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를 걷다 7 _ 구로3동 문성골 두 번째 이야기

2010 기획 - 토박이와 외지인 상생을 꿈꾸다

2010-04-19     송희정 기자

 

▲ 구로디지털단지 직장인들의 베드타운화 되어가고 있는 문성골 모습. 마을 안쪽까지 원룸텔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지만 그 옛날 마을 곳곳에 존재하던 우물들은 이곳 주민들의 '풍요'와 '여유'를 상징했다. 수도와 하수도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았던 시절에도 이곳만큼은 물 걱정 없이 지냈을 정도다. 때문인지 주민들 사이에서는 누가 들어와 살아도 잘 돼서 나가는 마을로 통했다.

 

▲ 마을 주민들의 집안 내력을 전해주는 이지자 씨.

 "50년 전 이사한 첫날 벼락부자 되는 꿈을 꿨지 뭐야. 자식 다섯 잘 키우고 집도 샀으니 꿈이 딱 들어맞았지. 다들 그러는데 여기 터가 좋대. 집안 대대로 여기 땅을 갖고 있었던 사람 중에 잘 안된 사람이 없어. 그런데 신기하지. 여기 자손들 중에는 부모재산 거덜 낸 이도 별로 없어." 슈퍼 앞 야외 테이블에 앉아 봄볕을 쬐던 이지자(여, 75)씨가 마을 주민들의 집안 내력을 줄줄이 꿰며 이곳 터가 부른 성공의 실례를 전해준다.

 


 문성골 터의 기운은 옛 구로공단 노동자들에게도 과연 통했을까? 궁금하지만 이에 답해줄 노동자들은 현재 마을에 남아있지 않다. 구로공단 전성기인 1980년대 노동자 세입자들로 복작복작 대던 마을은 1990년대 수출지향적 경공업이 사향 길로 접어들면서 공단의 쇠락과 함께 세입자들의 대거 이탈을 겪었다. 공단 노동자들이 빠져나간 사글셋방은 중국동포와 외국인노동자들로 채워졌다. 2000년대 들어 마을은 구로공단이 구로디지털단지로 새 옷을 갈아입고 대부분의 주택지가 원룸텔로 바뀐 가운데 자유분방한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IT업계 화이트칼라들의 베드타운이 됐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이웃이 들고나는, 국가산업단지 인근 마을의 숙명이다.
 
   "80년대나 지금이나 전성기인 것은 분명한데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조금 달라요. 구로공단 시절엔 그래도 정이 넘치는 시골동네 같은 분위기였어요. 하지만 지금은 옆집도 모르고 앞집도 몰라요. 실제 주소지를 여기에 둔 사람보다는 직장 때문에 잠시잠깐 머무는 사람들이 더 많거든요. 상권 형성된 걸 봐요. 여긴 주거상권이 아니라 여의도 같은 오피스상권 위주에요. 점심때만 반짝하곤 하죠. 마을이 발전했다지만 겉과 속은 조금 다르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문성골 입구에서 38년 동안 부동산사무소를 운영해온 홍종화(70)씨는 마을 발전의 이면에 자리한 그늘을 이렇게 설명한다.


 국가산업단지와 50년 이상 고락을 함께하며 우물 많던 시골마을에서 원룸텔 밀집지역으로 변모에 변모를 거듭해온 문성골. 구로지역과 구로디지털단지의 공존과 상생의 전략이 여전히 요원한 일로 여겨지는 이때, 문성골에 오래 기대어 살아온 많은 주민은 마을 바깥에서부터 밀려오는 변화의 바람 앞에 때론 설레어하고, 때론 서운해 하며 토박이와 외지인이 어울려 오순도순 마을을 이루고 살아갈 그날을 기대하고 있다.

 

 ■ 도움말 : 김성환(74)씨, 이지자(여, 75)씨, 홍종화(70)씨, 이경희(60)씨
 <문성골 편 끝. 다음호에는 천왕동을 걷습니다.>

 

 

 

◈ 이 기사는 2010년 4월 19일자 구로타임즈 신문 346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