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낭만과 추억의 음악 LP숍, 라운드 뮤직

고척산업용품 상가의 '재 발견'

2020-11-13     정세화 기자

 

 

 

"추억 속 그리운 음악을 듣고 싶다면 언제든 들려주세요. 같이 좋은 노래 들으며 이야기 나눠요"

따뜻한 노을과 함께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절정에 달한 11월의 오후 4시, 마음 속 그리운 음악을 찾아 고척산업용품 상가(고척1동 소재)로 향했다.

땀방울 흐르는 생생한 삶의 현장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탕탕' 고철 두드리는 기계 소리가 들려오는 이 곳에는 기계 소음마저 낭만으로 바꿔버리는 작은 'LP 숍' '라운드 뮤직(중앙로 3길 50 가동 248호)'이 있다.
 
유명세 탄 '보물창고' 

고척산업용품 상가 가동 2층에 자리한 '라운드 뮤직'은 어릴 적 나무 사이에 끼워진 보물찾기 종이 마냥 LP 판매점인지 조차 모르게 꼭꼭 숨어있었다. 

좁은 통로를 지나 철문으로 된 가게 문을 살짝 열고 들어서니, 가을 풍경과 색깔 옷을 맞춘 듯, 노란 라벨의 쳇 베이커 음악이 5평 남짓한 작은 가게안을 꽉 메우고 있었다. 

가게안에는 클래식부터 재즈, 팝 등 다양한 장르의 수십년 전 음반부터 김광석 음악, 현대가요까지 3000장 이상의 LP로 꽉 채워져있었다.

이 곳은 소위 음악광, LP 마니아라 불리는 이들에게는 이미 유명세를 탄 보물창고 같은 곳이다.

LP숍 주인장 김혜령(49)대표는 작년 3월, 고척 산업용품 상가에 LP 숍의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조금 특이한 모양새를 갖춘, 가게 안 레코드플레이어는 김 대표의 보물 1호이다.

그녀가 고척 산업용품 상가에서 새 출발을 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가게에서 가장 중요한 레코드플레이어는 고척 상가 내 '진선 기계' 사장님의 작품이에요"

김 대표의 설명이 이어졌다.

"약 20년간 음반 판매 업무를 하며, 작년 초 독립을 생각하던 중 진선(기계) 사장님께서 고척동을 소개해주셨어요.

LP 플레이어를 만드실 정도로 워낙 음악에 일가견이 있으신 분이에요, 당시 새로운 가게를 차리려했는데 서울시내 임대료가 워낙 비싸 고민하고 있던 중, 가게 단골이던 진선 사장님께서 추천해 주셨어요, 창문 안으로 따뜻하게 들어오는 햇볕에 반해 들어오게 됐지요"
 
상가내 음악인 사장님들도 눈길 

새로 둥지를 튼 고척산업용품 상가는 겉보기와 달리 음악과 낭만이 흐르는 곳이었다고.

"1층엔 레코드플레이어를 만드신 진선기계 사장님이, 맞은 편엔 색소폰을 연주하시는 다른 공구상가 사장님, 옆 가게엔 트로트 가수를 하셨던 사장님도 계시죠. 음악과 낭만이 있는 고척 상가에요. 게다가 문을 열어두면 따뜻한 햇볕까지 드니 음악과 분위기 모든 게 완벽하죠".

그녀의 말처럼 정말 가게 문을 열자 따뜻한 햇볕과 노란 은행나무가 어우러져 가을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었다.

LP는 CD와 같은 레코드 기록 방식의 하나로 바이닐(Vinyl)을 이용한 음악 저장 장치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손의 유분, 축음기 바늘, 먼지, 건조함, 습도 등 다양한 외부환경에 따라 LP가 손상되고 음원 또한 손상될 수 있다"며 플레이어 위 LP 판을 조심스레 얹으며 먼지를 닦아냈다. 

 

김 대표는 20년 간 음반 판매업에 종사했었다.

젊은 이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고, 많은 이들에게는 잊혀져가던 LP로 숍을 열게 된 이유에 대해 그녀는 2000년대 후반 MP3와 같은 음원시장의 강세 속에 음반시장이 하락하면서 "좋아하는 음반과 고객을 함께 잡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보니 정답은 'LP 숍'이었다"고 말했다.

최근 유행하는 레트로로 LP 수요가 CD시장 수요를 넘어서고, 온라인 판매가 확대되며, LP마니아가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요즘 분위기를 전해주었다.

아쉽다면 자금조달이 어려워 더 많은 LP를 모으지 못하는 점이라고. 

하지만 "5평 남짓한 이 공간에 앉아 함께 음악을 듣고 이야기하는 소소함이 가장 큰 행복이기에, 계속 이 작은 가게를 찾아주시는 단골 손님들에게 원하는 음반을 구해드리는 행복감이 있기에 계속 가게를 운영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LP 알리기 행보는 구로 지역을 향해 펼쳐지고 있다.

지난 10월 23일(금) 구로문화재단의 'LP 감상클래스'를 통해 주민들과 LP의 역사와 추천 음악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고, 지난 11월 3일(화)에는 구로문화재단 종사자들과 청년, 음악가, 음반 종사자, 요가 강사, 카페 주인 등 지역내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모여 LP 감상 모임을 진행하기도 했다고.

"문화 나누는 지역공간으로"

김 대표는 "구로라고 하면 가장 먼저 구로공단 같은 이미지들을 떠올리지만, 시대가 바뀌고 고척 상가 내에도 다양한 음악 애호가들이 있듯, 구로 또한 다양한 낭만적인 모습들이 많다"며 "LP숍을 단순히 음반을 판매하는 곳이 아닌 지역과 함께 문화를 나누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최근 20-30대 청년들에게는 '뉴트로 붐'이 일어났다.

오래된 문화가 낡고 지겨운 것이 아닌,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New) 레트로(Retro)' 즉, 뉴트로(Newtro)'라는 새로운 장르로 불리고 있는 것이다.

지역 내 '뉴트로'가 살아 숨 쉬는 '라운드 뮤직'. 거창한 유명 재즈 바가 아닌, 소소한 행복이 깃든 고척 산업용품 상가 내 라운드뮤직에 들러 김혜령 씨가 추천하는 뉴트로 '김추자와 검은나비'의 '내 마음은 곱다오'를 들으며 유쾌한 음악 이야기와 추억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