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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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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남자
  • 구로타임즈
  • 승인 2001.03.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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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길이 갈라놓은 한 쪽의 자투리 공원

그는 소공원(小公園)이 놀이터다

봄·여름·가을·겨울 사계 언제나

소공원에서 놀다 간다.



봄에는 꽃 나비 따라

여름에는 서늘한 그늘 따라

가을에는 따뜻한 햇볕 따라

겨울에는 차가운 바람을 피하여

빨강·노랑·파랑·초록벤취로 옮겨 앉으며

어김없이 놀다간다.



해가 떠오르면

양지쪽 의자에 앉아 제일 먼저 고양이 세수를 한다

고깃고깃한 화장지에 침을 퉤퉤 발라 때꼬장 얼굴을 닦아내고

머리를 가다듬고 멋을 부린다

그의 곁에는 날마다 바뀌는 메뉴

어제는 마른 오징어

오늘은 빵

내일은 새우깡

그리고 곁들인 소주병…

하루 걸러 찾아오는 친구와

우정도 나누며 나누어 먹는다.



영하 십도를 내리오르어

삭풍이 불고 꽁꽁 차가운 날에는

소공원을 산보하는 이도 없다

앙상한 나목 가지 위를 까치들만 까륵대고

씽씽 앙칼진 바람이 헐덕 거리며 낙엽조차 덜덜 떠는데도

까딱 않는다.



그는 양지쪽에 앉아서

태양과 마주하고 단꿈을 꾼다

긴 명상에 잠겨 온 세상을 통채로 삼킨

포만감에 절여져 즐거운 인생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자세로

포근하게 쌔근거리며

고독을 모르는 겨울남자.



세상의 온갖 고통과 시름과 번뇌를 옷같이

휘어감은

저 성스라움의 사나이

비바람 눈보라 치는 날에는 어디쯤서 머물까?



-서울 구로구 고척동 근린공원의 길 건너 자투리 소공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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