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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사이로] 리더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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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사이로] 리더의 자리
  • 성태숙 시민기자
  • 승인 2022.11.04 17: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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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10월29일) 이태원 참사를 늦게 접했다. 

밤 9시가 훌쩍 넘어서 근무를 끝내고 귀가를 한 탓이다. 몸과 마음은 파김치가 되어 털썩 누워서 텔레비전을 켰다. 그런데 화면 속에 나오는 장면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나도 그 날은 할로윈 앞에서 벌벌 떨고 온 참이었다. 오류중학교에 있는 '다가치학교'에서 작은 할로윈 파티를 여는데 아이들 모두가 와도 좋다고 초대를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공교롭게 토요일에 근무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혼자 아이들을 돌봐야만 했다. 말은 '괜찮다'고 했지만 사실은 절대 괜찮은 건 아니었다. 그동안 그럭저럭 실습생이나 공익요원이 함께 토요일 돌봄을 해왔던 터라 오랜만에 혼자 감당하는 토요일이 적지 않이 부담스러웠다. 만약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다면 절대 아무도 '혼자 애쓰다 그런 일이 벌어졌구나'하고 이해해주지 않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어째서 적절한 안전조치도 없이 무모하게 일을 벌이다 이 지경을 만들었냐고 추궁만 당할 것이다. 일을 당하게 되면 아동 당사자는 물론이고 부모님께도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니 그 의도가 어떻든 죄송함을 빌 수조차 없을 것이다. 아마 구청이나 서울시 혹은 복지부 등에서도 불벼락이 떨어질 것이다. 정부는 보란 듯이 처벌과 책임만 물을 것이다. 

토요일 돌봄에 아동 수에 비례한 적정 수의 돌봄 인력이 지원될 수 있도록 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취했는지 이런 것들은 안중에도 없을 것이다. "아이들 핑계 대지 마세요. 선생님께서 현실적인 판단을 하셔야지, 어떻게 일을 이렇게 합니까?" 이런 소리나 들을 게 뻔하다. 

그래도 현실에서는 아동들의 들뜸과 기대를 외면하기 어렵다. 할로윈이 무슨 대단한 날이어서가 아니다. 상업적인 분위기를 우려하는 것에도 동감한다. 하지만 그렇고 그런 일상에서 색다른 날을 맞이하고픈 아동들의 기대 또한 그냥 외면하기는 어렵다. 

아동들이 할로윈을 기대하는 것은 다양한 분장을 할 수 있는 일탈적 분위기도 한몫을 한다. 그래서 재봉질을 급하게 배워서 보자기를 이어 망토를 만들기 시작했다. 언제 마련한 것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낡은 재봉틀은 몇 개를 채 완성되기도 전에 고장이 나버렸다. 이미 아이들 집집마다 갖가지 보자기를 보내주셨는데, 누구는 걸치고 누구는 못 걸치는 불상사가 날까 봐 결국은 금요일 새벽까지 손바느질을 해서 엉성하게 망토를 완성했다. 

오전에는 다른 프로그램을 진행하느라 다른 날보다 30분 일찍 모이기로 한 센터에는 스무 명 남짓의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아이들은 기대에 차고 나는 두려움에 차서 서로를 맞았다. 앞에서 이끌면 뒤가 난리를 칠 것이고, 뒤에서 따라가면 어디로 갈지도 모르는 아이들과 함께 하루 종일 버스를 갈아타고, 밥을 먹고,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이런저런 뒷바라지까지 할 생각을 하니 그냥 겁만 나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저녁 7시가 넘어 난리 끝에 마지막 아이를 무사히 집으로 보내고 센터로 돌아와 남은 뒤처리까지 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9시도 훌쩍 넘었다. '이제는 살았구나' 하는 심정에 조금 느긋해져 보자고 텔레비전을 틀었는데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소식이 흘러나온다. 

압사라니,,, 그것도 2022년 대한민국의 수도 한복판에서 생때같은 국민들이 그렇게 허망한 사고를 당하다니 믿을 수가 없고, 믿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무심히 토요일이 다가오고 있는 지금이다. 무참한 가족의 비명횡사 앞에 정신을 놓은 가족들의 슬픔과 오열이 흐린 하늘에 가득하다. 

대통령이 경찰을 향해 크게 역정을 냈다고 하는데 그건 아마도 정부도 잘못을 통감하고 있다고 하는 간접표현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제대로 조치도 취하지 못한 정부도 한심하지만 그런 사과까지 제대로 할 줄 모르는 국가에서 살아가야 한다면 스스로가 너무 비참하기에 하는 생각이다. 그것이 사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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