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여행 WITH 박홍순 작가 (3)] TV와 독서 사이에서 서성이다

2022-08-22     박홍순 작가

 

 

카페에서 만난 신동엽
 
"야! 이 책 무진장 재미있겠다!" 몇 해 전에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낮에 두 일정 사이의 시간이 어정쩡하게 떠서 한적한 카페를 찾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몇 사람이 들어와서는 옆자리에 앉았다. 

한쪽 벽에 선반처럼 만든 책장에 백여 권의 책이 있는 카페였다. 주문한 커피가 나오길 기다리던 중 한 사람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책 한 권을 보며 툭 던진 말이다. 

내가 글쟁이여서인지 귀가 솔깃해진다. 

어떤 책이길래 저토록 반색하며 반길까 싶다.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 그 무리 중 한 명이 책꽂이에 있던 그 책을 꺼낸다. 곧이어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책장을 뒤적인다. 

"에이, 이게 뭐야!" 몇 초 정도나 됐을까, 여기저기를 펼치더니 이내 탁자 구석으로 휙 던져놓는다. 다들 실망스러운 눈치다. 

이어서 직장 얘기며 사소한 일상 대화를 나눈다. 무슨 책이기에 그러나? 이번에는 내가 궁금해진다. 한동안 왁자지껄 수다를 떨던 이들이 나가고 나서 슬그머니 옆 탁자 위의 책을 집으니 《신동엽 전집》이다. 

갑자기 맥이 탁 풀린다. 그들이 보인 양극단의 반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너무나 분명하기에 입가에 쓴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개그맨 신동엽의 재치 있는 개그를 모아놓은 전집으로 알고 펼쳤다가 시대의 아픔을 담은 심각한 시가 나오자 덮어버렸을 게 분명하다. 

이 글을 읽는 사람도 한번 신동엽이라는 이름과 함께 누가 먼저 떠오르는지 생각해보라. 십중팔구 개그맨 신동엽이기가 십상이다. 

학생에서 직장인에 이르기까지 독서와 담을 쌓고 사는 현실의 반영이다. 우리의 독서 현실은 부끄럽다 못해 참담할 정도다. 한국이 평균 독서량 조사 대상국 가운데 거의 최하위 수준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우리나라 통계청 발표를 봐도 한숨이 나온다. 

한국 국민 10명 중 9명은 하루 책 읽는 시간이 10분도 안 된다. 연평균 도서관 이용률도 30%를 겨우 넘긴다. 주요 국가의 약 반 정도밖에 안 된다. 

 

나는 TV를 본다, 고로 존재한다

어쩌면 퉁명스럽게 반문할지도 모른다. 대중매체 시대에 독서를 왜 해야 하느냐며 갸웃거리는 모습이 떠오른다. 

만약 일상적인 농담 따먹기를 하던 와중에 신동엽이라는 이름이 나왔으면 개그맨을 떠올리는 게 전혀 이상할 게 없다. 하지만 책에서, 그것도 '전집'이라는 묵직한 글자 앞에 놓인 신동엽이라면 사정이 전혀 다르다. 

누가 우리의 마음에서 시인을 빼앗아갔는가? 수많은 사회적, 문화적 요인이 작용하겠지만 다 늘어놓고 싶은 마음은 없다. 어차피 방송 스타와 비교되면서 생긴 에피소드이니 대중매체와 관련해서만 고민을 한 자락 던져놓자. 

나름대로 책을 읽지 '못하는' 이유를 댄다. 대체로 너무 바빠서 책을 볼 여유가 없다고 한다. 학생은 입시, 청년은 취업, 직장인은 업무, 전업주부는 집안일 때문이다. 일이 없는 때가 지속되어도 하다못해 '백수가 과로사한다'더라며 책을 멀리하는 근거를 내놓는다. 하지만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짓 핑계에 가깝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일 하루 평균 TV 시청 시간이 약 3시간에 이른다. 한국인 여가활동 가운데 부동의 1위도 TV 시청이다. 그런데 이제는 TV가 집의 거실에만 있는 게 아니다. 인터넷이 대중적으로 보급되면서 방송을 TV로만 접하지 않는다. PC와 노트북을 이용하다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확대되었다. 포털사이트나 유튜브를 통해 제공되는 드라마나 연예 프로그램은 거의 전적으로 TV에서 방영된 내용이다. 우리 모두 하루를 지내며 매 순간 손에 TV를 들고 있는 셈이다. 

공부하거나 일하는 시간 이외의 시간을 대중매체가 장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책을 볼 여유가 없을 만큼 바쁘다는 말은 거짓이라고 봐야 한다. 평소의 생각이나 사람들 간의 대화도 대중매체에 의해 습득한 단편적 정보가 주종을 이룬다. 특히 드라마나 연예 프로그램에서 화제가 된 일들이 주요 대화 소재로 오른다. 그 결과 신동엽이라는 이름에서 개그맨 이외의 다른 인물을 떠올리지 못한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했다면, 현대인은 조금은 다르게 규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TV를 본다, 고로 존재한다.'

신동엽의 시 1967년

 

고전 읽기는 뿌리를 찾아가는 여행

TV·스마트폰으로 드라마나 연예 프로그램을 보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요즘 유행하는 신조어 '워라벨', 즉 일과 생활의 균형처럼 '발란스'가 중요하다. 물론 워라벨 자체는 중요하다. 장시간 노동을 줄이고 생활이 차지하는 시간을 늘려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균형만으로 삶의 질이 향상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실질적인 균형이 되기 위해서는 생활 내부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적어도 지금처럼 TV 시청이 여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현실, 스마트폰까지 포함하면 대부분이 되어버리는 현실을 균형이라 보기는 어렵다. 사색이나 문학적 감흥을 통해 내면을 깊고 풍요롭게 하는 독서가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 특히 인류의 성찰과 지혜를 담고 있는 고전 독서와 가까워져야 한다.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움베르토 에코는 《미네르바 성냥갑》에서 다음과 같이 고전 독서를 강조한다. "고전 읽기는 뿌리를 찾아가는 여행이다. (…) 고전 작가들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또 다른 멋진 것은, 그들이 우리보다 더 현대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고전이라고 하면 따분한 표정부터 짓는 사람이 많다. 고리타분한 옛이야기여서 하루가 멀게 변화하는 현대사회에 적합하지 않다고 여긴다. 

에코에 의하면 고전은 뿌리를 찾아가는 여행이지만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과거를 향한 막연한 향수로 고전을 찾는 게 아니다. 고전에서 통찰한 내용을 "자신의 생각·몸짓·얼굴 특징에서 재발견"할 기회를 주기 때문에 중요하다. 고전에는 인류의 고민과 성찰이 가득하다. 특히 여러 문제에 대한 다양한 고민과 논쟁이 담뿍 담겨있기에 오랜 생명력을 유지하며 새로운 생각을 자극한다. '그때, 거기'에 머물지 않고 '지금, 여기'의 문제를 깊게 고민하도록 한다. 

신동엽 시집은 한국 문학의 역사에서 대표적인 고전 반열에 올라있다. 특히 <껍데기는 가라>는 국어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유명한 시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4.19혁명의 이름을 팔아 처세하려는 껍데기 정치인들은 가라고 한다. 동학혁명에서 직접 피 흘린 민중의 함성에는 눈을 감고 앙상한 이론으로만 긁적거리는 책상물림도 껍데기일 뿐이다. 또한 분단을 고착화시키려는 군사적 긴장도 흉측한 껍데기라고 한다. 

신동엽이 지금 살아 있다면 어떤 껍데기를 추가할까? 일단 1960년대보다 훨씬 많은 껍데기가 득실거리는 현실에 아연실색했으리라. 썩 꺼져버리라고 호통을 칠 껍데기 가운데 TV와 스마트폰 중독도 분명 한 자리 차지하리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여가의 대부분을 대중매체의 온갖 연예·오락 프로그램 시청으로 채운다면, 자기 정신에 매일 마취제를 집어넣는 꼴이니 말이다. 

진정 자기 인생의 주인이고자 한다면 고독해져야 한다. 내 안에서 성찰과 시인의 감성을 만나고자 한다면 외로워져야 한다. 최소한 밤의 시간만이라도 자기 안을 고독으로 채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박홍순 작가] 인문학·사회학 작가. 고척초등학교·오류중학교·우신고등학교를 나왔고, 지금도 구로구에 살며 집필 활동을 한다. 〈미술관 옆 인문학〉, 〈헌법의 발견〉, 〈생각의 미술관〉, 〈나이든 채로 산다는 것〉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