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11주년 기획] 구로를 걷다_ 치유의 길 목감천 ~잣절공원

물길 흙길 숲길 고샅길,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2011-03-14     송희정 기자

 창간 11주년을 맞아 구로타임즈가 길을 떠났다. 취재원을 만나러 가는 길이 아니라, 가족이나 친구의 손을 잡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돌아볼 수 있는 친근한 길이다. 그중 하나는  목감천과 잣절공원을 잇는 장장 11km의 둘레길이고 또 하나는 70~90년대 구로의 현대사가 녹아져 있는 '구로동길'이다. 길을 걷고 난 뒤 전자는 '치유의 길', 후자는 '시간 여행길'이라 이름 붙여보았다.


 이번호에서는 목감천과 개웅산, 굴봉산, 매봉산 등 구로'갑'지역의 물길과 녹지축을 잇는 '치유의 길'을 떠난다. 구로구청과 구로디지털산업단지를 잇는 '시간 여행길'은 다음호에 소개한다.


 이 글은 참고서일뿐 길의 인문학적지도를 완성하는 것은 오롯이 걷는 이의 몫이다. 자 이제 함께 떠나보자.           <편집자 주>

 


 
                                               ■ 걷기 정보
 구일역에서 잣절공원까지 총 7시간(점심식사 30분 포함)이 소요됐다. 동네 뒷산이지만 걷는 양이 만만찮아 배낭과 등산화, 모자 등 산행준비를 해가는 게 좋다. 일단 산에 오르면 가게나 화장실이 없기에 미리미리 대비해야 한다. 특히 매봉산 능선 길의 경우 4.0km 남짓 구간임을 감안하고 충분한 음료와 간단한 부식거리를 준비해가야 한다. 이 구간 공중화장실은 하산 길의 잣절공원 하나다. 지도에만 기대지 말고 의심 가는 길은 꼭 등산객들에게 물어보길 바란다. 대부분 경력이 오래된 트레킹 배테랑들이다.

 

 

꽃샘추위에 마음이 급하다. 무거운 카메라를 짊어지고 물통하나 달랑 들고 나선 길. 지도는 있되 머릿속에 담긴 여정은 없다. 구로'갑'지역의 물길과 녹지축을 이어 장장 11km에 달하는 '⊂'자 모양의 코스. 분명 한 번쯤은 발길이 닿았던 곳이나 한달음에 이어서 가본 일은 없다. 몇 시간이 걸릴지, 어디서 마침표를 찍을지, 찬바람을 맞고서 또 얼마를 헤맬지 당체 가늠할 수 없는 이 여정의 출발지는 지하철1호선 구일역이다.
 
 1 구일역에 도착해 무작정 역무원 사무실 문부터 두드린다. 발치 아래 안양천이 흐르는 교상역사인 이곳에서 눈대중으로 목감천변 이르는 길을 찾는 건 혼자서 무리다. 선한 눈빛의 한 역무원이 사무실 벽면에 붙어있는 지도를 한참 들여다본 후 "일단 철교를 건너 주민들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라 일러준다.


 철산1동주민센터 방향 출구로 나오니 역무원 말대로 안양천을 가로지르는 철교가 나온다. 물길을 내려다보며 물길 위를 걷는 건 예나 지금이나 들뜨고 설레는 일이다. 길이가 족히 200m는 될 듯한 철교를 지나니 강변으로 내려가는 길과 직진하는 길, 두 갈림길이 나온다. 직진하는 길을 택해 너비 3m의 소로를 따라 철산 리버빌아파트 담장길로 100m 남짓 걸으니 과연 목감천이 내려다뵌다.


 속으로 '앗싸'를 외치며 걷는데 또 갈림길이다. 일단 멀리 개봉2동 현대아파트가 보이는 쪽으로 우측 길로 방향을 틀었다. 개봉1빗물펌프장 앞에서 왼쪽 길을 따라 걷는데 멀리서 들리는 귀에 익숙한 차량소음들. 남부순환로다. 도로 아래로 목감천이 유유히 흐르고 천변으로 구불구불 산책로가 쭉 이어진다. 출발이 산뜻하다.

 2 구로구에는 모두 4개의 물줄기가 흐르고 있다. 구로의 젓줄인 안양천 그리고 안양천의 지류인 도림천과 오류천, 목감천이 그것이다. 고척교 밑에서 안양천과 합류하는 목감천은 개봉동과 광명시를 구획하며 '개웅개울', '개봉천'이라 칭하기도 한다.


 구로구의 한 문헌자료에 따르면 옛날에는 목감천에서 목욕을 하면 때가 잘 빠지고 머리도 윤기가 났었다고 한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우거진 곳에는 빨래터, 우물터가 있었다 하는데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그곳에 제방이 쌓이고 건물과 도로가 들어섰다.


 목감천은 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서울의 대표적 오염하천'이라는 오명을 썼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하천정화가 이뤄지면서 다소의 오명은 벗었다. 산책 나온 한 주민(여, 71, 개봉2동)은 "과거 여름철이면 여기서 풍기는 악취가 말도 못하게 심했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많이 깨끗해져 낚시하는 사람들까지 생겼다"고 말한다. 내심 기대했던 강변정취는 느낄 수 없다.


 겨울가뭄에 바닥이 훤히 드러난 가냘픈 물길과 건너편 광명시 구간에서 들리는 공사소음이 꽃샘추위가 몰고 온 찬바람과 뒤섞여 온몸을 움츠러들게 한다. 따스한 봄날의 목감천변을 머릿속에 그리며 걸음을 재촉한다.

     개웅산 정상 트인 조망 '구로가 한 눈에'

 

 3 목감천변을 따라 철산교와 개봉교를 지나 1.5km 남짓 걷자 흰색의 개웅교가 모습을 드러낸다. 천변과 이어진 계단을 타고 올라가 '경기송산쌀상회' 방향으로 일방통행길을 따라 150m남짓 걸으면 개명초등학교 이정표가 나타난다. 화살표 방향으로 우측골목(개봉로1다길)으로 들어서 개명초 정문 앞 오르막길 초입에서 우측 '개봉로3가길' 들어선 후 '신아맨션' 쪽 좌측 길로 간다.

얼마 못미처 정자 하나가 나오는데 이곳을 끼고서 왼쪽 길로 150m남짓 쭉 오르면 길훈아파트 후문이 나온다. 후문으로 들어서 길훈아파트 내 2단지와 3단지 사이를 지나 계단이 형성된 내리막길로 한참 내려가면 광진교회가 나타난다. 교회 직전의 한 주택공사현장과 '라이프주택' 사이 옆길로 왼쪽으로 꺾으면 이 길이 바로 개웅산 등산로로 인도하는 길이다.

 


 개웅산을 즐겨 찾는 주민들이 이 글을 본다면 혀를 끌끌 차며 한심해 할 수도 있겠다. 목감천변에서 개봉교 쪽으로 올라가 대원주유소와 성인약국 사이 길(개봉로3길)을 따라 직선으로 쭉 오르기만 하면 바로 광진교회인데 뭣 하러 꽈배기마냥 길을 배배 꼬아서 가느냐고 말이다.


 물길과 숲길을 찾아 떠난 이번 여정에는 차가 다니는 대로보다는 꼬불꼬불 골목길을 따라야할 것 같다.


 물난리 때면 전 주민이 피신했다던 개명초 오르막길에 눈도장도 찍고, 앞으로 몇 년 후면 재건축으로 사라질 길훈아파트의 가파른 계단을 껑충껑충 내려가 아래서 위를 한껏 올라다보는 그 재미가 매우 쏠쏠하다. 개웅산 입구를 찾는 제일 수월한 방법은 개봉역 1번출구로 나와 구로03번 마을버스를 타고 광진교회 앞에서 내리는 것이다.
 
 4 개봉2·3동과 오류2동 경계에 위치한 개웅산은 산책 삼아 운동 삼아 오르기 안성맞춤이다. 산 아래 개봉3동 일대의 지형이 움푹 들어가 있어 과거 난리 때마다 총알이 개웃개웃 피해갔다 해서 '개웅마을'이라 불렸는데 산 이름도 마을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 한다. 개웅산은 개봉동 지명 유래에도 일조했다. 개웅산의 '개'자와 매봉산의 '매'자를 따 동 이름을 지었다는 것.


 해발고도 125m의 낮은 산이지만 등산로가 워낙 여러 줄기로 나 있어 초행자가 길 잃기 딱 쉬운 산이기도 하다. 개봉2동 진로아파트, 개봉3동 한진아파트, 오류2동 평강교회, 천왕역 등 진입로가 여러 곳이다.


 다시 여정을 시작해, 개봉3동 한진아파트 광진교회 쪽 진입로에 들어서면 공원화장실 앞 등산로 입구에서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평평한 길이고 다른 하나는 가파른 나무계단이다. 산을 에둘러 오르는 오르막길 앞에서 잠시 머뭇대는데 혼자 산책 나온 윤덕봉(여, 63, 개봉3동) 씨가 길동무하자며 손을 내민다. 냉큼 따라나선다.
 
 5 개웅산 정상인 연지봉은 직선코스를 이용하면 20분(700m), 둘레길을 이용하면 40분 정도 소요된다. 둘레길은 이정표가 몇 군데 없어 갈림길 앞에서 등산객을 만나지 않으면 의도치 않게 하산 길로 접어들기 쉽다.


 등산로 곳곳에는 나무계단이 설치돼 있는데 흙을 밟으러 산을 찾은 이들에게는 종종 원망의 대상이 되곤 한다. 윤덕봉 씨는 "흙 밟고 흙 냄새 맡으러 산을 오는데 온통 나무계단이니 쓸 데 없이 돈 쓴다고 한탄하는 주민들이 많다"고 귀띔해준다.


 개웅산 정상인 연지봉(일명 '염주봉')의 탁 트인 조망은 가슴 속까지 시원하게 만든다. 멀리 남쪽으로 광명경륜돔경기장이 내려다보이고 천왕산과 도덕산, 양지산도 굽어보인다. 서쪽으로 새로 지은 아파트가 즐비한 곳이 바로 천왕동이다. 개발만 아니었다면 구로구 걷기코스의 백미는 저곳, 천왕동이어야 한다.


 진주하씨들이 개척했다는 천왕골과 청주한씨들의 집성촌, 고려 우왕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으며 효성 또한 지극했던 노숭의 묘 등 수대에 걸쳐 전해져온 무수한 전설과 이야기 거리가 회색빛 콘크리트에 파묻혔다. 이제 여정은 사라진 그 마을을 굽어볼 수 있는 굴봉산으로 향한다.
 
 6 굴봉산은 '천왕산'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이 산은 부천시 옥길동과 경계가 되는 표고 134m의 건지봉으로 이어진다. '굴봉'이라는 이름은 굴이 있다 해서 붙여졌다. 145.6m, 143m, 105m의 세 봉우리가 나란히 솟아 있어 '삼각산'이라고도 부른다.


 굴봉산은 서울의 진산인 북한산과 얽힌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 북한산 서남쪽 자락에 인왕산이 있는데, 일명 삼각산으로 불리는 북한산의 인왕과 또 다른 삼각산으로 불리는 굴봉산의 천왕은 일련의 관계가 있다는 것.

 

발길 닿는 곳곳 '이야기 박물관'

 설화 전설 역사 등으로 흥미진진

 개웅의 유래, 천왕과 인왕, 오류철길

 

 인왕의 '인(仁)'은 하늘처럼 크다는 뜻으로 '천天'으로 바꾸어 놓으면 천왕이 된다. 결국 북한산을 축소한 것이 천왕산이라는 이야기. 개웅산에서 굴봉산을 가려면 천왕역을 거쳐야 한다. 개웅산 정상인 연지봉에서 천왕역 이정표 방향으로 내려오면 천왕2지구 공사현장에 이른다. 터만 조성해 놓은 휑한 공사현장을 가로지르면 찻길(오리로)이 나오는데 우측으로 길을 따라 쭉 내려오면 지하철7호선 천왕역이 나온다.


 천왕역 앞에서 길을 건너 다시 가던 방향으로 300m 가량 직전하면 '광개토공인중개사' 인근에 오남중학교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를 따라 좌측 골목으로 들어서 오남중 정문을 지나 350m 가량 계속 직진하면 '약수터가든'을 지나 오남약수터가 나타난다. 굴봉산 등산로는 여기서 부터다.
 
 7 굴봉산에서는 개웅산에서 만끽하지 못했던 흙 내음과 숲 내음에 흠뻑 젖어들 수 있다. 그만큼 사람 손때가 덜 묻은 산이란 의미다. 우거진 숲길 낙엽에 푹 덮인 등산로 곳곳에서 겨우내 얼었던 대지가 풀리면서 내뿜는 진한 흙 내음이 진동을 한다.


 졸참나무, 생각나무, 노린재나무, 느릎나무, 팽나무 등 수종도 다양하다. 푹신푹신한 흙길과, 나무를 덧대 발 딛기 편한 나무길 등이 홀로 산을 오르는 이의 스산한 마음을 포근히 감싸준다. 인적이 드물어 새소리도 청량하다.


 자연에 홀린 듯 30분 정도 내처 오르니 산 정상에 이른다. 이곳에서 또 한 명의 길동무를 만난다. 정상에서 항동 방향으로 능선을 따라 함께 걷다 항동약수터 내려가는 길을 일러주는 것도 모자라 목적지까지 함께 가주시겠단다.


 김영임(여, 70, 부천 역공동) 씨는 "여긴 인적이 드물어 혼자 다니면 안 된다. 나도 무서웠던 참에 잘 만났다"며 흔쾌히 길 안내를 자처하신다. 능선을 따라 300m가량 걸으니 '항동' 이정표가 나타난다. 하지만 항동약수터를 가기 위해선 항동 쪽이 아닌 '등산로' 이정표 방향으로 가야 한다. 여기서 조금 더 갔을 때 진짜 '항동약수터' 이정표를 만난다. 20분가량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가면 가슴 속까지 시원한 항동약수를 원 없이 마실 수 있다.
 
 8 항동약수터에서 아래로 쭉 내려오면 계수대로 공사현장을 만난다. 이곳을 가로질러 농로를 따라 걷다보면 항동철길이 나온다. 항동철길은 사진작가와 여행 마니아들 사이에 소문난 명소다.


 정확한 이름은 '오류철길'이다. 1950년 개통된 철길은 지하철1호선 오류동역에서 분기된 경기화학전용선으로, 오류광산에서 캐낸 흑연 등을 실어 나르는 역할을 했다. 오류광산은 KG케미칼 부천공장(옛 경기화학공장)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경기도 유일의 인상흑연광산인 이곳은 1903년 개광해 금, 은, 동 등의 광물을 채취하는데 쓰이다 80년대 초반 값싼 중국산의 수입으로 폐쇄됐다.


 철길을 따라 좌측으로 가다보면 우측으로 보이는 곳이 바로 서울수목원 공사현장이다. 항리1건널목을 건너 차로(항동로) 교차지점에서 우측 차로를 따라가다 삼거리에서 우측길로 걸어가면 성공회대학교가 나온다. 항리1건널목에서 700m 떨어진 곳으로 만만찮은 거리이나 성공회대를 경유하는 6614마을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나 걷는 시간이나 실상은 엇비슷하다.

 

9 성공회대 입구에서 정면을 바라보면 이국적인 붉은 벽돌건물 하나가 시야에 들어온다. 바로 유한양행 창업자인 고 유일한 박사의 별장으로 알려진 '구드인관'이다. 이 건물은 지난 1936년 유 박사가 가족들의 사저로 쓰기 위해 건축한 것이다. 유신체제 하에서는 민주화를 위한 연구집회 장소로도 사용됐으며, 민청학련사건의 산실이기도 하다.

 당시의 조적조 건축양식이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어 건축사적으로나 인문학적으로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성공회대 안에 있는 자연드림매장에서 1,500원밖에 안하는 공정무역커피를 사들고 구드인관을 한 바퀴 돌아본다. 찬바람에 얼었던 몸도 녹고, 마음도 훈훈해진다.

 

   ■ 이야기1   천왕동의 청백리 노숭
 

 천왕지구 아파트 개발로 지금은 딴 곳으로 이전했지만, 예전 굴봉산 줄기 동쪽 자락에 노숭(1337~1414)이란 인물의 묘가 있었다. 노숭은 지금으로 치면 총리에 해당하는 검교우의정까지 올랐던 인물이다. 그의 청명함을 그린 일화가 몇 가지 전해져온다.
 고려말 공민왕이 승하한 후 놀기만 좋아하고 절제가 없었던 어린 우왕이 즉위했는데 어느 날 우왕이 신하들과 놀이를 갔다가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 물이 불어났다. 수행하던 신하들이 우왕좌왕하며 왕을 보좌하지 못했는데 이때 노승이 왕을 업고 냇물을 건너면서 임금으로서 올바른 행동을 해줄 것을 간청했다 한다.
 이후 왕이 말을 타고 사냥하다가 멋모르고 노숭의 집 앞에까지 오게 됐는데 그 집 주인이 노숭임을 안 후 부랴부랴 도망쳤다는 얘기다. 노숭이 경기좌도관찰사일 때에는 경기지역 고관들의 땅에까지 공평하게 세금을 매기고 일체의 청탁을 하지 않았다 한다. 또한 예순이 넘어서까지 노모의 진짓상을 아침저녁으로 수발들었다하니 여러모로 오늘날 공직자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인물이다.

 

 

 

   ■ 이야기2     항동의 미덕
 항동약수터 인근의 마을이 바로 항동마을이다. 옛 지명 '항곡(航谷)'에서 알 수 있듯 지세가 배 모양의 골짝 같다 해서 붙여진 항동은 서울에 이런 마을이 있을까싶게 빼어난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 350년 마을 역사에 걸맞게 곳곳에 숨겨진 보물들도 많다. 150년 된 고택과 회나무 등이 지금도 이곳 주민들의 일상과 함께한다. 무엇보다 마을공동체의 미덕이 아직도 살아있는 곳이다. 이곳은 지난해 정부의 보금자리주택지구로 지정됐다. 마음이 여유롭다면 꼭 항동마을을 방문하길 권한다. 농사짓고 사시던 항동의 순박한 어르신들이 왜 머리띠를 동여매고 정부의 개발정책에 대항하는지 십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성공회대 안에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민주자료관도 위치해 있다. 일단 오늘은 갈 길이 멀어 다음기회를 기약하고는 다시 여정을 시작한다.
 


 10 성공회대를 나와 가던 길로 계속 걸으면 차들이 씽씽 달리는 대로가 나온다. 너비 35m, 왕복8차선인 경인로다. 1899년 경인철도가 개통되기 전만해도 이 도로는 수도 서울과 어촌 인천을 잇는 거의 유일한 육상교통로였다. 여기서부터 매봉산 입구에 이르는 길은 조금 복잡하다. 경인로 앞 횡단보도를 건너면 여기서 부터가 온수동이다. '대일특수강'과 '동진정육점' 사이 골목으로 직진해 20m 들어가면 우측에 동진빌라 후문이 나온다.


 이곳을 관통하면 소로가 나오는데 '연세필의원' 방향으로 좌측 길을 쭉 따라가면 지하철7호선 온수역 2번출구가 나타난다. 온수역사를 통해 6번출구로 나와 차로(부일로)를 건너 월드빌라 옆길(부일로5길)로 300m가량 계속 직진해서 올라가면 '청국장 손두부' 간판이 보인다.


 여기서 오른쪽 좁은 길을 따라 쭉 오르다 무덤이 보이는 곳에서 왼쪽 길로 접어들어 온수힐스테이트(옛 온수연립) 아치형후문 앞에서 왼쪽 길을 택해 걸으면 여기서 부터가 바로 매봉산 능선 길의 시작이다.
 
 11 일단 능선 길을 걷기 시작해 이정표가 보이면 처음 약 3.0km 구간은 무조건 '동부골든아파트(오류2동)' 방향으로 가야 한다. 온수힐스테이트 후문에서 시작해 개봉중학교 뒤편 잣절공원까지 이르는 4.0km 남짓한 능선 길은 가히 '하늘산책로'라 이름 붙여도 무방할 정도로 여유롭고 아름다운 길이다.

 


 해발고도 100m 안팎의 야트막한 능선 길에는 중간 중간 다리를 쉴 수 있는 나무의자가 비치돼 있고, 오르막 내리막의 경사도 그리 심하지 않다. 온수동과 수궁동, 개봉동, 오류동 등 여러 마을에 걸쳐있기에 중간 중간 이정표를 따라 온수초, 원각사, 서서울생활과학고, 궁동생태공원, 궁동약수터 등 하산 길도 다양하다.
 본인의 체력과 여유시간에 따라 언제라도 여정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 능선 길에서 만나는 솔숲은 마치 청량제와도 같다. 가만히 서서 깊게 숨을 들이쉬면 은은한 솔향기가 몸 전체로 퍼져나간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산악바이크 때문에 생긴 등산로의 생채기를 똑같이 밟고서 이동해야한다는 사실이다. 뿌리가 다 드러난 나무들과 파헤쳐지고 깎인 능선 길에 대한 복구가 시급해 보인다.


 동부골든아파트를 700m 남겨둔 지점에 '궁동약수터' 이정표가 나타나는데 여기서 궁동약수터 반대방향 나무계단길을 따라 10분쯤 내려가면 잣절공원에 닿는다. 공원 안에는 약수터가 있어 오랜 여정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준다. 잣절공원 초입의 '거창빌라' 사이길(고척로21나길 97번지와 98번지 사이)로 나와서 '미소들병원'을 지나 쭉 내려가면 개봉역까지 가는 구로02번 마을버스를 탈 수 있다. 11km에 이르는 여정의 끝이다.

 

   ■ 이야기3   세종을 열 받게 한 '온수'
 온수(溫水). 더운물이 나왔다는 온수골에서 유래된 동 이름이다. 세종실록(1418~1450)에 보면 '임금께서 부평에 온천이 있다는 말을 들으시고, 조정의 신하를 여러 차례 보내서 찾아보라고 했으나, 그곳 아전과 백성들이 숨기고 말을 듣지 않으므로 도호부를 폐하고 현으로 강등한다'고 기록돼 있다. 부평에 있다는 온천이 바로 온수동의 온수를 말한다. 피부병이 있던 세종대왕이 온양 등으로 온천욕을 다니면서 효험을 봐 가까운 곳에서 온천을 하기 위해 온수지역을 탐색하게 했는데 피부병 환자가 몰릴 것을 걱정한 백성들이 아예 온천수 맥을 막아버리고 상부에 보고조차 않았다는 것. 지난 2000년에는 다시금 온천의 존재가 확인되기도 했다.  하지만 규모와 효험에 대해서는 아직도 증명된 바가 없다. 

 

 

 

■ 이야기4   궁동의 호걸은 누구?
 조선 14대 선조대왕의 일곱째 딸인 정선옹주가 안동 권씨 권대임과 결혼해 궁궐 같은 집을 짓고 살았다고 해서 유래한 궁동(宮洞). 이곳 주민들은 궁동 구간에 걸쳐져 있는 매봉산을 '와룡산'이라 부른다. 와룡산 동쪽 산등성이는 우백호, 서쪽 산등성이는 좌청룡이라 해서 풍수지리가들이 최고로 꼽히는 명당이다. 궁동의 마을 안쪽은 금계(金鷄)가 알을 품은 듯한 느낌이라 해서 '금계포란형'에 해당된다. 예부터 금계포란형의 땅에서는 위대한 호걸과 많은 자손이 태어난다 했다. 궁동 명당의 혈이 되는 부분은 안동 권씨 문중묘가 차지하고 있다. 능선 길을 따라 1.5km정도 걸으면 원각사 이정표가 나오는데 이쪽 경계부터가 궁동으로 알려졌다.

 


  ■ 에필로그   치유의 길
 두 분의 '구세주'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걷기코스는 진작 개웅산을 빙빙 돌다 끝났거나, 천왕산 자락 어디쯤에서 마침표를 찍어야했다. 도중에 윤덕봉(여, 63, 개봉3동) 씨와 김영임(여, 70, 부천 역공동) 씨를 만난 건 천운이었다.


 그들 말고도 허기져 주저앉았는데 초콜릿을 건네주신 할머니, 물을 나눠준 아주머니 등 고마운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날 살려 달라' 아우성치는 두 다리를 이끌고 잣절공원에 들어섰을 때 돌연 '치유'라는 단어가 뇌리에 박혔다.


 몸은 당장 주저앉고 싶은데 마음은 창창해졌다. 자연도 자연이지만 도중에 만난 이들이 더 아름다웠다. 모르는 사이에 도와주고 이끌어주고 챙겨주기란 쉽지 않은데 말이다. 삼림욕에 몸의 묵은 때를 벗겨내고, 푸근한 정에 마음의 묵은 때를 씻어낸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