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_골목의 꽃1] '운명' 같은 만남, 고척슈퍼(고척2동)

"가게한후 간절했던 첫 아이 임신"

2020-09-28     정세화 인턴기자

 

땅거미 지는 저녁, 오래된 동네슈퍼를 찾아 헤매며 세곡초등학교 옆 좁은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  오래된 간판 불빛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고척근린공원과 세곡초등학교 사이 고척 2동 주택가에 자리한 자그마한 '고척 슈퍼'였다.  

60대 부부가 37년 동안 운영해오고 있는 '동네 상점'이다. 마을 주민들에게는 오가며 들려 정담을 나누는 사랑방이자 쉼터이기도 한 곳이다.

"37년간 여기서 슈퍼를 지키며 고척동이 변하는 모습을 봤지. 집들도 다 바뀌었어. 옛날에는 여기 다, 시골집 알지?, 시골집처럼 단층집들밖에 없었어. 2층집이 제일 높은 집이었고. 지금이야 전부 다 빌라들로 바뀌었지 뭐."

고척동의 옛이야기들을 풀어놓던 고척슈퍼 주인 이례신(60대)부부는 이어 김포공항으로 들고나가는 '비행기 길'이 된 고척동 비행기 소음과 관련한 일화도 들려주었다. 

"고척동이 살기도 좋고 다 좋아. 근데 옛날부터 동네 사람들이 여기서 모이면 소음에 대해 불만을 나눴지. 비행기 항로가 가게 위로 다니니까. 지금은 인천공항이 생겨서 국제선이 다른 길로 가니 조금 덜해졌지만, 인천(공항)이 생기기 전에는 국제선도 김포(공항)로 다녔어. 그땐 아주 말 못 할 정도로 시끄러웠지. 지금도 시끄럽고. 어느 날은 손님이랑 TV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데 중요한 장면에서 비행기가 지나간 거야. 손님이랑 어찌나 화를 냈는지 원…" 

 

1983년경부터 동네상점을 운영해오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일까. 이 질문에 부부는 수줍은 웃음을 보이며 "동네 구멍가게이지만 이곳을 운영하게 된 것 자체가 큰 행운"이라는 말로 답했다.  두 부부에게 고척슈퍼  '행복을 주는 상점'이었다는 말이다. 

가게역사가 모두 '자녀'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부는 "결혼 후 온갖 노력에도 애가 안 들어서서 적적함을 달래고자 기존부터 있던 가게를 인수하게 됐어요. 근데 가게를 인수하자마자 기적적으로 첫 아이가 들어선 거예요."

고척슈퍼와의 운명적인 만남이라고나 할까. 이후 가게 일과 자녀 육아를 함께 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가게는 또 자녀가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가게를 운영하며 자녀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까지 무사히 마친 뒤 결혼까지 시킨 게 모두 이 '구멍가게' 덕분이에요.  남들은 '구멍가게'라고 하지만, 이 가게 덕분에 아이들도 키웠으니 가장 보람찬 순간이고 행복한 순간이죠. 그래서 우리도 나이가 들어, 가게를 운영하는 게 힘들기는 하지만 계속 가게를 지키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작은 구멍가게지만, 이 가게는 가족을 만들어준 운명 같은 곳이고, 40년의 세월을 견디게 해준 힘이죠."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