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취재] 확진자들 나온 지하쪽방으로... "가리봉 확산 막아라" 여성3인방 방역활동

2021-11-08     정세화 기자

"안녕하세요, 백신 맞으셨나요? 백신 안 맞으셨으면 동주민센터에서 7일까지 얀센 접종하고 있으니 주위 분들께도 맞으라고 말씀해주세요."

마치 터널구간 같은 어둡고 좁은 지하로 내려갔다. 희미한 불빛 아래, 성인 한명 지나갈 정도의 비좁은 통로 양쪽엔 쪽방 10여호가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불켜진 쪽방문 노크에 안쪽에서 중국말로 '무슨 일이냐'며 쪽방주인이 빼꼼히 얼굴을 내민다.  

가리봉동주민센터 공무원 이예은주무관(32)과 중국어통역을 맡은 현성화 활동가(63), 가리봉동 통친회장인 정종임 통장(20통,50대)등 3명은 밝은 목소리로 코로나19 백신접종여부 등을  묻고 잘 모르는 이들에게는 장소 등을 안내했다. 

지난 2일(화) 저녁 6시 넘은 시각, 가리봉동 20통 일대 '쪽방'촌에 가리봉특별방역대책 활동팀이 '떴다'.   가리봉동의 급격한 확진세로 전날부터 활동에 들어간 동특별방역대책 활동팀 중 한 팀이다.

비상방역대책의 일환으로 가리봉동에서는  동주민센터직원, 중국인통역방역활동가, 통장등 약70명이 3인1조 방역활동팀을 구성, 1일(월)부터  확진자 발생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 동네 쪽방과 고시원을 중심으로 직접 가가호호 방문에 들어갔다.  중국인 거주민들의 백신 접종여부 조사 및 안내 등을 하기 위함이다.  

지난 2일밤 쪽방촌등을 돌며 가리봉동특별방역활동을 펼친 현성화 활동가(통역), 가리봉동주민센터 이예은 주무관,  정종임 가리봉동 20통 통장. (사진 왼쪽부터) 

 

구로타임즈도  2일(화) 저녁 가리봉동 20통지역 '쪽방촌' 호별 방문에 나선 방역활동팀3인방과  3시간 가량 동행취재 했다. 

가리봉동주민센터앞에서부터 공단오거리를 지나 남부순환로변을 따라 조금 걷어보니 왼쪽 골목길로 올라간다.  어느 '집' 앞에 섰다.  "여기가 가리봉에서 가장 큰 쪽방 건물이에요. 지하부터 시작하시죠.". 정종임 통장의 거침없는 지휘 아래 어두운 지하 통로 계단으로 발을 헛딛을까봐 조심하며 내려갔다,  희미한 전구 불빛아래 좁디좁은 통로를 사이로 두평내외의 쪽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일렬종대로 서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영화 속 수감시설같은 장면이 먼저 들어왔다. 손뻗으면 닿을 낮은 천장에 환기가 안되서인지 퀴퀴한 냄새와 정리안된 선들. 지하에는 양쪽으로 총 10호의 쪽방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정 통장은 이 곳에 대해 "1960년대 구로공단 시절 여공들이 공단업무를 위해 숙식을 해결하던 쪽방촌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으로 지하 1층과 지상 2층까지 약 42가구가 거주하는 대규모 쪽방건물"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이런 쪽방들은 보증금 없이 월세 25만원 수준이어서, 중국인들중에서도 보증금 마련이 어려운 한(漢)족들이 80~90%정도 거주하고 있다"면서 "독립된 화장실조차 없고 공유공간으로 화장실과 세탁실을 사용하는 등 주거환경이 열악하다"고 설명했다.

한 관계자는 이날 "이 지하 쪽방에서  확진자가  3~4명정도 나온적이 있다"고 전해주었는데, 이후 지난 4일(목)에도 지하쪽방 거주 여성 1명이 또 확진판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꽤 넓은 부지에 지하1층부터 지상2층까지 총42개 쪽방이 있지만, 지상은 중앙에 널찍한 마당이 있고 외곽으로 방들이 둘러 있어, 지상쪽보다  지하에 위치한 쪽방들의 환기상태가 우려되는 구조였다.  

쪽방은 성인 한두명 누울 정도의 공간과 두평 남짓한 주방겸 샤워시설이 갖춰져 있는 편. 지하 벽 곳곳에 곰팡이등이 보였다.

 지하 구석 한편으로 공동사용하는 듯한 통돌이 세탁기가 돌아가고, 1층으로 올가가는 계단아래 빈공간으로는 공동으로 사용하는 화장실 2개가 있었다. 

가리봉동에서 통역 및 방역활동을 해오고 있는 현성화 활동가(중국동포)는 "지난 수개월 간 가리봉동의 쪽방을 둘러보니, 대다수의 쪽방에는 화장실조차 분리되지 않은 채 함께 사용하는 공용화장실 등이 있었다"고 전했다. 쪽방의 시설이나 규모가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가옥구조상 가리봉동 쪽방촌등의 화장실은 함께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상당수가 창문조차 없거나 있어도 환기가 되기 어려운  밀폐 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날 밤 방역팀은 약 3시간동안  가리봉동 20통 일대 골목을 누비며 중국인 교포나 한족들이 살고 있다는 쪽방과 원룸의 지하부터 2,3층까지 오르내리며 100집 내외의 방문을 노크했다. 쪽방 거주민들은 저녁시간 갑작스런 방문에 긴장된 표정으로 접종증명서까지 보여주거나 브스터샷 접종에 대한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질문을 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극히 일부는 고성이나 폭언을 하기도 했다.

한 지하쪽방에서는 방역팀원들이 여러 차례 노크를 하자 안에서 발로 걷어차고 나오며 폭언을 퍼부었고, 어떤 중국교포 남성은 '백신 맞으면 몸이 아파 죽는다는데 왜 맞으라 하느냐'고 방역팀원들에게 크게 화를 내기도 했다.     

가리봉동주민센터 이예은 주무관은 "가리봉에 거주하는 분들의 특성상 낮 시간에는 일하시는 분들이 많아 지금처럼 주로 저녁 시간을 이용해 방역 활동을 진행하는데, 이들 대다수가 새벽 인력시장에 나가 아침부터 일하다 보니 저녁 7시만 되어도 주무시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래서  "주무시거나 개인 활동을 하시는 분이, 쉬는 시간 방해했다며 소리를 지르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그럴 때마다 무섭기도 하다"고 밝힌 이 주무관은 하지만 "코로나가 빨리 진정되면 좋겠다는 마음과 주민건강을 지켜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으로 잘 버티고 있다"고 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날 구로타임즈가 방역팀과 동행하며 돌아본 20통 일대 쪽방과 원룸건물들은 상당수가 지하와 지상1,2층의 건물로, 대개 10개에서 40개정도의 쪽방이나 원룸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집들이었다. 건립시점이  50,60년 된 것부터  수십년 된  '건물'들이 많았다. 다른 동네에서는 이미 세입자가 없어 방치되어있는 지하공간 쪽방들이 열악한 주거환경에도 가리봉동에서는 '활황'이었다.  

몇 평 안되는 비좁은 쪽방에는 주로 40대 이상으로 보이는 중장년 남성 1인 가구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쪽방 거주자 중 대다수는 한족이나 중국교포들이 대다수였다. 서너평 정도 되는 곳은 1인가구를 비롯해 부부나 지인등 2인가구도 꽤 볼수 있었다. 쪽방이 아닌 다세대 주택의 경우에는 아이들을 포함한 3~4인의 가족이나 지인들이 살고 있는 공간이었다.   

통역을 해주던 현성화 활동가는 "쪽방의 경우 홀로 중국에서 건너온 한족 위주의 1인 가구가 많이 거주하고 있는데,  대부분 한국에서 돈을 벌어 중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낸다"며 "이들 모두 주거환경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하루 벌어 매일 가족들에게 돈을 보내야 하기에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중국에서 들어오는 교포들 또한 가리봉 쪽방으로 몰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60,70년대 시절 '쪽방'이 아직도 가리봉동에 남아있는 배경 등에 대한 설명도 나왔다. 40년을 가리봉에서 살아왔다는 정 통장은   "(가리봉)쪽방의 경우 예전엔 공단 여성들이 살았다면, 2000년대에는 조선족(중국교포)이 살았고, 생활 여유가 풍족해지면서 조선족이 떠난 자리에 한족들이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들 다수가 근무하는 공사현장, 밥을 먹는 식당, 시장 등에서 감염된 후 환경이 취약한 쪽방 내 공용공간을 함께 이용하다 보니 쉽게 바이러스에 감염되지만, 이들에겐 한 푼이 아쉬운 상황이기에 바이러스에 노출될 위험이 있을지언정 쪽방을 떠날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며  안타까운 상황 등에 대해 설명했다.   

이날  가리봉동주민센터 관계자들은   이날 돌아본 곳보다 주거환경이 더 심각한 '쪽방촌'등은  가리봉동 주민센터를 중심으로 가리봉교회 및 가리봉시장과 인접한 쪽이라고 말했다.  "가리봉 20통 대규모 쪽방에 비해 세대규모는 적지만, 주방공간과 샤워실조차 공용으로 사용하는 주거환경이 더욱 열악한 곳들"이라는 것.  실제 구로타임즈가 3일뒤인 5일(금)오후 돌아본 동센터 주변 주택가 안쪽의 쪽방들은 2일 방역활동팀과 돌아본 쪽방촌 상황보다 햇빛도 잘 들지 않는 음습하고 밀폐된 구조들이 많이 보였다.  

밤바람 맞으며 백신접종 안내 등을 하던 방역활동팀의 활동은 밤9시경 끝났다. 

 이예은 주무관과 정종임 통장은  "최근 수 개월간 가리봉확진자가 구로구 전체 확진자 중 1위를 차지하고 있고, 현 상황을 가장 빠르게 진정시키는 방법은 주민들의 접종과 선제검사이기에  힘들지만 방역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며 주민들도 검사와 접종에 협조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현성화 통역 활동가는   "공무원, 중국 교포주민 활동가, 한국인 주민들이 모두 힘을 합치면 주민들에게 다가가는 영향력도 커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됐다"고 활동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