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산업단지 발전 열쇠는 ‘상생’

[기획Ⅱ: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2)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명과 암

2006-10-31     구로타임즈

“구로는 변하고 있습니다.” 최근 구로구를 상징하는 표어는 단연 ‘변화’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핵심 키워드는 바로 ‘서울디지털산업단지’다. 굴뚝산업에서 첨단IT산업으로, 재래식공장에서 아파트형공장으로, 벌집촌에서 아파트단지로… 구로지역의 가시적인 변화를 말할 때 그 중심에는 늘 서울디지털산업단지가 있다.

구로타임즈에서는 지난 호 ‘구로공단의 흥망성쇠와 구로지역’이라는 주제의 첫 번째 기획시리즈에 이어 이번 호에서는 지난 97년 첨단화 계획 이후 괄목할만한 성장을 거듭해온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명과 암에 대해 짚어보도록 한다.

구로공단의 30년사의 빛과 그림자가 구로지역사회에 미친 영향력과 마찬가지로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명과 암은 미래 구로구 발전의 그물을 짜는 씨줄과 날줄같은 역할을 해 줄 것이다.

- 구로지역사회, 업체간 협력망 공존전략 모색할 때
- 업체는 첨단IT로 재편... 파격 변신
- 도로기반시설은 30년전‘공단시절’


벤처들 구로로, 구로로

‘269개 업체, 7만명’에서 ‘5770개 업체, 8만명’으로
언뜻 이해가 잘 안가는 이 수치는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변화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데이터 중 하나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지난 1986년,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는 269개 업체에 7만여명의 직원들이 고용돼 있었다. 1개 사업장에 평균 260여명의 인력이 군집돼 있던 이들 대규모 공장들은 20년의 세월이 흐른 2006년 8월 말 현재 평균 고용인력 13.8명인 5770여 곳의 소규모 업체들로 대체됐다.

이는 단지 인력의 축소와 업체수의 증가라는 외형상의 변화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난 86년 강세를 보인 섬유의복(32.3%)이 현재 6.7%로 줄어든 반면, 지난 2001년 85개 업체에 불과했던 비제조업(정보통신산업시설, 첨단기술산업, 컴퓨터소프트웨어개발업 등 지식산업 관련 업종)은 4년 사이 큰 폭으로 상승해 현재 단지 내 업종의 46%를 차지한다.

이는 노동집약적 저부가가치산업에서 기술집약적 고부가가치산업으로 산업구조 재편을 이룬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변화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이 와중에 구로지역에 위치한 1단지의 첨단IT업체 비율은 금천구에 속한 2,3단지에 견줘 월등히 높아졌다. 구로구청 자료를 보면, 6월말 현재 1단지 내 입주한 2564개 업체 가운데 무려 78%에 달하는 2019개 업체가 첨단IT업체로 분류된다.

흔히 ‘벤처기업’으로 일컬어지는 이들 업체들은 부유하고 쾌적한 동네, 강남과 여의도 등을 뒤로하고 구로로, 구로로 몰려들었다. 왜일까?


예산 수조원… 재정비보다 업종재편

지난 90년대 초중반 구로공단 쇠퇴기에 직면해 이곳의 관리주체인 한국산업단지공단(이하 산단공)이 선택한 혁신전략은 ‘공단 되살림’에 유효하게 먹혀들었다.

산단공은 90년대 초 대규모 공장의 지방이전 등으로 활력을 잃은 구로공단의 재도약을 위해 서울시립대가 내놓은 ‘구로공단 첨단화 계획안 연구’ 결과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당시 연구결과는 세 가지 안으로 도출됐는데 △부지 전체를 싹 갈아엎고 재정비하는 방안 △일부 재정비하고, 일부 업종 전환하는 방안 △업종만 재배치하는 방안 등이다.

산단공은 논의를 거듭한 결과 마지막 세 번째 전략을 취했다.

산단공 서울지사 진기우 지사장은 “세 가지 방안을 놓고 검토했을 당시 재정비 방안이 가장 이상적이기는 했지만 수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재원을 조달할 방도가 없었다”며 “결국 세번째 방안을 전략적으로 선택, 1․2․3단지의 특성에 맞게 업종 재배치 계획 등을 짠 뒤 관리기본계획을 만들어서 97년 7월 산업자원부가 이를 변경 고시했다”고 말했다.

관리기본계획 안에는 단지 내 업종별 배치계획부터 입주 계획, 사후관리계획까지 명시돼 있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했다. 이미 도시화가 상당부문 진전된 구로․금천 도심 안에서 토지이용을 극대화하면서도 생활환경의 파괴는 최소화할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이 필요했던 것이다.


- 아파트형공장 건립 허용
- 업체 수 7년 새 아홉 배 증가

이러한 필요성에 의해 도입된 게 바로 민간사업자의 아파트형공장 건립 허용이다.

지난 96년 7월 1단지 내 (주)동일토건의 동일테크노타운1차빌딩 준공을 시작으로 2000년 4개, 2003년 19개, 2005년 52개, 2006년 4월 현재 73개 등 서울디지털산업단지 내 아파트형공장의 건립은 급속도로 진전됐다. 당시 산단공은 단지 내 기업 집적을 극대화하기 위해 아파트형공장 건립 및 업체 입주 시 각종 융자 및 세제지원책을 내놓았다.

이에 기업체들의 입주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각종 세제혜택과 값싼 임대료 및 유지․관리비 등을 좇아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이삿짐을 옮긴 기업은 지난 99년 597개에 불과했던 데 비해 2003년 2,206개, 2005년 5,124개, 2006년 8월 말 현재 5,770개로 껑충 뛰어올랐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의 산업경제센터장 신창호 지역경제학박사는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성공요인을 △산업용지에 대한 정부의 규제 △아파트형공장 건립 및 입주업체에 대한 지원 △시장경제 등 세 가지로 분석한다.

신 박사는 “당시 정부는 공장이 빠져나간 자리에 아파트 등이 들어서지 못하도록 산업용지 이용에 대해 엄격한 규제를 가했다”며 “여기에 각종 융자 및 세제혜택을 적용, 건설업자들에게 자금조달 면에서 큰 메리트를 안겨줬고, 이 때문에 당시 경기불황에도 불구하고 자율적으로 시장이 형성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뭉침의 효과… 과제
단지 내 기업체 집적에 성공한 산단공은 새로운 고민거리에 빠져들었다. 모였으면 뭉친 효과를 내야하는데 과연 이를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가의 고민이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 안에 집적된 수천여개 업체들의 정보와 인적자산을 네트워크화하고 이들이 기업역량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각종 경영지원과 기술지원의 연결망을 촘촘히 짜야하는 과제가 대두됐다.

산단공은 지난 2004년부터 단지 내 소프트웨어 구축의 일환으로 혁신네트워크(RIS) 사업과 서울산학기술포럼(SIF)을 실시해 2006년 4월 현재 기술이전․기술자문 58건, 경영지원 168건, 기술유통망 데이터베이스화 2500개사 등의 사업실적을 냈다. 여기에 서울대, 숭실대, 중앙대, 동양공전, 유한공전, 부천대 등의 대학들을 끌어들여 산학협력네트워크의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


- 예측보다 빠른 시장형성
- 도로등 기반시설 큰 불만거리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변화 속도는 산단공 관계자들의 예측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산단공의 한 관계자는 “97년 구로공단 첨단화 계획을 고시할 때만해도 아파트형공장이 이렇게 빨리 건립될지, 기업체수가 이정도로 늘어날지 어느 누구도 예측 못했다”며 “현재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대두된 도로, 녹지 등 기반시설의 부족은 예측 부재에 기인한 것이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디지털산업단지 내 도로 등 기반시설의 문제는 입지환경과 관련해 입주 업체들의 가장 큰 불만 사항 중 하나다.

(주)안세기술의 권정기 관리본부 상무이사는 “러시아워 때에는 차를 몰고 대로까지 가는 데만 30분이상이 걸린다”며 “단지의 구조고도화를 위해서는 우선 교통체계의 정비가 우선돼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단지 내 도로는 수 십만 명에 달하는 업체 종사자들과 방문객 등을 수용하기에는 이미 한계를 넘어섰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의 교통체계는 지난 1967년 구로공단 1단지 준공 당시에 조성된 후 30여년간 별다른 개선 및 정비 없이 그대로 운영돼 왔다.


- 정부와 지자체의 관리 이원화

이처럼 예측과 계획의 부재에 따른 불합리한 교통체계에 대해 산업단지 관리주체인 산단공측과 단지 내 도로의 유지 보수를 책임지고 있는 서울시와 구로구등 지방자치단체측의 해명은 제각각이다.

산단공측은 관련 법령상 단지 내 도로의 유지 보수의 책임이 지자체에 있다는 주장이고, 지자체는 국가가 관리하는 산업단지이기에 국가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단지에 대한 모든 권한은 국가가 갖고 있는데 지자체에게는 예산 부담만 지어주니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 아니겠느냐”며 “서울디지털산업단지는 서울시 입장에서 볼 때 시의 입김이 전혀 미치지 않는 하나의 섬이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현재 60억원의 시비를 투입해 가리봉오거리~만민중앙교회 구간의 디지털단지로 확장공사를 진행 중이다. 오는 12월말 240m 구간에 대한 준공을 앞두고 있는 서울시는 내년도 2단계 사업으로 48억원의 예산을 들여 나머지 860m(구로1․2교)구간에 대한 공사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산단공 역시 현 상황에서 개선 가능한 교통 장애요인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 16일부터 구로구모범운전자회의 도움을 받아 상습정체구역 교통정리에 나서는 한편 신호체계 및 차선변경 등 처방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계획은 이곳의 교통체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의 일부분을 해결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단지 내 들쑥날쑥한 도로 선과 진․출입체계의 불량으로 인한 혼잡․병목 현상 등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예산이 수반되는 대수술이 전제되어야 한다.

단지 내 대중교통수단, 녹지 공간, 호텔, 고급음식점 등의 확충도 상시적으로 거론되는 개선점들이다.

(주)마리오이엔씨의 전영만 분양영업팀장은 “단지 내에 외국바이어를 접대할 호텔이 없다보니 일이 생기면 여의도나 금천구까지 나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데다 세미나나 교육을 할 만한 마땅한 교육장도 없어 업체들의 불편이 크다”고 말했다.

산단공이 기업 집적의 시너지 효과 창출을 위해 지원하고 있는 각종 네트워크 사업들과 교육․자문 사업들 역시 이곳 입주 업체들이 피부로 느낄 만큼 실질적이 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첨단IT장비를 생산해내는 기업체의 한 임원은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선 기술 및 연구개발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나 실제로는 거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어 유명무실한 상태”라며 “지금으로선 기업체를 잔뜩 모아다만 놓았지 기업의 욕구를 읽어내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시스템은 아직 초보 수준의 단계”라고 말했다.

- 공존․공생전략 새롭게 짜야
이런 가운데 구로지역사회와 서울디지털산업단지와의 소통 및 교류는 전무한 상황이다.
도심에 위치한 산업단지는 인근 주민들과의 유대관계가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서울디지털산업단지는 구로지역사회 속으로 쉽게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도심 기업집적시설이 주택지와의 경계에 녹지완충지대를 조성해 주민들에게 개방하고, 다양한 주민프로그램을 실행해 지역사회와 공존․공생을 추구하는 것과 비교해, 서울디지털산업단지는 국가 혹은 중앙이라는 성벽에 둘러싸인 견고한 ‘성(城)’과 같다.

그리고 이는 구로지역주민들 역시 마찬가지다. 내 지역, 내 고장에 어떠한 기업이 들어와서 활동하고 있는지, 그들이 구로지역사회에 바라는 점은 무엇인지 찾아보고 귀 기울이는 관심과 여유가 부족하다.

한국산업단지공단 산업입지센터의 임종인 선임연구원은 “중앙의식이 팽배한 서울지역에서는 기업과 지역의 연대가 지방의 다른 도시보다 덜 끈끈하고, 덜 밀접한 게 사실”이라며 “기업과 지자체는 향후 진행될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재정비 과정에서 어떻게 서로 공존․공생할 것인지에 대한 방안을 놓고 진지하게 고민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과 산업단지가 서로가 서로에게 ‘섬’이 아니라, 공존전략을 통해 윈-윈(Win-Win)할 수 있도록 관리주체인 산단공과 자치단체인 구로구청의 코디네이터로서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1994년 : 구로공단 첨단화 계획안 연구용역(서울시립대)
1997년 7월 : 구로산업단지 첨단화 계획 고시
2000년 12월 : 서울디지털산업단지 명칭 변경
2002년 10월~12월 : 서울디지털산업단지 발전방향 및 기본계획 용역(타상성 조사)
2003년 11월 : 가리봉 균형발전촉진지구 지정
2004년 4월 : 지하철 역명변경(구로공단역→구로디지털단지역)
2005년 3월~10월 : 서울디지털산업단지 구조고도화 기본계획 수립 용역
2006년 6월 : 구조고도화기본계획 승인신청(산업자원부)

-------------------------------

❚기획취재팀 : 송희정 ․ 김경숙 ․ 김윤영 ․ 윤용훈 기자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