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현장] 아이들은 어디로…

2006-08-23     송희정
동네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만나면 카메라 가방에 먼저 손이 간다.

“사진관 아줌마”로 불리며 토끼처럼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담다보면 숨은 턱에까지 차지만 이때만큼은 놀이로서의 촬영이 된다. 업무시간(?)에 즐기는 ‘딴 짓거리’ 덕에 가끔은 꽤 괜찮은 사진들을 얻기도 하니, 놀면서 일하는 재미가 솔잖다.

하지만 아쉽게도 요즘 같이 찌는 더위에는 동네 놀이터조차 한산하다. 아름드리나무 한그루 없이 마른 흙내가 폴폴 일어나는 한여름의 놀이터는 아이들에게도 곤욕일 터이다.

며칠 전 애써 ‘딴 짓거리’를 찾던 기자의 눈에 한 무리의 아이들이 들어왔다.

구로구청사 앞마당에 조성된 소공원 내 분수대. 이곳에 몸을 담그고 ‘첨벙첨벙’ 물놀이 삼매경에 빠져있는 아이들을 발견하자마자 카메라를 꺼내들고는 냅다 달려갔다. 여름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사진기사로 제격이다 싶어 카메라를 들이대는데 ‘아뿔사-!’ 걸음을 멈췄다.

순간 눈에 들어온 것은 ‘감전 위험’을 알리는 안내문과 분수대 안의 날카로운 자연석들 그리고 미끄러워 보이는 각종 구조물들. “얘들아, 나와라.” 무서운 얼굴의 아줌마 말 한마디에 아이들은 순순히 밖으로 나와 고개를 한껏 아래로 떨어뜨렸다.

“위험하잖아. 여기 말고 다른 데서 놀아야지.” “ …… ” “앞으로 다시는 여기서 물놀이하기 없기다.” “… 놀데가 없어요.” “그럼 집에서 놀던가.” “집에 아무도 없고 더워서…”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보이는 남자 아이가 들릴 듯 말듯 작은 소리로 한 말이다. 그제야 아이들 목에 걸려있는 집 열쇠들과 색 바랜 옷가지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뒤 말문이 막혀버린 건 오히려 이쪽이 됐다. 이 더위에, 이 뙤약볕에, 가까운 곳 어디로 가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는 가운데 아이들은 “다시는 안 할 게요”라는 말을 남기고는 총총 걸음으로 사라져버렸다.

그 후 분수대 안에서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한 차례 더 만났지만 “나와라”라고 주의를 줬을 뿐 “어디에 가서 놀아라”라는 말은 여전히 해줄 수 없었다. 그리고 최근 분수대의 물이 빠지고부터는 아이들을 만날 수 없었다.

오류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이 쓴 ‘내가 구의원이 된다면(구로타임즈 158호 6월19일자 5면)’ 제목의 글 중 기억에 남는 재미난 글이 하나 있다. 글을 쓴 아이는 “더운 여름날 운동장에서 뜨거운 광선 빔을 받으며 체육하는 것은 너무나 괴로운 일”이라며 “에어컨 바람이 빵빵하게 나오는 체육관을 짓겠다”라고 공약을 내걸었다.

이 아이의 글처럼 “더운 여름날 뜨거운 광선 빔 받으며” 밖에서 뛰어노는 건 “너무나 괴로운 일”일터인데 “에어컨 바람이 빵빵하게 나오는” 재밌는 놀이공간을 집 근처에 두지 못한 우리의 아이들은 요즘 어디에서 무얼 하며 놀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