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단지]일본 가나가와현 가나가와사이언스파크(KSP)를 가다

벤처업체들 지역주민과 탄탄한 유대 ‘시선’

2006-11-04     송희정
일본 가나가와사이언스파크(KSP)와 서울디지털산업단지를 단순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게 사실이다.

국가산업단지인 서울디지털산업단지와, 지자체가 주도해 민간기업 등과 3섹터방식으로 건립된 KSP는 태생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여기에 건립규모도 크게 차이가 나, 60만평에 이르는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 비하면 1만6천평의 KSP는 국내 아파트형공장 2개동 대지면적에 불과할 정도로 협소하다.


하지만 KSP에는 그간 일본 내 선진산업정책을 연구해온 학자들조차 놓치고 간 중요한 특징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서민형 복층 주택들이 빼곡히 늘어선 조용한 마을 한가운데 불과 1년 사이 높이 12층 빌딩들이 떡하니 자리 잡았음에도 지난 20년 동안 별다른 잡음 없이 인근 마을과 평화로운 유대관계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0월 8일 일본 현지로 날아가 그 속내를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어린이과학페스티벌, 여름 ‘감사의 날 축제’
푸른 공원벨트 함께 즐겨

KSP가 위치한 일본 가나가와현은 우리나라로 치면 경기도 규모의 광역지자체지만 그 역사는 구로구와 닮은 점이 많다.

1970년대 두 번의 오일쇼크와 경기불황으로 제조업의 잇따른 부도와 실업증가가 확산되면서 중화학공업도시인 가나가와현은 급격한 도심공업지역의 공동화현상을 겪었다.
당시 가나가와현의 나가쓰 지사는 중앙정부의 권한과 정책기조에 정면 도전하는 독자적인 산업정책을 통해 현 KSP의 모태가 되는 ‘두뇌센터구상’을 발표하고, 고부가가치형 기술집약형으로 지역산업구조의 재편을 시도했다.

KSP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지난 80년 가나가와현 내 40여개 벤처회사들이 모인
‘기술개발기업연락회의’의 아이디어 제공으로 건립(1989년)됐다.
현재 KSP가 건립돼 있는 가와사키시 다카쓰구 소재 ‘이케가이철강’의 공장터는 원래 ‘토비시마건설’이 맨션(고급 아파트)을 짓기 위해 매입한 땅이었다. 이곳은 무사시미조노구찌 전철역 옆에 위치해 있는 등 입지환경이 뛰어나 당시 부동산 업자들까지 눈독을 들인 ‘노른자위’였다.

가나가와현 상공노동부 산업활성과 야마구찌 과장대리는 “가나가와현이 KSP 부지를 선정하고 매입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며 “당시 토비시바건설 사장이 어찌나 완강히 거부하는지 그 다음 대에 사장이 될 부사장을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가 설득했다”고 말했다.

난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막상 KSP 건립계획이 발표되자 이제는 인근 주민들의 반대가 들끓었다. 주민들의 반대 이유는 일조권 문제와 환경오염 등에 대한 불안 때문이었다.

당시 현 정부는 주민대표들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세 가지 사안에 대한 주민협정을 맺었다.

첫 째 △인근 저층 주택가의 사생활 보호 및 휴게 공간 제공을 위해 건립부지의 40%를 녹지대로 조성할 것. 둘 째 △공사 중 공사의 진행방식, 소음, 공사차량의 통행 등의 문제를 해결할 것. 셋째 △건립 후 동물실험을 하는 생명공학연구소의 입주는 금지할 것 등이 그것이다. 현 정부는 이 약속을 지킨 것은 물론 이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환경보존위원회와 20여년간 협조체제를 이어가며 연 2회 간담회를 개최하고 있다.

현 정부가 배려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무사시미노조구찌역과 KSP를 잇는 무료셔틀버스를 운행하고, KSP 안에 약국, 은행, 편의점, 문구점 등 편의시설을 들였다.

2대째 KSP 인근 마을에 거주하는 무까사(33)상은 “KSP는 이곳 주민들에게 산책로이자, 운동장이자, 쇼핑장소이자, 외식장소이다”며 “KSP로 인해서 불편을 느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으며, 그저 점잖은 성격의 사람들이 들어와서 공부하고 연구하는 시설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KSP와 지역주민들과의 유대의 끈은 지난 20년 동안 꾸준히 이어져오고 있다.
KSP는 매년 2회씩 ‘어린이 과학페스티벌’을 열어 지역주민들에게 무료로 개방한다. 또한 이곳 주민이 KSP호텔 내 레스토랑을 이용할 때는 이벤트별 할인율을 적용해 음식을 싸게 제공한다.

KSP와 지역주민 간 교류의 하이라이트는 매년 여름에 개최하는 ‘KSP 감사의 날’ 축제다. 매년 7월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을 정해 ‘감사의 날’ 축제를 갖는데, 행사 프로그램은 KSP와 환경보존위원회 회원들이 공동으로 계획하고 진행한다. 축제 기간에는 KSP 입주상점들이 손수 장만한 음식이 푸짐하게 마련된 가운데 인근 학교 동아리들의 솜씨자랑, 가위바위보 대회, 민요 연주, 노래자랑 등 주민을 위한 아기자기한 프로그램들이 진행된다.

이 마을에 20년째 거주하고 있다는 키데라(61, 여)상은 “매년 여름 KSP 축제에 참가하는 재미가 적잖다”며 “KSP 공원에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 나갈 때마다 이웃들 소식도 듣고 새로운 친구도 사귈 수 있어 그곳은 나에게 친교의 장소다”라고 말했다.

콘크리트 구조물의 웅장한 KSP 빌딩들과 서민적인 주택가와의 이질감을 상쇄시키는 건 KSP 부지를 휘감고 있는 푸른 녹색 띠다.

주말 한가로운 낮이면 KSP에 입주해있는 벤처창업인과 직원들이 빠져나간 이곳 공원은 오롯이 인근 주민들의 차지가 된다. 운동장에서 공놀이를 하는 아버지와 아들에서부터 조용히 독서를 즐기는 어르신까지, KSP의 녹지대는 인근 주민 모두에게 열려져 있다.
야마구찌 과장대리는 지역사회와 조화를 이루는 KSP 설계철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KSP 설계의 컨셉은 공장이 아니다. 주택가 한가운데 위치한 빌딩인 만큼 쾌적한 생활환경을 조성함은 물론 안팎으로 열린 구조여야 했다. 이곳 종사자들도 고립되지 않고, 주민들도 고립되지 않는 ‘오픈 스페이스’를 조성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원했던 바다”
도심 속 공장 이전적지에 새로이 연구․지원집적시설을 건립하면서 가나가와현이 취한 전략은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인근에서 만난 대다수의 주민들은 KSP에 대한 질문에 열이면 열 미소 띤 얼굴로 화답했다. 그들에게 KSP는 일본 최고의 R&D연구집적시설도 아닌, 가나가와현 지역경제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기관도 아닌, 그저 내 집 가까이 위치한 친숙하고 아름다운 쉼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