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3-28 10:19 (목)
[육아일기 93] 장수풍뎅이 장례식
상태바
[육아일기 93] 장수풍뎅이 장례식
  • 강상구 시민기자
  • 승인 2011.10.04 12: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빠 찬빈이네 장수풍뎅이도 죽었대." "그래?" "걔네는 수컷이 죽었대. 우리는 암컷이 죽었는데."
 키우던 장수풍뎅이 암컷이 죽었을 때 미루는 너무 너무 슬퍼했었습니다.


 "아빠 암컷이 죽은 거 아냐?" 어느 날 집에 들어왔는데 암컷이 움직이질 않았습니다. 장수풍뎅이 두 마리가 가끔 안 움직일 때가 있었기 때문에 별 일 없을 거라고 말해줬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이 돼도 장수풍뎅이는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이상합니다. 일단 출근을 했습니다.


 그 날 저녁 장수풍뎅이가 아침하고는 다른 자리에 가 있습니다. "미루야! 풍뎅이 살아 있나봐." 그런데 자세히 보니 장수풍뎅이 몸과 머리가 분리돼 있습니다. 으윽. 너무 놀랐습니다. 몇 달을 열심히 키우고 매일매일 쳐다보던 거라서 그런지 그 모습이 너무 끔찍합니다.


 "미루야, 이거 봐..." 화장지를 펴 놓고 죽은 풍뎅이를 꺼냈습니다. 미루는 놀란 얼굴로 말없이 쳐다봅니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합니다. "아빠, 풍뎅이 땅에 묻어 줘야겠지? 흑흑"


 풍뎅이를 화장지에 조심스럽게 싸서 미루와 아파트 옆 공터로 갔습니다. 미루가 너무 슬퍼하니까 저도 슬픕니다. 어디다 묻어줄지 찾다가 조그만 나무 옆에 묻어주기로 했습니다. "미루야, 우리가 풍뎅이 묻어주면 어디로 갈까?" 미루는 울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땅속으로 가는 거 아냐?"


 작은 삽으로 땅을 파고 풍뎅이를 놓았습니다. "미루, 니가 흙으로 덮어." 미루 눈에서 엄청나게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미루 엄마는 풍뎅이 죽으면 미루가 너무 마음 아파하겠다는 제 말에 "그러면서 크는 거야"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미루는 흙으로 장수풍뎅이를 덮어주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나무야, 풍뎅이하고 잘 지내." 또 웁니다. 그러더니 또 말을 합니다. "풍뎅이 하늘나라에 가서 잘 살아." 아까는 땅 속으로 간다더니 이제는 하늘나라로 간다고 합니다.


 풍뎅이를 땅에 묻고 미루는 저에게 이 나무 어딘가에 표시를 하자고 말했습니다.
 "아빠 작은 돌들을 모아다가 여기다 풍뎅아 잘 살아. 이렇게 글씨 써줘" 그건 너무 힘든 일입니다. "미루야, 그냥 글씨를 쓰자. 여기다." "그래."


 미루와 저는 같이 나무 밑에다 '풍뎅아 잘 살아.'하고 글씨를 썼습니다. 다시 집으로 들어오면서 저는 미루를 꼭 안아줬습니다. 저도 이렇게 마음이 아픈데 미루는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싶습니다.


 집에 들어오니 이제는 수컷 풍뎅이 한 마리만 덩그러니 남아 있습니다. 키우고 있는 애벌레까지 합하면 두 마리입니다. "미루야, 저 애벌레는 크면 암컷이 될까, 수컷이 될까?" 며칠 전 질문에 미루는 멋진 수컷이 됐으면 좋겠다고 대답했었는데 이제는 망설임 없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암컷!"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수컷이 혼자서 심심하겠다." 미루는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크고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