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_우리동네 이야기3] 슬픔 찍어내던 빨간 벽돌공장
구로3동 래미안아파트 건립30년전 현장은?
지금은 구로3동을 대표하는 아파트로 구로디지털단지 초입에서 위용을 자랑하는 삼성래미안아파트. 인근 한신휴플러스와 두산위브아파트까지 엮어 대규모 아파트촌의 중심축이다. 지난 2004년 5월 30일 준공된 래미안아파트의 전신이 시영아파트인 구로아파트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구로아파트가 지어지기 전에 이곳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1970년대 초중반까지 해도 이곳은 대형 벽돌공장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고 동네 주민들은 기억하고 있다.
구로시영아파트 재건축 조합장으로 래미안아파트의 산파 역할을 했던 정승우 시의원도 아파트 그 자리 그대로가 벽돌공장이 있었다고 전했다. "굉장히 큰 벽돌공장이 있었죠. 1970년대 중반인가 벽돌공장이 침체기에 빠져들면서 공장이 문을 닫고 몇 년 동안 폐허로 있던 땅을 서울시가 매입해 시영아파트를 지은 거죠. 바로 그 옆은 구로공단의 공장들이 즐비하게 있었고요."
구로시영아파트가 1977년에 지어졌으니, 최대 70년대 초중반까지는 벽돌공장의 기계소리가 멈추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벽돌공장은 주변 야산과 땅에서 퍼온 흙으로 빨간 벽돌은 물론 소위 브로꾸(H형) 벽돌을 찍어냈고, 인근 구로3동과 구로4동에 막 들어서기 시작한 빌라와 주택을 짓는데 공급을 하면서 번창해나갔다고. 하지만, 당시 청계천 등에서 쫓겨나 구로3, 4동에 새 둥지를 틀기 시작한 철거민들은 벽돌공장을 바로 옆에 두고도 자신들의 집에 벽돌을 앉히고 쌓지는 못했다.
50여년전, 1960년대 중반께 구로3동 판자촌으로 이주해 지금까지 구로동에서 살고 있는 최분순(77, 구로3동) 어르신은 가난했던 그 시절, 빨간 벽돌에 맺힌 사연을 꺼내놓았다. "정부가 만들어준 판자촌은 4가구가 한 집에 들어오게 해놨는데, 칸도 안 나눠놨어. 방만 나서면 쌓인 게 빨간 벽돌이었지만 어디 우리 형편에 엄두를 낼 수가 있나. 브로꾸 벽돌 갖다가 벽을 만들어 살았어. 그때 빨간 벽돌이 어찌나 예쁘고 좋아보였던지."
최 어르신은 당시 주변 풍경까지 생생하게 기억해냈다.
"얼마 전까지 구로3동 주민센터가 있던 자리 있잖여, 거기 흙을 벽돌공장에서 많이 퍼갔어. 커다란 웅덩이가 생길 정도였으니까. 겨울에 웅덩이 물이 꽁꽁 얼면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였지. 나무에 날을 달아 스케이트를 지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어. 어제 일 같은데 벌써 40년이 훌쩍 지났네."
낮은 판자촌 골목의 구수한 저녁밥 냄새 사이로 퍼진 가슴 아픈 이야기도 이제는 아스라한 옛 추억으로 전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