의기적', '노동민주화', '삶과쉼' 등을 테마로 한 9개의 체험코스의 대략적인 밑그림도 선보였다.

토론시간에는 벌집체험관 추진과정과 사업주체 구성 등을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 과거 구로공단에서 민주노조운동을 펼친 노동계 인사들은 "모든 생활이 집안에서 가능했던 이유로 닭장집이라 불렀는데 벌집이라는 틀린 용어가 등장했다"며 사업추진 시 노동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은 것에 분통을 터트렸다. 사업주체에 대한 문제제기도 잇따랐다. 민주노총 남부지구협의회 구자현 의장은 "구로공단의 핵심주체는 노동자인데 역사를 기념한다면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담지 않았다"며 사업추진이 기업인단체 중심인 된 것에 항의했다. 역사 복원의 정확성과 시급성을 강조한 주민도 있었다.

62년부터 구로동에 살기 시작해 공단의 역사를 소상하게 기억하고 있는 서동석(58) 씨는 "2공단 사거리 인근에는 68년도 산업박람회 때 지어진 건물의 자취가 아직 남아 있는 등 지금 당장 사두지 않으면 사라질 옛 자원들이 적지않다"며 "기억을 제대로 살려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라질 위험에 처한 것들을 하루빨리 지켜내는 일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구로공단 청소년 교육연극 '호응'

구로 노동역사 이해를 위한 교육연극 첫 공연이 있던 지난 4일 오후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 무대는 기계소음과 먼지 가득한 1985년 구로공단의 한 봉제공장으로 변신했다. 이날 무대의 주인공은 영림중 3학년 54명의 학생들이었다. 엄마아빠가 16살이던 때로 돌아가 어린노동자 역을 맡은 학생들은 '큐'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27년 전 이야기 속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총 5개 장면으로 이뤄진 연극은 꿈과 희망을 안고 공장에 입사한 어린노동자의 일터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때론 밝게, 때론 차갑고 아프게 한 점의 여과 없이 보여줬다. 환기창 하나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잔업과 야근을 반복하던 어느 날 은실(전문배우)이가 절단기에 손가락을 잃고 해고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회사 편인 공장장의 우격다짐이 극에 달하자 학생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은실에게 합당한 보상은커녕 일터마저 빼앗아버린 사장(전문배우)을 향해 "회사이익만 챙기는 것 아니냐" "애들 좀 그만 괴롭혀라" 등의 성토가 쏟아졌다. 급기야 무대는 모둠토론장으로 바뀌어 '계속 일해야 한다'와 '끝까지 항의해야한다'로 나눠져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항의해야 한다고 주장한 학생들은 청소년근로기준법, 법정근로시간 등 교과서에서도 배운 적이 없던 단어를 쏟아내며 탄원서 제출과 노동청 신고 등의 해결책을 내놓기도 했다. 극은 '네버엔딩스토리'를 고하며 장장 3시간에 걸친 극의 막을 내렸다.

연극을 기획하고 연출한 연극예술교육가공동체 '올리브와 찐콩'의 이영숙 대표는 "지역사회에 일종의 콤플렉스로 각인돼온 구로공단을, 실제 그 속에서 일했던 부모세대의 꿈과 사랑, 분노 등 보편적 인간정서를 통해 아이들과 화해시키고 싶었다"며 "이번에 참가한 영림·개웅·오류중 외에도 향후 재정지원이 뒷받침된다며 좀 더 많은 학생들과 함께하고픈 바람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