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중앙유통단지의 '시름'

늘어나는 '공실'들 … "판매 역대 최하" "아파트형 공장 등으로 이전, 업체 분산" "G밸리와 비교 지자체 관심 부족" 지적도

2021-03-12     정세화 기자
지난 9일(화) 낮 12시경. 따뜻한 봄 날씨와 대조되듯 구로중앙유통단지 내 골목은 적막이 맴돌고 있다.

 

구로중앙유통단지의  요즘

"예전 이 곳은 말 그대로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곳'이었어요. 구로가 예전엔 공장 지대의 상징이었잖아요. 이 곳 또한 그 명성에 맞게 기계 공구뿐 아니라 전자기기 부품, 제조 물품 없는 게 없었죠. 지금이요? 지금은 좋은 시절 끝났죠. 오랜 시간 있던 사람도 떠나는 상황이니... 둘러보시면 드문드문 빈 가게들이 많아요."

3월의 봄 햇살이 따사롭게 쏟아지던 경인로 앞 구로중앙유통단지(구로2동 소재). 하지만 중앙유통단지 건물 안쪽은 봄 햇살과 달리 유통 단지 내 건물 사이로 차가운 적막이 맴돌았다. 

담배를 물며 구로중앙유통상가의 옛 시절을 회상하던 볼트 제조업자 김영철(50대)씨는 최근 상가 내 전반적인 분위기에 대해 "경기 불황과 인근 지역 산업화, 코로나19로 인해 유통 상가는 완전히 활기를 잃었다"고 전했다. 

김 씨는 "2000년대 초반에, 지금의 디지털단지인 구로3동쪽에 아파트 공장들이 들어선 후 입점사들이 조금씩 이동하기 시작했다"면서 "지난 10년 간 예전엔 아파트공장으로 불리던 곳이 지금은 지식산업센터라는 명칭으로 현대화 되며 이곳의 젊은 층들은 완전히 빠져나가 버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구로중앙유통단지 '탈출 현상'의 가장 큰 원인으로 '아파트형공장, 지식산업센터의 확장'으로 꼽았다.

이에따라 젊은 판매자들이 줄어들고 온라인 쇼핑마저 활성화되며 자연스레 기존의 전자 및 공구 도매를 위해 중앙유통단지를 방문하는 손님들의 발길 또한 줄어들었다는 것.

생활의 무게가 느껴지는 한숨은 김 씨만의 것은 아니었다. 유통단지 내 자동차 부품인 베어링을 판매하는 이모 씨(62, 구로4동) 또한 "구로 유통단지는 더 이상 찾는 이는 줄고, 파는 이들도 이곳을 떠나는 실정"이라고 주장했다.

2002년경 편리한 교통과 값싼 임대료에 매력을 느껴 유통단지에 입성했다는 이 씨는 "2010년대 초반까지 만해도 이 곳이 서울뿐 아니라 전국적 규모로 봤을 때도 가장 큰 유통단지였다"며 "유통단지와 함께 구로공구상가, 공구상가일번지 등 삼각형 구조로 기계 부품부터 전구, 컴퓨터 부속품까지 제조업 판매의 핵심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이모 씨는 "여기(구로유통단지)에서 20년에 가까운 시간을 견뎠지만, 최근 몇 년간 매년 판매 실적이 최하점을 찍고 있다"며 "최근 어려워진 경제 사정에 직원에게도 퇴사를 통보했다"고 털어놓았다.

코로나19의 영향이 컸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코로나19의 영향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사실 유통단지, 기계공구상가 등은 코로나19와는 큰 타격을 받지 않는 공구 제조업자가 대부분"이라며 "하지만 아파트 공장이라는 곳으로 다들 빠져나가고 업체들의 분산으로 중앙유통단지의 실용성이 떨어지다 보니 수년간 업체도, 손님도 빠져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앙유통상가는 지난 1996년 12월 문을 열었다. IMF가 터지기 전 해에 오픈해 올해로 25년을 맞는다. 건평 308,702㎡에 6개 단지, 32개 동으로 약 4,000여개 점포가 입주돼 있는 초대형 유통단지이다.

상가는 동별로 4개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층은 공구·기계부품·용접기·콘덴서·모터·펌프·자동차 부품업체 등이 모여 있고, 2층부터 4층에는 통신기기 및 IT·전자·반도체 사무실 등이 집약되어 있다.
 
 ◇ 점증하는 공실들 왜 = 4000여개 점이 입점해있는 초대형 유통단지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9일(화) 구로타임즈가 방문한 상가 내 각동 입점 안내판에서 비어있는 공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1개동 1라인에 배치된 점포수는 평균 120세대.

입점간판을 통해 볼 때 이 중 가장 공실률이 적은 곳은 정문과 거리가 가장 가까운 가동 1열이었으며, 공실 수는 2곳이었다.

하지만 정문과의 입지가 멀어질수록 공실수로 보이는 빈 곳들이 많이 보였다.

바동 5열의 경우는 상호가 보이지 않는 점포가 가장 많이 눈에 띄었는데, 전체 121세대 중 15실의 점포명이 안내판에는 없었다.

안내판에 상호명이 없는 점포들을 직접 가보니 옛간 실제 문이 잠겨있거나 셔터문이 내려져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구로중앙유통단지 관리사무소 측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이전인 2019년과 지난 해를 비교했을 때 한 해동안 공실률이 크게 발생하지는 않았다"며 "오히려 구로중앙유통단지가 한창 번영했던 2000년대 초에 비해 지난 20년간은 공실이 조금씩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며 "인근 아파트형 공장이나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유통단지 내 공실 증가 이유로 상인들은 '월세 상승'과 '지자체의 관심 및 홍보 부족'을 꼬집었다 

현재 중앙유통상가에서 컴퓨터 부품 수리 및 판매업을 하고 있는 김준영(30대 후반) 씨는 최근 경기도 등 지방으로 사무실 이전을 고민하고 있다며 구로중앙유통단지의 '공실' 증가는 당연한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김준영씨는 "이 곳에는 기계 공구 제조업뿐 아니라 다양한 업종에서 도매업을 하는 이들도 많다"면서 "이곳에서 사업을 시작하려 했을 때는 대표 전자상가인 용산 전자상가나, 신도림 테크노마트에 비해 조금이나마 월세가 저렴해서 들어왔는데, 이 마저도 옛 이야기가 되어버렸다"며 "코로나19로 인해 도매업은 대부분 온라인 판매로 전환되다 보니 더 이상 비싼 월세를 부담하며 이곳에 있을 이유가 사라져 다들 조금 더 저렴한 월세를 찾아 지방으로 향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 씨는 "불경기가 계속되는 요즘, 조금이나마 유통상가의 불경기를 해결할 수 있도록 구청이 나서 유통상가와 공구 상가 등의 홍보를 통해 불경기에 대한 대안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그는 "구로디지털단지의 경우 G밸리라는 상품화가 될 정도로 지자체가 나서 홍보도 하는데, 한 때 명성이 가득했던 구로 공구상가, 구로중앙유통상가, 고척상가 등은 지자체측(구로구청)의 이미지 메이킹이 전혀 없는 것 같다"며 "지역 내외의 많은 사람들이 구로를 들었을 때 구로디지털단지 뿐 아니라 구로 유통상가, 공구상가도 떠올릴 수 있도록 지자체가 나서 IT뿐 아니라 제조업, 도매업에 대한 이미지 메이킹 및 홍보가 이뤄졌으면 좋겠다"며 지자체의 적극적인 관심과 홍보를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