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없는 '역'들... 서민들 이동위해 '목숨' '고통' 담보해야

안내문 부재· 형식적운영 역 이용 주민들 질타

2021-08-27     정세화 기자
지난 24일(화) 온수역 환승로를 이용하던 하 어르신이 우산과 벽면 핸드레일에 몸을 의지한채 힘겹게 계단을 오르고 있다.

 

"지하철은 '서민의 발'이라고 말하잖아요. 서민의 발이 되어주어야 하는데, 구로역 개찰구로 올라가려면 엘리베이터가 없어 나같이 다리 아픈 노인네들은 난간을 붙잡고 겨우겨우 올라가야 해요. 다리가 얼마나 아프냐고요?. 계단을 오르고 나면 찌릿찌릿해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다리가 후들거려요"

어린이집 가방을 멘 유아, 산달 가까워진 배를 감싸안은 임신부, 갓난아이 태운 유모차를 끄는 엄마와 아빠,  보행 보조기구에 기대 걸음을 옮기는 어르신, 휠체어 탄 장애인, 다리를 다쳐 목발에 의지한 청년.

나이도 성별도 모두 다른 이들을 태우고 오늘도 '서민의 발' 지하철은 수도권 곳곳을 달린다.

남녀노소, 장애인과 비장애인, 어느 누구나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지하철이지만, 승객을 태우고 내리는 구로지역내 지하철역에는 걷는 것이 쉽지 않은 '보행 약자'들의 설움이 가득했다.
 
 ◇'기피대상 1호 역은? 

구로지역 내 지하철역은 모두 9곳.

1974년 개통한 1호선은 △구로역을 시작으로 △구일역 △개봉역 △오류동역 △온수(1·7호선)역에 이어, 2호선 △신도림역(1·2호선) △대림역(2·7호선) △구로디지털단지역, 7호선의 △남구로역과 △천왕역이 있다.

가장 오래전 개통된 1호선의 경우 '한국철도공사'가 운영을 맡고 있으며, 2호선 및 7호선의 경우는 '서울교통공사'가 운영하고있다.

보행 약자들을 위한 역사시설은 각각 운영하고 있었다.

최근 구로타임즈가 구로지역내 역사 9곳의 보행시설등을 살펴봤다. 

취재결과 △개봉역 △오류동역 △신도림역 등의 경우는 승강장별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가 모두 갖춰져 있어 보행 약자들의 불편이 △남구로역과 △구로역에 비해 적은 편이었다. 

 

" 기피하고 싶은  역,  구로역   남구로역"  

남구로역이나 구로역은 개찰구로 빠져나오는 엘리베이터가 단 한 대도 없어 계단이용이 쉽지 않은 많은 보행 약자들에게 '최악의 역'으로 꼽히기도 했다.

남구로역의 깊이는 무려 지하 5층 깊이.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승강장부터 지상 1층 출구에 이르는 계단 수만 해도 무려 212개에 달했다.

이는 구로구청 신관 1층부터 8층까지의 계단 수(약 150여개)보다도 훨씬 많은 수준이었다.

이뿐 아니라 인천부터 수원까지 1호선 환승의 '성지'라고 불리는 구로역 또한 개찰구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단 한 대도 없어, 보조기구를 끌어야 하는 노약자와 장애인, 유모차를 이용하는 보행약자 승객들에겐 되려 '이용이 꺼려지는 역'으로 손꼽히는 곳이 되고 있다.

구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동수 센터장은 "지역을 아는 장애인이라면 제 아무리 급한 볼일이 있어도 엘리베이터가 없어 '장애인 리프트'를 타야만 하는 △구로역과 △남구로역은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역사 내 승강기 의무화' 필요성을 힘주어 강조했다.

이동수 센터장은 "엘리베이터 없이 에스컬레이터만 존재하는 경우 '장애인 리프트'를 타야만 하는데, 장애인 리프트는 고장이 잦고, 타는 중 멈추는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한다"며 "남구로역과 온수, 대림역같이 지하 역사와 지상 간의 경사도가 가파른 경우 리프트를 탑승 했을 때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높아 그야말로 '목숨을 내놓고 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2017년, 신길역(영등포구 소재) 1호선과 5호선 환승구간에서 장애인 한 모씨가 '장애인 리프트'를 이용하기 위해 호출 버튼을 누르려다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져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바 있다.

지난해 사고 발생 구간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됐다.

 

◇ 장애인, 비장애인 모두의 문제

엘리베이터 없는 역사는 장애인들만의 기피대상이 아니다.

비장애인들도 기피하고 싶은 역사들중 한 곳이다.

지난 25일(수) 구로역에서 만난 주부 김은희씨(40대, 구로동)는 "두 아이를 기르며 '유모차'가 있는 날이면 엘리베이터가 없는 구로역과 남구로역은 이용할 엄두도 안 났다"며 "특히 남구로역은 승강장부터 끊임없이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를 반복해서 역을 빠져나가야 하는데, 계단이 나오면 큰 아이는 엄마 옷 귀퉁이를 잡고 걸어 올라가라 말하고, 오른손엔 작은 아이를 안고, 왼손은 유모차를 접어 들고 올라가야 했다"고 힘들었던 경험담을 털어놨다.

김씨는 "구일역 출구(구로1동 방면)의 경우도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돼 있지만 엘리베이터는 없어, 이 또한 유모차를 접고 타거나 아이를 들쳐 맨 채 탑승해야 해 불편하긴 마찬가지"라며 "에스컬레이터에 유모차를 펼친 채 아이를 태우면 상·하행 경사도에 따라 무게 중심이 쏠려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데 어느 엄마가 그 위험을 감수하려 하겠냐"고 반문했다.

 

◇ 시설위치 등 안내부족 지적도 

엘리베이터에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안내가 부족하다'는 지적들도 곳곳에서 제기됐다.

지난 23일(월) 오후 4시 대림역 7호선 승강장.

지나가는 시민들 시선을 붙잡는 광경이 펼쳐졌다.

상행선 에스컬레이터 보수작업으로 인해 90대와 100세 어르신 2명(남)이 마치 동아줄을 잡듯 에스컬레이터 옆 양쪽 계단 난간을 붙잡은 채 계단을 기어 올라가다시피하고 있었다.

90대 어르신은 작은 수레처럼 보이는 보행보조기구까지 끌어올리며 계단을 어렵게 한 칸씩 오르며 밭은기침을 내뱉기도 했다.

지나가던 한 여성이 이 어르신의 보행보조기구를 들어 지상까지 올려주고 어르신을 부축하며 계단을 올라왔다.

두 어르신이 취재중이던 구로타임즈 기자에게 물었다.

어르신들은 "2호선을 환승해야 하는데 거기도 설마 에스컬레이터가 없는 건 아니겠지요? 다리가 아파 더는 걷질 못하겠어요. 에스컬레이터 공사를 하면 엘리베이터가 어디 있다고 안내를 해줘야 하는데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 (통증을) 참고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구로타임즈가 플랫폼 내 상행선 에스컬레이터 점검을 진행 중인 관계자에게 "다리가 불편하신 어르신들에게 '승강장 내 지상 역사로 향하는 엘리베이터가 있음'을 안내하지 않았는지"를 묻자 시설 점검 직원은 "벽면에 (엘리베이터 이용) 안내문이 붙어있다"며 반대편 하행선 에스컬레이터 옆 A4사이즈 크기의 작은 종이에 적힌 안내문을 가리켰다.

안내문에는 크지 않은 글씨로 '2호선으로 갈아타는 유모차 및 휠체어 리프트 이용고객은 가운데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세요'라 적혀있었다.

이 마저도 '하행선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는 승객들에게 가려져 보기 쉽지 않았다.

역사내에 편리하게 이용할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가동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이용객들이 한눈에 알기 쉽도록 '내실있는 안내'가 되지 않아 '불편함을 겪어야 한다는 지적들은 또 다른 역에서도 터져 나왔다.

1호선과 7호선을 잇는 '온수역'. 최근 다리 부상으로 목발을 짚고 이동해야 하는 김재덕씨(58, 부천시)는 1호선 환승구간으로 향하는 많지 않은 계단 칸수만 보고도 한숨부터 나왔다고.

그는 "짧은 계단이지만 목발을 사용해야 하거나 다리가 아픈 사람들에게 계단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며 "만약 단 한 장이라도 눈에 띄게 '1-7호선 환승구간에 계단이 있으니, 보행이 불편한 분들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라'는 안내가 있었다면, 굳이 힘들여 이곳(환승구간 계단)으로 오지 않았을 것이다"고 말했다.

김씨는 "다리가 아프기 전에는 몰랐는데, 다리가 아프니 느껴지는 불편함이 많아졌다"며 "'지하철' 내에 '엘리베이터' 설치와 보행 약자 이동 안내 등은 단순히 보행이 불편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혜택'이 아니라, 그들 생명과 직결되는 '보호받을 권리 실현'임을 느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양한 이용자 편의를 생각하는 '눈높이 알림'으로 시선을 끈 역도 있었다.

개봉역에서는 계단 양 옆에 '50M 앞 에스컬레이터 및 엘리베이터가 위치해 있다'는 표지판을 부착해놓았다.

다리가 아픈 이용객들로부터 '이런 사소한 안내에서 배려가 느껴진다'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 공사, 역사측   "개선 노력"

이번 취재과정에서 나온 지역주민들의 큰 불편사항으로 지적된 '보행약자를 위한 시설' 및 '안내' 부족과 관련해  철도공사와 역사측은 개선 의지를 밝혔다.

지난 25일(수) 한국철도공사 소속 구로역 관계자는 "교통약자들의 민원이 오래 전부터 발생해, 주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면서 "보행약자 불편 해소를 위해 2019년 환승 육교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면서, 1번 승강장으로 출구를 만들 수 있도록 설치하려던 과정에서 '노후역사 신축계획'으로 지정되어 '엘리베이터 공사가 보류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로역 관계자는 이어 "노후역사 신축계획에 따라 개찰구 및 '맞이방'이 있는 역사를 선상 역사로 증축하며 에스컬레이터 내지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도록 설계하고 있다"며 "9월 말 설계를 마친 후 12월 신축 시공에 들어가면, 2024년경 준공돼 주민 모두 불편함 없이 구로역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구로역 동일 승강장이 있는 4번(인천방면)과 5번(광명셔틀영등포방면)내 4칸 정도의 계단이 있어 이용객 보행 불편이 지속되고 있다는 지적과 관련해, 구로역 측은 "아쉽게도 선상 역사를 신축하는 것이기에 승강장 개보수는 진행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7호선 남구로역 등이 속한 '서울교통공사' 측도 '개선' 의지를 내비쳤다.

서울교통공사 측은 "2019년과 2021년 서울교통공사 측에 '남구로역 엘리베이터 설치'관련 민원이 접수되어 있고 역무원 등에게 이용객들이 수시로 '엘리베이터 부재'에 대한 불편함을 전하고 있어, 공사 측도 주민불편사항 및 개선 필요성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교통공사측은 이어 "(서울교통)공사는 엘리베이터 부 존재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1역 1동선 확보 사업'을 진행 중에 있으며, 남구로역 또한 '1역 1동선 확보대상 18개역' 중 하나로, 재정 확보 시 2024년까지 1번 출구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주민 불편을 개선코자 빠른 시일 내 공사를 착공하고 싶으나, 현재 교통공사의 재정이 어려워 서울시에 '1역 1동선 확보'를 위해 추가 재정을 건의하고 있다"며 "남구로역의 경우 지난해 설계를 완료해 공사착수를 앞둔 상황에서 재정 확보가 절실하며, 빠른 시일 내 재정을 확보해 개선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엘리베이터 및 에스컬레이터에 대한 '안내 미흡'으로 인한 이용 불편발생과 관련해 한국철도공사와 서울교통공사 측은 "안내 미흡으로 인해 이용객들이 피해를 겪어 죄송할 따름"이라며 "개선에 신경쓰겠다"는 입장을 전하기도 했다.

단돈 1,250원(성인 기본운임 기준)의 저렴한 운임료로 지역 곳곳을 누비며 서민의 살아있는 발이 되어주는 '지하철'.

보행 약자 구분 없이 지하철을 이용하는 다양한 이용객 모두 조금 더 편안할 수 있도록 공사와 역사관계자들의 세심한 배려와 운영이 요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