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新 우리동네 이야기22]구로시장길

70년대 전성기여 ‘다시 한번’

2015-02-16     박주환 기자

503번, 5626번 버스 등이 정차하는 구로시장 앞 정거장에서 내려 바로 왼편에 보이는 골목으로 60m 가량 걸어가면 '박순옥 푸른실 손뜨개샵', '대원식품'이라는 간판과 함께 구로공단 시절 유명세를 누리던 구로시장길이 시작된다.

지금은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들고 셔터 문을 닫아버린 가게들도 더러 눈에 띄지만 1970년대 구로시장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당시를 기억하는 구로시장상인회 이종운 회장은 "더 이전에도 사람들이 많았지만 1973년부터 1979년까지가 구로시장 최고의 전성기였다"며 "외부사람들을 포함해 구로공단 직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고 그 중에서도 서울통상이라고 불리던 가발공장의 직원들이 가장 많았다"고 회상했다.

이 회장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사람들이 몰리는 풍경이란 꼭 송사리떼를 보는 것 같았다고한다. 위에서 보면 점포가 하나도 안보이고 사람머리가 물결치는 듯 했기 때문이란다. 게다가 노점까지 포함해 점포수가 200여 개는 족히 넘었을 것이라고 하니 시끌벅적한 당시를 상상하면 지금의 모습이 낯설 뿐이다.

구로시장에 특히 손님이 몰리는 요일은 수요일, 토요일, 일요일이었는데 평일인 수요일이 여기에 포함된 이유는 이날이 공단 여공들이 외출할 수 있던 날이었기 때문. 다른 요일에는 고된 노동으로 공장 밖을 나서기 어려웠던 여공들은 외출이 가능하던 수요일과 주말에 시장으로 나와 음식을 사먹고 옷과 신발을 샀다.

이 회장도 1975년도쯤에 '새마을화점'으로 신발가게 이름을 지어서 운영했는데 여공들이 1200~1300원하던 운동화나 구두를 사면 스타킹을 공짜로 줬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종합시장이 형성됐던 만큼 시장 물품은 매우 다양했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구로시장의 한복은 구로시장길 인근에만 50여 개 가게가 운영했을 만큼 성황이었다. 신발가게도 노점을 포함해 15개 정도가 모여 있던 인기품목이었다.

1980~90년대에도 나름대로 명성을 이어오던 구로시장이 크게 쇠퇴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이후. 한 상인은 정확히 2003년 경이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시장을 비롯한 길거리 상권은 대형마트의 급증, 홈쇼핑·온라인쇼핑 확장 등으로 하향세를 맞았다. 1960년대 초반 구로구 최초의 전통시장으로 탄생해 근 50년이 넘도록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구로시장의 영화는 사실상 이제 과거의 일이 돼버렸다.

그러나 올해 구로시장은 아케이드설치 등 시설현대화 사업에 착수할 계획이다. 외관상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장사 터를 잃어버려 사라질 것만 같던 구로시장의 명물 '칠공주할머니 떡볶이'도 여전히 건재하다.

또 지난 달에는 20~30대 청년장사꾼 9명이 4개 점포의 문을 열고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했다. 이 가게가 잘 운영되면 인근의 빈 점포를 활용한 청년장사꾼 사업은 더욱 확대될 예정이다.

구로시장은 겉으로 보기엔 침잠한 것처럼 보였지만 만나본 상인들 가운데서는 과거의 성황을 꿈꾸는 목소리가 여전했다. 이만하면 다시 한 번 구로시장길에서 사람으로 이뤄진 송사리 떼가 물결치는 모습을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