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423]팔순어르신 눈물을 웃음꽃으로

고척1동 조순이통장등 '마을천사'들 이야기

2015-09-26     김경숙 기자
▲  ▲추영호 할머니의 수술비마련 등을 위해 힘을 모은 고척1동 멤버들. 왼쪽부터 고척1동주민센터 이소희 사회복지사, 구로성심병원 강정구부장, 전천석 고척1동장, 김완동 고척1동주민자치위원장. 조순이 고척1동 제4통장

수백만 원의 수술비를 댈 엄두가 안나 밤마다 저려드는 양 다리를 끌어안고 불면 속에 고통의 눈물을 흘려오던 80대 어르신. 그 얼굴에 환한 웃음이 돌아왔다. 마을주민들의 노력으로 괴사, 마비, 통증까지 온 하지정맥류 수술을 받고 건강을 회복했기 때문이다.

고척쇼핑 (고척1동) 길목에 자리한 한평 남짓 움막안에 앉아 오이, 호박 등 야채를  팔며 생활하는 추영호 할머니. 올해 그의 나이 팔순이다,  현재 고척1동 지하단칸방에서 혼자 살고 있다. 1남 1녀의 자녀가 있지만, 나름의 팍팍한 사연들이 있어, 홀로 사는 연로한 어머니를 모실 수도 도와드릴수도 없는 형편이다.

정맥판막의 기능 이상으로 역류한 피가 다리 피부 밑 혈관을 확장시켜 피부 밖으로 혈관이 울퉁불퉁 튀어나오게 한다는 하지정맥류는 첫 아이를 임신하던 20대 때 나타난 것이지만, 미관상 안 좋았을 뿐 그동안 특별히 아픈지도 모르고 살아왔다. 그런데 수년전부터  양 다리로 "죽을 정도"의 고통이 몰려오기 시작한 것.

"밤에 자려면 다리가 막대기처럼 마비 되거나, 저리고 아프니 통 잘 수도 없고, 소변을 보려 해도 기어갈 수도 없었어. 오죽하면 바가지에다 소변을 보고 그랬겠어. 세상에, 수술 받고 나니 무엇보다 다리에 쥐가 안 나서 이제 살겠어. 내 인생을 다시 살렸다니까."

구로성심병원에서 수술 받은 뒤 일주일 만인 지난 9월 17일(목) 퇴원해 다시 야채노점상으로 돌아 온 추영호 할머니는 활짝 웃으며  "그동안 신경을 써주신 동네분들에게 너무 감사드린다"고 고마운 마음을 표했다.

▲ ▲수술 후 지난 17일 퇴원해 다시 노점상으로 나선 추영호 어르신.

고마운 '동네분'들 중에 삶을 포기하고 싶던 할머니에게 건강으로 새인생을 선사한 주인공이 있다. 바로 고척1동의 조순이(63) 통장이다.

현재 고척1동 자원봉사캠프장이기도 한 조 통장은 동네에서 30여 년간 살며 다양한 단체활동 등을 해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마당발이다.  그 위력을 이번에 마을 '복지'분야에서 제대로 발휘했다.

여름무더위가 한창이던 지난 8월초, '몸이 안좋은 어르신이 있는데 봤느냐'는 동네주민들의 제보로 찾아가 만나 본 추영호 할머니의 상태는 입을 다물지 못할정도의 '위기' 상황이었다.

할머니 바지 속으로 드러난 양다리는 물론 허벅지에다 배까지 올라간 심각한 하지정맥류증상에다 자살충동을 호소하는 할머니에게 일단 병원에 가서 진단과 수술 받을 것을 여러차례에 걸쳐 권한 뒤, 이 때부터 수백만 원에 달하는 병원비 마련을 위한 조통장의 동분서주가 시작됐다.

평소 이런 문제가 있을 때 수술비를 지원해주겠다던 지역 내 모 복지단체에 사정을 얘기했지만 하지정맥류는 '미관상'의 문제라며 일언지하에 거절 당했다. 상황의 심각성을 설명했지만 소용없는 일.

결국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고척1동주민자치위원회 김완동 위원장을 찾아가 고민을 털어놓았다. "위원장님께 전화로 상황을 말했더니 흔쾌히 '내가라도 해줄테니 알아보자'고 해주셔서 용기를 내 다시 뛰기 시작했어요. 김 위원장님의 그 때 그 말씀이 없었다면 어려웠을겁니다".

그 힘으로 다시 병원비 해결을 위해 뛰었고, 구청 복지정책과에 연락을 해 우여곡절 끝에 긴급구호지원금을 일부 받을 수 있게 됐다고 조 통장은 말했다.

이웃을 돕기위한 이같은 손길을 맞잡아 준 곳이 또 한 곳이 있었다. 바로 고척1동에 위치한 종합병원 구로성심병원. 평소 지역에 대한 이해가 깊은 강정구 부장의 관심과 하지정맥류와 관련한 허정민 부원장(일반외과)의 의료전문가로서의 설득 등이 더해지면서 크고 작은 걸림돌도 잘 처리할 수 있게 됐다.

덕분에 입원하라는 조통장의 권유에 입원은 했지만, 본인의 경제적 여유는 안 되고, 병원비 마련을 위해 발동동거리며 뛰어다니는 조 통장을 지켜보며 애끓여야 했던 추영호 할머니도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할머니에게 든 총 병원비는 278만 원. 의료보험분을 제외하고 개인이 부담해야하는 비용이 100여만 원인데, 이중 87만 원은 구청에서 긴급구호금지원으로, 나머지 20여만 원은 구로성심병원에서 부담했다.

지난 22일 오후 취재차 고척1동주민센터 2층 동장실에서 만난 '마을의 천사'들은 자신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며 서로 옆에 있는 이들 덕분에 가능했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구로성심병원 강정구 부장은 "통장님이 동네에서 어려운 분을 발굴하고 찾아가면서 시작됐다"며 "이것이 복지의 시작"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완동 주민자치위원장도 "강정구 부장이나 조 통장 모두 각자의 역할이 있었기에 가능했지 누구 하나라도 없었더라면 어려웠을 것"이라며 "복지는 이처럼 같이 하는 것이며, 큰 보람과 자부심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이들의 얘기를 조용히 경청하던 전천석 고척1동장은 "어려운 이웃을 따뜻한 마음으로 발굴하고, 위원장님이 받쳐주고, 지역의 기관이 도움을 주어서 가능했다"며 "내년부터 전 동에서 시행될 찾아가는 동 복지의 첫 발걸음을 잘 보여준 사례였다"며 흐뭇함을 감추지 못했다.

고척1동 주민들에게는 '복지'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동네 이웃에 대한 마음이 하나로 잘 엮어질 때 가능하다는 것을 스스로 경험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