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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일기99] "그 순간, 일은 벌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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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일기99] "그 순간, 일은 벌어졌습니다"
  • 강상구 시민기자
  • 승인 2011.11.28 17: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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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를 찾으러 어린이집에 갔습니다. 오늘도 늦은 시간입니다. 아이들이 놀고 있는 교실로 들어갔는데, 분위기가 영 심상치 않습니다. 미루가 절 보자마자 울먹울먹 하면서 뛰어 옵니다. "미루야, 무슨 일이야?" 뒤에 서 계시는 선생님이 "민수랑 좀 다퉜어요. 장난감을 서로 가지고 놀겠다고." 대수로운 일은 아닙니다. "미루야. 민수랑 싸웠어?" "응." "그랬구나. 장난감 가지고 놀고 싶었는데, 민수도 똑같은 장난감을 갖고 놀고 싶었나 보네." 대충 달래고 집에 가려 했습니다. 배도 고프고 피곤하고 죽겠습니다.


 그런데 미루 얼굴이 영 안 풀립니다. 마음을 충분히 읽어주고 달래야 하는데 건성건성했더니 확 티가 나는 모양입니다. 다시 미루를 안아줬습니다.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습니다. "미루야, 니가 장난감 가지고 놀고 싶었는데 자꾸 민수가 자기가 가지고 놀고 싶다고 해서 마음이 상한 거구나." 그제야 미루는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얼굴이 약간 풀립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민수는 민수대로 속상한 게 있었던지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데 입이 코보다 더 앞으로 나와 있습니다. 마음이 짠합니다. 미루와 늘 함께 야간 보육을 하는 아이라 안쓰럽긴 마찬가지입니다. 미루를 웬만큼 달랜 것 같습니다. 민수한테 다가갔습니다. 민수한테 조용히 얘기했습니다. "민수야, 너도 힘들구나. 장난감 가지고 놀고 싶었는데 못 놀아서 그런 거지?" 라고 말했습니다. 민수는 눈물이 그렁그렁 해서 곧 울 것 같습니다. 고개를 끄덕끄덕합니다. 조금만 더 공감해주면 마음이 풀릴 것 같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미루가 옆에 있어서 무슨 말을 더 하게 되면 그게 꼭 미루 험담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너무 조심스러워서 "민수 너 속상하겠다." 이렇게 딱 한 마디만 더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일이 벌어졌습니다.


 옆에 서 있는 미루가 울기 시작한 겁니다. 그것도 아주 서럽게 웁니다. "으아앙~" 꼭 아기처럼 웁니다. 사단이 벌어진 겁니다. 미루를 번쩍 안아서 저쪽 구석으로 갔습니다. "미루야, 너 왜 이렇게 울어?" "아빠가 민수만 좋아하잖아~!!!" 그럴 줄 알았습니다.


 아이들이 싸웠을 때는 서로 이해할 수 있도록 중재하기도 하지만 그 전에 아이들의 마음을 풀어줘야 합니다. 아이들을 떨어뜨려 놓고 다른 아이가 듣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그 아이 편을 들어주는 게 좋습니다. 그렇게 공감해 주면 아이들은 금방 마음이 풀립니다. 그렇게 마음이 풀린 다음에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순서를 정해주거나 다른 더 그럴 듯한 장난감을 가지고 놀라고 제안해주거나 하면 되는데 이번엔 완전히 잘못했습니다.


 아이들이 다 듣는 곳에서 상대방 아이에게 "너 속상하구나" 라고 말했으니 억울할 법도 합니다. "미루야, 아빠가 민수만 좋아하는 게 아니고 민수가 혹시 속상한 게 있을까봐 물어봤던 건데, 그것 때문에 미루는 또 더 속상했구나." 한참을 달래고 나서야 겨우 미루는 울음을 그쳤습니다. 이것 참 쉬운 일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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