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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지혜로운 말글살이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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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지혜로운 말글살이를 위하여
  • 구로타임즈
  • 승인 2001.03.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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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변하면서 신문이나 잡지의 내용과 형식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습니다. 제가 보기에 내용상으로는 디지털 경제나 세계화에 관한 기사들이 주요 이슈로 떠올랐고, 형식면에서는 가로쓰기가 보편화 됐다는 것을 들 수 있겠습니다.

한자 사용이 크게 줄었다는 점도 형식상의 변화 중의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요즘의 언론매체를 살펴보면 한자 사용을 자제하고 있으며, 설령 쓴다고 하더라도 그 음(音)을 한글로 적고 괄호 안에 한자를 표기하고 있습니다. 한자를 읽고 쓰는데 어려움을 겪는 한글세대가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추세라고 할 수 있겠지요.

여기서 오래 전의 얘기 한 토막. 박정희 대통령 시절 어느 신문에 "朴正熙 犬統領께서는 어제..."라는 기사가 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大統領'이라고 해야 할 것을 개 견(犬)자가 붙은 '犬統領'이라고 했으니 권위주의적인 시대였던 그 당시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던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

활자를 한 글자씩 모아 조판하다 보니 이런 웃지 못할 일이 벌어져 그 뒤로 '大統領'이라는 글자는 아예 하나의 활자로 만들어 썼다고 합니다. 저도 언론계의 선배를 통해 들은 얘기니 믿거나 말거나.

그런데 각종 출판물을 조금만 꼼꼼히 들여다보면 이런 종류의 실수는 비일비재합니다. '여가를 즐기는 운동'이 '여자를 즐기는 운동'으로 둔갑한 것도 그런 경우입니다. 말 그대로 점하나의 차이로 엉뚱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사례들은 사람의 '실수'가 빚어낸 해프닝이니 그냥 웃어 넘길 수도 있지만, 사실 우리의 말글살이에는 '의도적으로' 자극적이고 파괴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예가 드물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정치인의 말입니다. '말 잘하는' 사람들이 모인 정치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런 말 잔치를 보고 있노라면, 그 현란한 수식과 직선적인 어휘구사에 말문이 막힐 지경입니다. 안기부 예산의 총선 유용 여부를 둘러싸고 벌어진 여야간의 설전에서 '걸레'나 '행주'등의 원색적인 용어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그보다 우회적이고 완곡하면서도 재치있게 의표를 찌르는 표현들을 포기하는 것 같아 아쉽기까지 합니다.

만약 그런 촌철살인의 어휘를 구사한다면 지금처럼 여야간의 대립과 갈등이 첨예화 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 봅니다.

이 세계에는 수많은 언어들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그 각각의 언어는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갖게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북극지역에 거주하는 이누이트족(우리가 흔히 에스키모라고 부르는 민족)에게는 눈과 관련된 말들이 세밀하게 분화돼 있고, 남태평양의 여러 섬에 사는 원주민들의 언어에는 바다와 관련된 말들이 발달해 있다고 하더군요. 그러니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다른 세계에 산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물론 그 반대로도 말할 수 있겠지요. 분명한 것은 인간은 언어를 통해 세계를 설명하고 이해하고 있으므로 인간의 사고작용은 언어를 떠나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는 한 철학자( 현대 독일 철학계의 거목 하이데거인 것으로 기억합니다.)의 말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 할 수 있겠지요.

인간의 언어가 존재를 생성할 수도 파괴할 수도 있듯이 현실세계에서 폭력적인 말글살이는 여러 가지 사회적 관계를 무너뜨리고 갈등과 긴장을 고조시킵니다.

지금은 모두가 어려운 시기니 상대의 잘못을 폭언으로 질타하기 보다는 한 발 물러서서 여유를 갖고 적절한 비유와 해학으로 풍자하는, 또는 용서와 관용을 베푸는 지혜로운 말글살이가 절실한 때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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