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3-28 10:19 (목)
[우리동네 이야기 51]인구변화
상태바
[우리동네 이야기 51]인구변화
  • 김윤영기자
  • 승인 2007.04.1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25, 공단시절 인구 급증
▲ 구로공단 번성기인 70~80년대 일자리를 찾아 많은 인구가 이곳, 구로에 정착했다.

구로구의 총면적은 20.12㎢. 구로지역 인구수는 지난 3월말 기준으로 42만715명이다.

수백년 전 우리 지역은 어떠했을까.

18세기 중엽 영조왕 때 편찬된 ‘여지도서(與地圖書)’에 의하면 경기도 금천현 동면, 서면, 상북면 일부 지역과 부평부 수탄면 지역이 오늘날 구로구 지역에 해당되는데, 금천현 전체 호구가 1,873호, 7,763명이고 수탄면 호구는 185호, 686명로 나타나 있다.

이 중 금천현의 1/3이 구로구 지역에 해당한다고 봤을 때 18세기 중엽 구로구 지역에는 800여 호, 3200여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후 20세기 초 일제강점기에 들어와서는 경기도 시흥군과 부평군에 포함되었다.

일제강점기 동안 전체 규모는 파악할 수 없지만 1928년에서 1933년까지 구로구 지역의 인구는 1,100호 5,616명에서 1,489호 7,876명으로 꾸준히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구로구의 인구변화를 살펴보다 보면 몇 가지 재미있는 얘기들이 읽혀진다. 오랫동안 이 지역에 살았던 이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6.25전쟁 당시 월남했던 이북 사람들이 구로구에 많이 정착했다는 것. 이 때문에 그 당시 눈에 띌 정도는 아니었지만 인구수도 늘고 타향사람들도 많이 정착했다고. 전쟁으로 인해 남쪽까지 피난 내려왔다가 다시 이북으로 돌아가는 길에 남북이 분단되면서 이북 사람이 구로와 영등포 등의 서울과 경기도 인근에 정착해, 지금도 고향이 이북인 이들이 구로에 많이 거주하고 있다는 얘기다.

또 ‘구로공단’의 역사와 함께 인구가 증가한 것이 눈에 띈다.

한국수출산업공단이 조성되기 전인 지난 1965년 이전 만해도 구로지역은 전형적인 농촌지역으로 완만한 자연 증가추세를 보여왔을 뿐이라는 것.

그러다 1965년 구로동을 중심으로 공업단지가 들어서면서 주민들의 높과 밭, 집터에 공장이 세워졌고,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거의10년동안 일자리를 찾아 농촌서 올라온 인구가 70~80%를 넘었다는 기록들이 남아있다.

지역별로는 특히 충남 21.7%, 경기도 19.1 전라북도 18.5%, 전라남도 11.5%가 구로에 정책했다고 한다.

실제로 1970년대 구로구 지역의 가구수는 51,189호에 인구 255,172명으로 급격한 증가를 보인 것을 엿볼 수 있다.

영등포구에서 분구된 80년대에는 평균 3.1%의 증가율을 보이다가 91년부터는 반대로 감소하기도 했다. 주택가격 상승과 택지개발, 공장이전 등 경기침체 특히 수출산업공단단지내에 봉제, 가발 등 중소기업사업이 사양화됨에 따라 타지역 이전에 따른 변화이다.

지금도 구로구의 인구는 꾸준히 증가추세이다. 공장이 떠난 자리에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면서 동별 인구변화도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