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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경제 6]'협동조합 천국' 핀란드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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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경제 6]'협동조합 천국' 핀란드를 가다
  • 송희정 기자
  • 승인 2012.12.07 1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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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천국으로 유명한 북유럽의 핀란드는 일명 '협동조합천국'으로 불리기도 한다. 전체 인구가 500여만 명인데 협동조합 조합원 수가 이를 훌쩍 넘는 700여만 명에 이른다. 성인 인구의 약 84%가 협동조합 조합원이다. 농민 1명이 가입한 협동조합 수도 4.1개에 달한다. 이것이 핀란드를 '협동조합국가'라 부르는 이유다.
 1950년대까지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손 꼽히던 핀란드가 지금 잘 살게 된 것에는 협동조합 등 사회적경제가 바탕하고 있다고 현지 전문가들은 평한다. 물론, 1990년대 초의 경제위기와 1995년 EU가입 등으로 핀란드 역시 이웃한 스웨덴 못잖게 많은 부침을 겪었다.

하지만 대·내외적 환경변화 속에서 전통적 협동조합을 넘어 새로운 사회적 욕구에 부응한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경제 조직으로의 전환 모색은 지금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핀란드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협동조합연합회와 협동조합교육네트워크, 사회적 협동조합 등을 통해 핀란드 사회적경제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 핀란드 독립운동과 함께한    협동조합운동
 핀란드 협동조합의 시작은 1870년대 헬싱키소비자모임에서 출발했다. 협동조합법 제정(1901년) 이전이라 엄밀히 따져 협동조합이라 부를 수는 없지만 산업화시기 노동자들의 식료품공동구매형태의 소비자 모임은 당시 곳곳에 산재했다.


 협동조합 부흥은 핀란드 정치사회적 변화와 궤를 같이 한다. 1155년 스웨덴 십자군에 정복돼 약 650여년간 스웨덴 지배하에 있었던 핀란드는 스웨덴-러시아 전쟁에서 러시아가 승리하면서 1809년 러시아제국에 병합됐다. 러시아 자치령인 대공국 지위였지만 당시만 해도 모국어사용 등 일정정도의 주권은 허용됐다.


 상황은 1899년 급변했다. 당시 러시아 황제였던 니콜라스2세가 유럽의 정치적 혼란에 동요해 핀란드의 자치권을 박탈했다. 우리 귀에도 익숙한 교향시 '핀란디아(시벨리우스가 핀란드인의 민족의식을 높이기 위해 작곡한 곡)'가 탄생한 것도 이때다.


 당시 핀란드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서 현 난국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협동조합이 거론됐다. 협동을 하면 국민들에게 동기부여와 교육이 함께 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그리고 협동조합을 널리 전파하고 협동조합 설립을 지원하기 위해 1899년 펠레르보(Pellervo)가 만들어졌다.

  펠레르보 교육책임자인 페레릭 린드스트롬(Pererik Lindstrom) 씨는 "핀란드 협동조합은 러시아로부터 독립운동이 한창일 때 협동경제를 통한 주권회복을 꾀하기 위해 태동했다"며 "당시 사회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기에 협동조합은 빠르게 확산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정부 지원은 NO    "민주·독립적 운영 위해"
 펠레르보는 핀란드협동조합연합회다. 지난 1899년 10월에 태동했으니 무려 113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현재 핀란드 내 315개의 협동조합이 이곳 멤버다. 2011년 기준 조합원 수만 445만명에 달한다. 이는 핀란드에 분포한 전체 협동조합(약 4천개)의 약 10%에 해당한다.


 펠레르보의 역할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정부정책이 협동조합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다양한 채널을 통해 후면 지원해 주는 일이다.


 또한 멤버로 가입된 협동조합 임원들을 교육시키는 일도 한다. 여기에 새로운 협동조합들의 인큐베이팅 역할도 겸한다.


 핀란드 협동조합의 특징 중 하나는 동일 업종끼리 연합체를 꾸려 연대한다는 데 있다. 펠레르보가 만들어진 지 3년 후인 1902년 중앙협동조합은행이 태동했다. 1904년에는 소매업협동조합중앙회가 결성됐다. 소매업협동조합중앙회인 SOK그룹에는 31개의 지역협동조합이 가입돼 있다.


 SOK그룹과 일종의 가맹점 형태로 함께하는 곳에는 식료품점뿐만 아니라 호텔, 주유소, 백화점, 레스토랑 등도 있다. 1980년대에는 세계최초로 조합원카드가 상용화되기도 했다.


 펠레르보는 거대 조직이긴 하지만 정부로부터 일체의 지원을 받지 않는다. 재정을 보면, 협동조합 관련 매체 판매수익금이 64%, 부동산 등 자산이 28%, 조합비가 4%, 협동조합 관련 법률자문비가 1% 등을 차지한다.


 페레릭 씨는 "조직의 독립적 운영을 위해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은 일체 받지 않는 것이 우리의 원칙"이라며 "펠레르보는 협동조합의 민주적 운영원칙을 지키기 위해 정부로부터의 간섭도 받지 않고, 멤버 협동조합에 대한 관리나 제재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사회적경제 전파에 나선 대학들
 

지난 1997년에 설립된 '희망협동조합'에서 한 주민이 이곳 전문상담인으로부터 마음치유 관련 상담을 받고 있다.
협동조합교육네트워크(Coop Network Studies, 이하 교육네트)는 핀란드 내 협동조합들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통해 사회적경제가 궁금한 이들의 배움의 요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교육네트는 기관이라기보다 교육커리큘럼을 뜻하는 브랜드에 가깝다.

 

2005년에 시작된 교육네트에는 핀란드 명문 공립대인 헬싱키대학을 비롯한 8개 대학이 함께하고 있다. 이들 대학은 재학생들을 위한 무료 교양강좌로 협동조합과 사회적경제 등을 개설해 온라인(Web E-Learning)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수료생은 한해 150명 정도다. 학생이 아닌 지역주민들의 경우 일정액의 수강료를 지불하고 '열린대학(일종의 방송통신대)'에서 수강할 수 있다.


 학문의 전당인 대학이 사회적경제 전파에 발 벗고 나서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핀란드 사회경제 발전의 동력이 된 사회적경제영역의 현장과 이론을 제대로 이어주기 위해서다.


 교육네트에서 기획과 홍보를 담당하는 페카 히틴코스키(Pekka Hytinkoski) 씨는 "핀란드 경제가 이만큼 성장하는 데 사회적경제가 큰 기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 내 전문커리큘럼이 없었다는 것은 딜레마였다"며 "이론과 현장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또한 경제위기 이후 사회문제의 새로운 해결책을 찾기 위해 8개 대학이 공동주관으로 사회적경제 교육을 실시하게 됐다"고 말했다.


 교육네트 재정의 절반은 핀란드 내 규모가 큰 협동조합들이 지원한다. 적어도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라면 사회적경제와 협동조합모델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들 협동조합 임원들의 기본 인식이다. 재정의 나머지 반은 8개 대학이 담당한다. 대학당국은 양질의 사회적경제 교육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의 투자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페카 씨는 "핀란드의 보편적 복지를 가능하게 한 것은 높은 세금이었지만 세계경제위기로 인해 이것이 어려워지면서 그간 공공(제1섹터)이 졌던 책임들이 대거 제3섹터로 넘어왔다"며 "핀란드 젊은이들은 유럽 전반의 경제위기를 체감하고 있기에 우리 교육네트에는 사회적경제를 배우기 위해 방문하는 젊은이들로 늘 북적이며, 우리는 우리를 찾아오는 모든 이들을 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 새로운 형태의 협동조합 등장
 90년대 초 그리스, 스페인 등 유럽 국가들의 경제위기는 핀란드에도 적잖은 타격을 입혔다. 6%대에 머물던 실업률이 20%까지 치솟았다. 국가가 복지를 모두 떠안을 수 없는 상황에서 시장과 제3섹터에 부담을 나누려는 시도가 있었다.


 정부는 당시 협동조합설립을 적극 지원하고 나섰다. 소비자, 생산자 등을 조합원으로 하는 전통적 협동조합방식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협동조합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 이때부터다.


 지난 1997년에 설립된 '희망협동조합(Osuuskunta Toivo CoopHope)'은 일반 협동조합보다 공익적 성격이 강한 '사회적 협동조합'이다. 당시 국가와 지자체가 운영하는 보건복지서비스기관에서 일하던 8명의 전문가들이 초기출자금을 내고 협동조합을 결성하면서 시작됐다.


 이들 8명이 다니던 직장을 뛰쳐나온 배경은 앞서 언급한 90년대 핀란드 경제상황에 기인한다. 90년대 초 경제위기와 95년 EU가입 등으로 공공서비스기관의 근무환경이 급속히 열악해졌다. 할 일은 태산인데 인력이 부족하다보니 서비스의 질이 점점 떨어졌다. 전문가로서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에다 돈만 좇는 영리기업에는 절대 가지 않겠다는 이들의 자존심이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협동조합을 설립하게 했다.
 
 ■ 시장중심주의 극복 '도전과제'
 이곳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힐링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주로 청소년과 청년을 대상으로 정신적 재활을 돕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가장 큰 프로젝트가 정부 산하 사회보험기구의 재정지원을 통해 지난 8~9년간 진행한 '청소년 가정재활'이다.


 현재 프로젝트기한은 끝났지만 청소년 개인뿐 아니라 가정과 학교에까지 개입해 주변인의 변화까지 이끌어 낸 것은 이곳이 자랑하는 가장 큰 결실이다.


 현재 이곳은 크게 자산도 없지만 빚도 없는 상태다. 최근 5년간 총 수익이 200만유로(한화 약28억원)에 달한다.


 이곳에서 아동심리를 담당하는 사라 빠타야(Sara Vataia) 씨는 "현재 핀란드에는 사회서비스를 담당하는 협동조합의 수가 많지 않다"면서 "하지만 정부부처의 관심이 아주 높은데다 현재 핀란드가 처한 사회문제 해결에 효과적이기에 사회적 협동조합의 수는 갈수록 증가할 것이다"고 말했다.


 핀란드사회적기업네트워크 '핀세른(FinSERN)'과 유럽사회적경제연구네트워크 '이엠이에스(EMES) 멤버 등으로 활동하고 있는 페카 파티니에미(Pekka Pattiniemi) 교수는 현재 핀란드 사회적경제가 직면한 도전과 과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90년대 경제위기로 인해 전통적 협동조합의 영역을 넘어 교통, 문화, 복지, 보건 등에 대한 시민들의 욕구가 분출했고, 이는 핀란드 사회적경제가 새롭게 변화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공공과 민간영역 대비 사회적경제영역의 협소함과 민간과 경쟁하면서 사회적 목적을 실현해야하는 쉽지 않은 여건, 그리고 시장중심주의를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낮은 시민의식 등은 핀란드 사회적경제가 당면한 과제다."

 


  글싣는 순서

 

①우리 안의 시도들_
 구로의 고민과 희망
 
②우리 밖의 시도들Ⅰ
 평택과 부산을 가다

③우리 밖의 시도들Ⅱ
 청주를 가다

④나라 밖의 사례들Ⅰ
 스웨덴 HSB 쿰파니언

⑤나라 밖의 사례들Ⅱ
 스웨덴 BASTA
 
⑥나라 밖의 사례들Ⅲ
 핀란드 사회적 경제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발전기금(공동기획취재)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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