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의 소리] "누구를 위한 희망급식바우처인가"

편의점 일부 품목으로만 구입 제한 비판 잇따라 청소년들 "점심 한끼 선택도 쉽지 않아요" 학부모들 "건강 우려 … 안심식당 등 필요"

2021-07-30     정세화 기자

 

"코로나로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나온 것이 '희망급식바우처'이죠, 바우처제도 취지는 좋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두 달간 바우처를 사용해보니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어려움 없이 맛있는 점심 한 끼를 먹을 수 있다는 '희망(希望)'을 담지 못한 듯해요."

주부 박미경씨(40대 후반, 오류2동)는 "밥 한 끼 건강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아이들의 희망과 소망을 담은 (희망급식)바우처는 내 아이들에게 건강을 해칠 수 있는 편의점 음식을 먹으라는 거였다"고 실망을 표명한뒤 "학부모와 아이들의 의견을 담지 못한 탁상행정식 바우처였다"고 비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두달여전인 지난 5월 20일 코로나19로 학교를 등교하지 않고 비대면수업을 해야하는 서울시내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청소년 결식 방지를 위해 '제로페이'형 희망급식바우처를 1인당 10만원씩 지급했다. 

하지만 바우처를 이용한 학생들이나 이를 지켜보던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현실성 떨어지는 '실용적이지 못한 정책'이라는 비판적인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가장 많은 지적이 나오는 것 중 하나가 급식 바우처를 이용할 수 있는 곳이 편의점으로만 제한되고 있다는 점.

편의점도 6개브랜드(GS25, CU, 세븐일레븐, 미니스톱, 씨스페이스, 이마트24)만 이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편의점을 이용한다해도 구입 품목 역시 제한돼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 21일(수) 구로타임즈가 지역에서 만난 초중고교생 10명 중 희망급식바우처를 직접 사용한 경험이 있다고 말한 학생은 5명 정도.

모두 중고교생들이었다.

'희망급식바우처'를 이용한 경험이 있다고 밝힌 학생 대다수는 '편의점 제품 선택의 이용 한계'를 느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경인고 1학년에 재학 중이라는 김 모양(17, 개봉1동)은 지급받은 '희망급식바우처'에 대해 "구매할 수 있는 음식이 한정적이고, 특히 식사를 대체할 김밥과 도시락, 샌드위치 종류는 바우처가 시작됐던 5월과 6월초까지도 학교 인근이나 아파트 인근에서는 품절된 경우가 다반사였다"고 말했다.

또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같은 도시락이라해도 어떤 제품은 바우처 사용이 가능하고, 어떤 제품은 바우처 적용품목이 아니라고 해서 계산대 앞에서 물건을 내려놓은 적이 많았다"고 밥 한끼 먹기 힘든 경험담들을 털어놓았다. 

김 모양은 이어 "(바우처가)식사대용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제공된 걸로 알고 있는데, 도시락을 사기엔 나트륨이 많은 제품은 구매할 수 없게 되어있고 연유샌드위치 같이 야채가 없는 제품 등 구매조건이 까다롭고 어려워 친구들 단톡방(단체 대화 어플)에서 구매 가능한 제품들 사진을 공유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고 전했다.

영림중 3학년에 재학 중인 김 모군(16,구로5동)과 장 모군(16,구로4동)은 "희망급식바우처를 받아 사용하고 있는데 편의점에서만 사용해야한다는 점이 꽤 불편했다"며 "김밥집 같은 곳에서도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다들 편의점 음식을 좋아하긴 하지만 편의점마다 종류가 다양하지 못해서 그냥 삼각김밥 같은 간단한 식품들을 간식용 정도로 구매해서 먹고 있다"고 말했다.

급식바우처 운영에 대한 학부모들의 시선도 곱지 않다.

중학교 1학년 자녀를 둔 박미경씨(40대 후반, 오류2동) 또한 "중학교 아이에게 바우처로 먹고 싶은 음식을 사오라 했지만, 편의점에 간 아이는 빈손으로 풀이 죽어 돌아왔었다"고 말했다. "아이가 원했던 초코우유는 바우처 대상품목이 아니라고 (희망급식바우처) 결제를 거부당하는 바람에 그 뒤론 아이가 희망급식바우처를 사용하는 것을 꺼리는 모습을 보게 됐다"고.

박 씨는 "결국 아이가 바우처를 사용하지 않으려 하고, 부부가 모두 맞벌이를 하다 보니 오후내내 아이의 밥걱정이 될 수밖에 없어 물건을 구매해볼까 하고 직접 편의점에 갔는데 성인인 부모들조차 바우처 구매가 까다롭게 느껴졌다"며 "점원들이 모두 바코드를 찍어봐야 (바우처)해당 제품인지 알 수 있다고 말해 결국 '희망급식바우처' 대상항목이라 명시된 '햇반(즉석밥)'만 무더기로 사재기하는 상황이 벌어져 이게 내 자식을 위해 옳은 구매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3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최은지씨(38, 구로5동)도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나타냈다.

최씨는 희망급식바우처를 제공하면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편의점 음식을 교육청이 나서서 권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며 "경악했다"고 심정을 표현했다.

최씨는 " 항목에 있는 음식들 대부분은 도시락, 김밥, 삼각김밥, 샌드위치 등인데 초등 저학년이 먹기에 도시락의 맛은 너무나 자극적이고 김밥과 삼각김밥에 사용되는 쌀은 쉽게 부스러질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은 음식들"이라 걱정이 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최씨는 "코로나19로 인해 매일같이 소상공인이 힘들다는 이야기가 뉴스에 나오고, 교육청 또한 아이들 결식이 걱정돼 이런 제도를 만든 것이라면 편의점이 아닌 소상공인과의 상생책을 만드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며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제로페이 형식이 가능하니 애초에 음식점을 운영 중인 지역 업체에 '안심음식점' 제도를 도입해 아이들에게 안정성이 인정된 맛있는 한 끼를 먹을 수 있도록 유도했다면 아이의 한 끼를 걱정해야하는 학부모도, 지역에서 어려운 소상공인들도 모두가 만족할 방안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는 것.

코로나19 기간 동안 학생들의 대면등교가 제한되더라도, 내 자녀, 내 학생이 밥 한 끼 굶지 않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으로 만들어진 '희망급식바우처'제도. 선택지 없는 제한된 장소와 품목 앞에 오히려 '밥'을 굶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어, 수요자 입장에서의 긴급한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