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로 나온 '엄마 창업가'

2021-05-14     정세화 기자

"아이를 위해 창업했어요. 아이를 키우다보면 엄마도 성장하거든요. 아이와 엄마 모두가 성장할 수 있도록, 조금 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도록 맨 땅에 헤딩하듯 창업을 시작하고, 공간을 만들고 이 공간에서 아이와 함께 성장해나가고 있어요."
집안일 만 하던 엄마들이 '창업'이라는 깃발을 들어올리며, 세상 밖으로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쿠키점에서부터 음식점, 카페, 공예 공방, 메이커스페이스 공간까지  가정에서 마을로 나온 '엄마표 창업자' 들의 활약이 눈길을 끌며 하나 둘 돋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코로나 19로 젊은층의 창업도 위축되고 있는 요즘,  동네에서 조금은 특별한 공간들을 '씩씩하게' 운영 하고 있는  엄마 창업가 두 명을 만나봤다.

 

1. 음식점 中国小吃部 운영 중인 왕시민씨

음식점 中国小吃部 운영 중인 왕시민씨

 

"한국 너무 좋아요 아이 위해 창업"

구로구 내 작은 중국이라 불리는 '가리봉동'. 이 동네의 메인골목인 우마길로 접어들면 각종 중국어가 적힌 상점들 속에 손님들이 북적이는 작은 가게 '中国小吃部'(우마길 9)가 보인다.

가게 앞에서부터 고소한 꽈배기 냄새와 중국 특유의 향신료 냄새가 어우러진 이 곳은 한국 거주 10년차 '왕시민'(49,가리봉동)씨가 운영하고 있는 '중국식 음식점'이다.

15년 전 중국 길림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왕시민씨는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왔다가 결혼을 해 시민권을 얻었고, 아이가 태어나 아이 교육 때문에 잠시 6년간 중국으로 돌아갔다"고.

"하지만 중국생활을 하면서 한국이 너무 좋아서 다시 아이를 데리고 2017년 한국으로 들어오게 됐다"며 한국살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그녀가 첫 발을 내딛은 2006년 한국은 그녀에게 그야말로 신세계였다고.

왕시민씨는 "중국에 비해 한국은 사람들도 친절하고, 거리 환경도 좋고 음식도 맛있고 너무나 좋았다"고 말한다. 

왕씨는 자라나는 아이를 보며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중국요리'로 '아이를 위해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2017년 처음 한국에서 가게를 차릴 때는 어려웠다"고 창업시점의 애로를 털어놓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라에서 중국요리 음식점을 열고, 한국어도 잘 모르는 채 운영한다는 건 정말 힘들었어요".

하지만 주위 중국인 교포들과 남구로초등학교, 구로건강가정다문화지원센터 등 마을 구성원들의 도움을 받고 이제는 어엿한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왕씨는 "처음에 가게를 열었을 때는 한국 사람들이 전혀 오지 않았는데, 이제는 한국사람들도 (가게에) 와서 '꿔바로우'를 주문하고 '好吃(맛있어요!)'라고 말해줄 때 가장 기쁘다"며 수줍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제는 아이가 한국음식이 더 맛있고 좋다고 해서 약간 고민도 있지만, 처음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팔고, 그걸로 돈을 벌어 아이를 키우다보니 한국에서 말하는 '창업'이 되었다"며 "중국인이나 한국인 엄마들 모두 좋아하고 잘하는 일에 도전하길 바란다"고 창업을 꿈꾸는 주부들을 위한 응원메시지를 남겼다. 

 

2. 디지털안전교육연구소 운영 중인 반예모씨

디지털안전교육연구소 운영 중인 반예모씨

"엄마와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곳"

"젊은 세대도 창업을 많이 하지만 정말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는 '창업'을 강력 추천하고 싶어요. 엄마들이 마을로 나와 공간을 만들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로 가치를 창출하고, 그 공간에서 아이들과 함께 성장해나갈 수 있는 게 '엄마 창업'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아요."

엄마표 창업을 한 주민들을 찾던 도중 특이한 엄마 창업가를 만났다.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자 출신인 구로구 주민 '반예모'(예명, 46)씨. 

그녀는 개봉1동 고척로변에 메이커스페이스 공간(고척로98 성민빌딩 3층)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1월 '디지털안전교육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창업한 곳이다.

"디지털안전교육을 진행하고, 그와 관련 된 독서토론을 하고 아이들이 자유롭게 무엇인가를 만들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하는 '메이커스페이스'로 이용하고 있어요. 흔히 코딩이라 불리는 프로그램 개발, 3D프린터 수업도 원한다면 진행하고 있지요."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들 학교에서 '코딩'수업이 필수인 걸 보고 너무도 놀랐다는 반예모씨는 디지털화된 세상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이 개인정보 노출 등이 쉽게 이뤄지는 디지털로부터 안전할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디지털안전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창업 계기를 설명했다.

'온라인 세상 속에서 나를 보호하는 방법'과 특히 범죄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 SNS에서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을 구분하고 어디까지의 정보를 제공하는지와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그녀의 창업도전도 '꽃길'만은 아니었다.

"남편의 반대도 당연히 있었고, 누군가는 '디지털안전교육'을 왜 '돈을 주고 받냐'는 인식이 강해 속상한 순간도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이 공간에서 자녀들과 내가 함께 성장하고 있고, 처음 지인으로만 구성됐던 수강자들이 이 교육은 수년간 들어야 할 교육이라며 인정해주고 돈을 지불하는 것을 보며 가치를 인정받는 것 같아 기쁘다"며 웃어 보였다.

"1인 기업과 개인 창업이 중요시되는 시대에 엄마들이 먼저 마을로 나와 창업을 하는 것은 아이들에게도 '아 이렇게 내가 만든 것을 가치 있게 판매할 수 있구나'라는 좋은 교육도 될 뿐아니라, 어머니들에게도 '집'과 '놀이공간'을 분리할 수 있는 좋은 곳이 됩니다."

반예모씨는 "아이가 크려면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 듯, 엄마들이  창업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표현하고 그런 마을 속에서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많은 엄마들이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