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싣는 순서
1. 지역사회 보물, 창조적 놀이터
2. 평등한 놀이터의 사회적 힘
3. 구로지역 놀이터 이대로 좋은가
4. 주민과 전문가에게 듣는다 (좌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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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 공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누구나 평등하게 놀이터를 이용하고 놀이를 즐겨야 한다는 의식과도 조금씩 접점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 그 접점의 크기는 잴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하다.

기획취재 ‘놀이터야 날자!’ 이번호에서는 평등한 놀이터인 통합놀이터의 의미와 놀이터 약자의 목소리, 통합놀이터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구로구 어린이놀이터의 새로운 상을 제시하고자 한다.

아울러 미국의 통합놀이터 시설과 국내 통합놀이터 사례를 살펴보고 이를 설계한 임옥상 화백을 만나 놀이터 개선 방향에 대해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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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6년 10월 무장애놀이터 1호 서울숲 놀이터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우리나라에도 무장애놀이터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어 2008년 2월 국회 어린이집에 2호 무장애놀이터가 문을 열었다.

무장애놀이터는 말 그대로 장애아동이 ‘장애 없이’ 놀이시설을 즐길 수 있는, 장애아동들을 위한 놀이터 를 말한다. 이와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등장한 것이 ‘통합놀이터.’ 통합놀이터는 장애아, 비장애아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놀이터로 모두를 배려한 설계로 만들어진 놀이터를 의미한다. 즉, 보편적 디자인을 가지고 비장애아, 보호자, 지역주민 등 누구나 재미있고 흥미롭게 이용하되, 이용자의 신체적 조건에 의해 차별받지 않은 놀이터를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무장애놀이터와 통합놀이터 모두 남녀노소, 장애유무에 상관없이 누구나 놀이터에서 평등하게 놀 수 있는 원칙을 가진다는 점에서 그 배경과 정신은 같은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 위험과 빈곤에 노출된 장애아들의 놀이터

서울에 2곳의 무장애·통합놀이터가 생겼다는 점에서는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성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아이들이 주로 노는 곳은 동네인 만큼 동네놀이터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문제제기는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실제로 동마다 놀이터가 있고, 아파트와 초등학교에도 놀이터가 있지만, 장애아를 둔 학부모들에게는 있으나 마나한 죽은 놀이터에 불과하다.

정신지체 1급 자녀를 둔 박모씨(41, 개봉동)는 놀이터를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놀이터를 너무 좋아해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놀이터를 찾게 된다고. 그러나 장애아인 딸이 놀 수 있는 시설은 많지 않다. 그네를 가장 좋아하지만, 안전시설이 없어 불안한 마음으로 늘 지켜보게 된다. 게다가 놀이터를 찾은 비장애 아동들의 놀림감이 되기 일쑤고, 어린 자녀와 함께 온 부모들도 정신지체자인 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위험을 느끼는지 멀리하곤 해 마음고생을 하기 일쑤다.

그래서 직장에 다니는 박씨가 시간을 내서라도 자주 찾는 놀이터가 철산역에 있는 실내놀이터. 넓은 공간에 공놀이, 덤블링, 그네 등을 갖추고 있는데다가 시설마다 충격흡수장치인 스펀지나 마감재를 갖추고 있어, 다칠 위험이 거의 없고 놀이터 곳곳에 아이가 독립적으로 놀만한 시설도 있기 때문이다.

뇌병변을 앓고 있는 아들을 둔 임모씨(개봉동)도 같은 생각이다. “동네 놀이터 시설 자체도 빈곤하지만, 미끄럼틀이나 그네 등은 위험해 이용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장애아동들에게 놀이터는 비장애 아동들보다 몇 배 이상의 위험과 시설의 빈곤이라는 두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이런 놀이터는 꼭 몸이 불편한 장애아동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구로4동의 아파트 놀이터를 2살짜리 딸아이와 함께 찾은 박숙영(33, 구로4동) 씨도 어린 딸이 놀만한 시설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둘째아 임신 으로 직장을 휴직한 그는 매일 딸과 함께 놀 곳을 찾지만 마땅한 놀이터가 없다고 불만이다.

“일반적인 놀이터는 초등학생은 되어야 놀 수 있는 시설만 갖추고 있다”고 말문을 열더니 “주변 놀이터는 구로리어린이공원하고 이 아파트 놀이터뿐인데, 구로리어린이공원은 낮부터 술 먹는 사람이 많아 아이들 데리고 가기가 꺼려지고, 이 놀이터는 그네와 미끄럼틀, 시소뿐인데 오래 돼서 불안한데다 몇 번 타고 나면 더 이상 할 게 없다” 면서 1, 2년 후 이사할 것을 고려중에 있다고 털어놨다.

이렇게 통합놀이터는 장애아만을 위한 놀이터가 아닌 나이와 성별에 상관없이 누구나 즐기고 놀 수 있는 놀이터로서 접근하는 개념이다.


◇ 접근성, 이동성은 기본

그렇다면 통합놀이터는 어떤 원칙과 기준을 가지고 만들어져야 할까. 장애인편의시설촉진 시민연대(이하 편의연대) 배융호 사무총장은 통합놀이터에는 갖춰야 할 다섯 가지 요소가 있다고 주장한다.

‘놀이터의 기본인 안전, 시설의 접근성, 재미, 장애아 비장애아 함께 놀기, 미적 배려’가 그것이다. 명분만 찾다가 재미가 없다면 어떤 사람들도 놀러오지 않을 것이며, 통합놀이터도 어린이들이 주 이용자인 만큼 누가 봐도 가고 싶고, 만져보고 싶은 놀이터가 되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놀이터 출입구에 턱, 계단이 있는 경우도 적지 않고, 바닥이 모래로 깔려있어 놀이시설까지 휠체어가 접근하기 어려운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구로에서도 이런 놀이터가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구로5동의 새솔금호아파트 놀이터는 무려 계단 20여개를 올라야 놀이터로 들어갈 수 있고, 구로본동의 보광아파트도 20cm가 넘는 턱을 넘어야 놀이터에서 놀 수 있다.

이런 문제들은 놀이터 자체를 다 바꾸기는 어렵더라도 놀이터 출입구를 경사로로 바꾼다거나 휠체어 등이 다닐 수 있게 출입구 주차 금지를 강제 실시하고, 충분한 보행로를 확보하는 등 기본적인 놀이터 구조를 바꾸는 일부터 시작하자고 전문가들은 제안한다. 또 그네에 등받이와 팔걸이, 안전띠를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특히, 장애아를 둔 부모들은 놀이터의 주차시설 부족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기도. 장애아동은 차가 없으면 이동하기 어려운데, 주차시설이 없어 아예 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 행정당국 ‘모르쇠’ 시설은 ‘수입산’

이런 목소리에 힘입어 장애인편의시설촉진 시민연대에서는 통합놀이터 실현을 위한 일반놀이터의 개선점을 제안하고, 놀이터에 적용가능한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기준을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아울러 통합놀이터 설계안을 제시하는 등 통합놀이터 만들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러나 아직 초보적인 수준에서부터 해결해야할 과제가 많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편의연대 배융호 사무총장은 “통합놀이터 만들기 시범사업을 추진하면서 행정기관 허가 받기도 어려웠고, 장애아동을 위한 시설이 주로 외국에서 수입해 와야 하는 것들이라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고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했다. 통합을 주도해야할 행정기관의 열악한 마인드는 물론 우리 사회가 아직 필수 시설과 장비조차 갖추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무장애놀이터 설계 디자인을 한 임옥상 미술연구소 임옥상 대표는 장애아, 비장애아가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는 통합놀이터가 우리 사회의 기본이 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제도적 규정 마련부터 이뤄졌으면 한다고 밝혔다.

“다 똑같은 어린이들이니 차별 받아서는 안된다”고 전제한 뒤 “앞으로 새로 만들어지거나 개보수를 하는 놀이터는 무장애, 통합놀이터 정신을 도입하도록 법적으로 규정해놓으면 일단 첫걸음은 떼지 않겠냐”는 것.

의식 수준의 변화에 따른 결과로서 제도가 아닌 제도부터 강제해야 하는 우리 현실에 대한 따끔한 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장애보다 사람에게 먼저 관심을 두는 것이 보편적 디자인의 기본 정신. 차별과 불평등 대신 평등과 동등한 권리를 제공하는 놀이터가 구로에도 있어야 한다는 장애아 부모들의 바람이 소수의 목소리일 뿐이라고 일축하기엔 숨죽이고 있는 울림이 너무 크다. 비장애 아동들이 즐기는 시설도 있고 장애아동이 즐기는 시설도 있는 놀이터, 때로는 같이 즐기는 시설도 있는 놀이터 만들기가 구로에서 시작되길 기대해본다.



[인터뷰] 무장애놀이터 설계자 임옥상 대표 (임옥상 미술연구소)



서울의 두개뿐인 무장애놀이터 두 곳을 모두 설계한 임옥상 미술연구소의 임옥상 대표. 1980년대 민중미술의 대부로 널리 알려진 임옥상 화백이‘벽 없는 놀이터-무장애, 통합놀이터’의 기치를 들고 나섰다. 일각에서는 외국의 무장애놀이터와 비교를 하면서 진정한 무장애▪통합 놀이터에서 벗어났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 무장애놀이터를 구현한 첫 작가라는 면에서 그의 철학과 현실 판단은 커다란 의미를 갖고 있다. 무장애, 통합놀이터에 대한 그의 생각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 무장애놀이터 국내 도입

“무장애놀이터, 부족한 게 많아서 죄송합니다.”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임 화백은 고해성사를 하듯이 나지막이 꺼낸 첫마디다. 당황하는 기자를 앞에 두고 그의 말은 이어졌다. “그래도 첫 삽을 뜨고 사회적 각성의 계기가 됐다는 데 의의를 두고 더욱 발전시켜나가야 하는 게 할 도리죠.” 잘했다고 칭찬만 받기보다는 도전에 대한 실수, 부족함을 인정하고 한 걸음 더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첫 작품인 거인의 나라는 상상 놀이와 현장학습 공간으로 의미를 더 둔 곳입니다. 거인의 겉모습만 보는 게 아니라 안까지 들어가 바깥세상을 내다보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죠. 휠체어를 탄 아동도 밖에서만 구경하는 게 아니라 거인 몸속을 타고 들어갈 수 있게 경사각도를 조절했어요. 이렇게 함께 하는 것, 이것이 무장애놀이터의 시작이죠.”

서울숲 거인의 나라 놀이터를 시작으로 2호 무장애놀이터인 국회어린이집 놀이터는 시각, 청각 장애인까지 고려한 설계로 한걸음 더 나아갔다. ▶관련 놀이터기사 8면


◎ 환경이 담긴 놀이터에 관심

미술 작가가 놀이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작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기대고 쉬고 잠들고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하는 대상인데, 그동안은 커다란 벽에 가둬놓고 구경만 하게 해왔죠. 그 벽을 허물고 뛰어들 수 있게 작품은 ‘이리 와유’하고 손짓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리 와유’ 철학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동네 가까이에 있는 놀이터를 눈여겨보게 됐고, 어린이들이 부대끼는 공간인데 어느 동네나 똑같은 붕어빵 놀이터에다, 불편한 놀이터에서 어떻게 창의적이고 사람냄새 나는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

앞으로도 똑같은 놀이터는 만들지 않겠다는 임 화백은 동네만의 특색 있는 놀이터, 사람에 대한 마음, 약자에 대한 배려가 묻어나는 놀이터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지구 온난화 등 환경이 급변하고 있는데, 이에 대응하는 마음을 키우는 놀이터를 만들고 싶어요. 예를 들어 발로 자전거를 돌려야 움직이는 놀이기구, 바람에 반응하는 바람개비 놀이기구, 태양열을 이용한 놀이기구로 가득한 놀이터죠.” 생각만 해도 마음껏 뛰노는 아이들이 그려지는 아름다운 놀이터다.


◎ 주민세금으로 만든 놀이터, 관리부터

놀이터에 대한 상상으로 가득한 임 화백은 요즘 활발한 놀이터 사업에 불만이 많다. 가장 먼저 놀이터 관리를 지적했다.

“멋지게 만들어놓으면 뭐해요. 관리가 안돼서 주민들이 외면하는 놀이터가 된다면 아깝지 않나요? 주민 세금을 만들어진 놀이터인데, 행정기관도 그렇고 주민들도 스스로 우리 것이다 하면서 관리를 해야 하는 거죠.”

또 요즘 대세인 테마가 있는 놀이터도 왜 자꾸 외국동화나 이야기를 끌어오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불만 섞인 목소리를 높였다.

임 화백은 한글을 이용해서도 멋진 놀이터를 만들 수 있다면서 놀이터 테마도 결국 상상력 부족이라고 일침을 놓는다.

상상의 놀이로 가득한 놀이터, 어느 누구나 평등하게 놀이를 할 수 있는 놀이터가 최고의 놀이터라 말하는 그가 마지막으로 한마디 던졌다.

“놀이터는 사회통합 기능을 해야 해요.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뿐만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가족들, 친구들도 놀이터의 주인입니다. 서로 통하는 의기투합이 우리 사회의 진정한 경쟁력 아닙니까.”

송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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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통합놀이터

다양한 장애유형 아동의 흥미까지 고려


미국은 놀이환경 계획 기준을 만들어 놀이터 편의시설을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무제한 놀이터(Boundless Playground) 운동’을 통해 통합놀이터를 구현해나가고 있다.
미국의 놀이터 편의시설 기준에 따르면 휠체어를 탄 장애아동이 놀이기구로 올라가기 위한 규정을 정하고 있다.

놀이기구에서 ‘어린이가 휠체어로부터 놀이기구로 옮겨 타기 위해서 데크는 진입로에 면해서 설치’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③). 수직놀이기구도 영유아부터 장애아동까지 즐기도록 높이를 제한하고 있다(사진①).

무제한 놀이터 운동은 장애아동들의 접근성과 이동성, 안전성을 보장하고 다양한 장애유형의 아동들이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시설을 배치하고 비장애 아동들과 함께 놀 수 있는 놀이공간을 만들어나가자는 운동으로 현재 약 70여개의 무제한 놀이터가 만들어져 장애▪ 비장애 아동들의 통합놀이터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놀이터 출입구에 가깝게 장애인 주차구역을 배치하여 이동성을 높였으며, 놀이공간 내부를 연결하는 통로는 모든 놀이공간과 기구들에 접근 가능하도록 했다. 또한 단지 연결의 의미를 넘어 통로조차 놀이공간이 되도록 설계했다. 예를 들어 바닥 표면에 소리가 나는 장치를 한다거나 표면에 오르내림을 주어 부드러운 롤러코스터 느낌을 주도록 한 것이다.

휠체어 높이와 어린이 키높이를 맞춘 모래테이블을 만들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놀이공간을 만들고(사진②)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그네의 스릴을 누구나 맛볼 수 있게 안전시설을 갖추고 있다(사진④).

미국에서는 장애인 먼저를 외치는 것보다 어렸을 때부터 장애인 친구와 함께 어울려 놀게 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이와 같은 놀이터 만들기 운동에 행정, 시민단체가 나서고 있는 것이다.
▲ 자료 제공 = 장애인편의시설촉진연대



■ 기획취재팀 송지현 김경숙 황희준 기자
■ 이 취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