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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사이로] 갈 수 없는 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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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사이로] 갈 수 없는 화장실
  • 성태숙 시민기자 (구로파랑새나눔터공부방 지역아동센터장)
  • 승인 2020.10.16 16: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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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광화문 집회 이후 코로나 바이러스19가 더 기승을 부리더니 이제야 좀 잠잠해지는 듯하다. 파랑새가 세 들어 사는 건물의 아래층에는 태권도 도장이 있고, 바로 옆에는 피아노 학원이 있어 언제나 누가 누가 더 시끄러울 수 있는가 내기라고 하듯 서로 소음을 만들곤 했었는데, 한 동안 두 곳이 모두 문을 닫아서 밤 10시만 되어도 아주 한밤중 같은 느낌이 들었다.

태권도 도장이나 피아노 학원 모두가 성실히 자기 일을 하시는 분들이다. 태권도 도장은 늘 10시가 가까워도 사람들 소리로 와글거리곤 했다. 일도 많았지만 그런 주변 환경이 그래서였을까? 나 역시 10시를 넘겨가며 일을 하는 게, 별 일이 아닌 것처럼 여겨지곤 했다. 태권도 도장이 조용해지는 기미가 보이면 서서히 하던 일을 마무리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시계바늘을 보면 10시를 훌쩍 넘긴 경우가 많았다. 그 때부터 마무리를 시작해서 시계를 두어 번만 쳐다보면 벌써 바늘이 10시 30분을 넘어가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다. 그러면 신데렐라는 아니지만 허겁지겁 가방을 집어 들고 기겁을 하고 떠날 채비를 한다.
 
구두가 벗겨지고 마법이 풀리기 때문은 아니다. 그건 위층에 거주하시는 집주인 어르신께서 현관문을 잠가버리시기 때문이다. 키도 작은 나는 현관문을 열 수도 없고, 설혹 운 좋게 열 었다 치더라도 다시 현관문을 잠글 도리가 없다. 결국 어떤 경우든 귀찮겠지만 집주인 어르신께 다시 1층까지 내려와 주십사 부탁을 드려야 한다. 연세가 한참 높으신 어르신께 그런 부탁을 거듭 드리는 것도 너무 죄송하지만, 그 뒤에 들을 말씀이 때로는 더 힘들 때도 있다. 어쨌든 이러 건, 저러 건 문이 잠기는 일은 너무 끔찍하다. 

몇 번 그런 일을 겪고 나서 어르신과 전격 협상을 했다. 아예 철야 근무를 하는 것이 아니라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밤 10시 30분에는 건물에서 나가기로 말이다. 또 '인간적으로' 토요일에는 그보다 조금 일찍 떠나기로 말이다. 그렇게 우리의 협정은 체결되었다. 

하지만 가끔은 한참 일을 하다보면 미처 시계를 볼 새도 없이 집중을 할 때가 없지 않다. 그런 날 10시 30분이나 되는 늦은 시간이 어찌 그리 빨리 오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그 순간부터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하는 가슴을 부여잡고 현관문이 잠겼을까봐 불안에 떨며 탈출을 시작한다. 아니 왜? 사람이 안에 있는데 그걸 모르고 문을 잠그다니 의아스러운걸? 이런 의혹을 품을 수도 있다는 걸 모르지 않지만, 아무튼 그런 일이 비일비재 일어나니 갇히지 않는 건 그저 본인 책임이 될 뿐이다. 

작게 비명을 내지르고 있는 대로 가방에 물건을 쑤셔 쳐 넣고, 일단 파랑새를 빠져나오는 게 급선무다. 때로는 급한 마음에 파랑새 문조차 잠근다. 일단 현관문이 열려 있는 걸 확인하고 거리에 나서야 그제서 제대로 숨을 쉴 수 있다. '휴우, 탈출 성공!' 매일이 정말 짜릿하다.
 
이제부터는 조금 느긋한 마음이다. 집으로 가는 길, 구청 뒤편 길로 접어든다. 밤 10시 30분이 넘은 시각에도 늘 구청은 불이 환하게 켜져 있고, 본청은 개방되어 있다. 10시 40분과 50분 사이 불 밝힌 구청의 현관문을 들어서는 순간은 큰 안도감을 준다. 시간에 맞추어 탈출을 감행하느라 긴장으로 얼어붙었던 몸과 마음이 녹으면서, 이완된 근육이 화장실을 다녀오자 부추긴다. 이제 몸도 비워내고 마음도 비우는 순간이다. 

그러나 이런 일상들도 코로나19로 부침을 거듭하고 있다. 방역 지침이 3단계로 격상되었을 때 드디어 태권도장과 피아노 학원도 문을 닫았다가 최근 다시 개원했다. 

언젠가는 굳게 닫혀있는 늦은 밤의 구청 현관문은 다시 재개를 했지만 늦은 시간에도 발열 체크를 하고 들어서야 한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날들에 문은 다시 한 번씩 잠겨있기도 한다. 1단계라지만 아직은 모든 것이 예측할 수 없고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래도 10시 반을 지키는 내 삶은 굳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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