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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사이로] 봄, 골목 그리고 어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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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사이로] 봄, 골목 그리고 어르신
  • 성태숙 시민기자 (구로파랑새나눔터 지역아동센터장))
  • 승인 2023.03.06 17: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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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인근에는 폐지 등 고물 수집을 하시는 어르신이 한 분 계신다.

거리 한켠에 놓인 작은 짐수레 위에 종이상자 등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차곡차곡 모아 놓으신다. 어쩌다 짐수레가 넘쳐날 만큼 고물이 많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작은 수레 위에 덜렁 상자 몇 개가 고작 놓여 있을 때가 대부분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고대구로병원 바로 옆 골목 안에는 제법 규모가 큰 고물상이 하나 있었다. 아마도 시장에서 나오는 박스나 폐품 등이 적지 않을 터라 그렇게 시장 가까이 자리를 잡았을지 모르겠다. 커다란 철문 뒤로 작은 언덕만큼 고물을 쌓아둔 고물상 안으로 어르신들이 리어카를 끌고 들어가시곤 하셨다. 

그러나 이제 도심지에서 그런 고물상도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고, 그건 구로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어르신들이 그렇게 모은 고물들을 처분하기 위해 어디까지 가셔야 하는지 가늠할 수가 없다. 어쩌면 고물이 없어서가 아니라 고물상이 없어서 고물을 모으는 것이 의미를 잃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렇게 힘겹게 모은 고물들일지라도 그리 값어치를 쳐주진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알뜰한 어르신들께는 그런 돈들도 더없이 귀하다. 그런 마음을 잘 알기에 파랑새에서도 종이나 상자 등을 잘 모아 두었다 어르신께 가져다드리곤 하였다. 처음에는 말없이 폐지만 놓고 오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반갑게 인사를 드리는 사이가 되었다. 종이상자 등을 가져다드릴 때마다 어르신께서는 고맙다고 인사를 하시지만 고맙기로는 우리도 못지않은 마음이다. 어르신께서 그렇게 받아주시지 않았다면 센터 안팎에 폐지를 켜켜이 쌓아두어야 하는데 그것도 참 곤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폐지를 수집하시던 어르신의 골목 안 작업장이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어르신께서 깔끔하게 갈무리해놓으시던 폐품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흔적도 찾을 수가 없다. 대신 어르신의 수레가 있던 자리 맞은편 전봇대 밑에는 쓰레기들만이 어지러이 널브러져 있다. 어찌 된 일일까? 무슨 병환이 나신 것일까? 아니면 폐물을 모으는 것 때문에 누구에게 안 좋은 소리를 듣기라도 하신 것일까? 궁금한 마음만 커져 갈 뿐이다. 

손바닥만한 마당 한쪽도 없는 도시의 삶은 툭하면 골목을 찾게 된다. 답답하고 좁은 방을 벗어나 시원한 바람 한 자락을 맞이하려고 해도 거리로 난 문을 활짝 열어젖혀야 한다. 식구들 눈치 보지 않고 동네 친구들과 삼삼오오 어울려 장기 한판을 두려고 해도 골목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골목은 어르신들의 작업장이자 응접실의 역할을 해 왔다. 하지만 구로의 골목들이 언제까지 그렇게 정겨운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골목은 이미 넘쳐나는 차들의 주차장 노릇을 하기에도 벅차 보인다. 작은 화분을 옹기종기 모아놓고 꽃을 가꾸고, 어린 손주들을 놀리며 이웃과 정겨운 이야기들을 주고받을 수 있는 그런 골목의 모습들이 이 봄에는 또 얼마나 피어날 수 있을까? 

어르신들께서 당신이 사시던 지역사회에 계속 거주하며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국가적 고민이 깊은 줄 안다. 그런 고민을 할라치면 어르신들의 앞마당 노릇을 하는 골목을 좀 더 진지하게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 봄이 주는 지혜의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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