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4-19 09:21 (금)
[육아일기 89] 아빠 일이 된 곤충 키우기
상태바
[육아일기 89] 아빠 일이 된 곤충 키우기
  • 강상구 시민기자
  • 승인 2011.08.29 17: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빠 나 장수풍뎅이 사주세요."
 "갑자기 웬 존댓말이야?"
 "사주세요~."


 근처 마트에 가서 미루가 그렇게 졸라대던 장수풍뎅이를 사줬습니다. 처음엔 멋지게 생긴 수컷 한 마리만 살려고 했는데, 혼자 있으면 외로울까봐 암컷도 한 마리 샀습니다. 그랬더니 매장에 계신 분이 서비스로 애벌레 한 마리를 더 주셨습니다.


 미루는 그 날부터 밤마다 장수풍뎅이 관찰에 열을 올렸습니다.


 "아빠, 밥은 내가 줄게." 장수풍뎅이용으로 파는 젤리를 조심스럽게 풍뎅이 옆에 놔줍니다.
 "아빠 이것 봐! 먹고 있어."
 "아빠 풍뎅이가 톱밥 속으로 들어갔어."
 "아빠, 장수풍뎅이가 뒤집어졌어."


 그런데 미루가 그러니까 저도 자꾸 장수풍뎅이를 쳐다보게 됩니다. 퇴근하고 나면 늘 풍뎅이 앞에 가서 가만히 관찰하고, 애벌레는 잘 살아 있나 신경을 씁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습니다. 이제 장수풍뎅이 키우는 일이 점점 제 일이 됐습니다. 세상에, 꾸물꾸물 기어가는 애벌레가 예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애벌레를 6개월쯤 키우면 어른 곤충이 된다고 합니다.


 미루는 옆에서 "아빠, 얘는 암컷일까 수컷일까" 궁금해 합니다. 애벌레가 사는 톱밥이 적당히 습기가 유지되어야 하지만 물이 애벌레한테 직접 닿는 건 안 좋다고 해서 집안을 다 뒤져 분무기 하나를 찾았습니다. 미루가 갑자기 잠드는 바람에 젤리를 주지 못할 때는 장수풍뎅이 밥도 제가 줬습니다.


 늦은 밤 시간, 뭔가 긁는 소리가 나서 응접실에 가봤더니 장수풍뎅이 수컷이 자기 사는 집이 답답했던지 벽을 발로 벅벅 긁고 있습니다. 날개를 펴서 부웅거리는데 사방이 막혀 있으니까 날 수는 없습니다. 고민이 됩니다. 얘네들 풀어주는 게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장수풍뎅이 키우는 게 점점 제 일이 돼가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장수풍뎅이를 진심으로 걱정하게 됐습니다.


 "아빠 나 장수풍뎅이, 어린이집 가져가도 돼?"
 그날 밤,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장수풍뎅이 암컷 앞다리 하나가 잘려 나가 있었습니다. 어린이집 안 가져갔으면 좋겠더구만 기어이 가져간다고 하더니 일이 그렇게 됐습니다.


 정말로 짜증이 났습니다. 미루한테 화를 낼 수는 없어서, "장수풍뎅이 암컷 정말 아프겠다" 하면서 얼굴을 찌푸렸습니다.


 미루는 제 눈치를 보면서 "내가 괜히 어린이집 가져가자고 해가지고…"  하면서 말꼬리를 흐립니다.


 곤충 하나쯤 키우는 건 아이들한테 좋다고 해서 샀는데 장수풍뎅이 키우는 게 이제는 제 정서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요즘 고민은 이런 겁니다. 장수풍뎅이 성충은 3개월쯤 살다 죽는다는데, 그 전에 풀어주는 게 어떨까 하는 겁니다. 키우던 곤충을 자연으로 보내주게 되면 아이들은 자연에 대한 존중감을 배운다고 합니다.


 사실 곤충이 죽어버리면 제 마음도 꽤 아플 것 같아서 미리 풀어주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미루한테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