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초 영어체험학습센터 논란

“ 학교측 센터운영 포기 수순” 학부모 등 반발

2014-12-23     신승헌 기자

고산초등학교 영어체험학습센터(고척1동)가 논란에 휩싸였다. 학교가 센터 운영을 포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학부모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지난 2007년 '사교육비 절감', '영어 학력 격차 해소' 등을 위해 구로구청(예산지원)과 남부교육지원청(행정업무)은 업무협약(MOU)을 맺고 고산초등학교 영어체험학습센터를 설립했다.

센터는 그동안 원어민 교사들을 활용하여 지역 내 24개 초등학교 5, 6학년을 대상으로 '모닝수업(무료)'을 진행하는 한편, 고산초 학생들(3~6학년)을 대상으로는 '런치수업(무료)'을, 지역 내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는 '방과 후 수업(2학기 월평균 수강료 3만 2천 원)' 등을 매일 같이 진행해왔다. 업무협약 당시 행정업무를 담당하겠다고 약속한 남부교육지원청은 지난 2011년 영어체험센터가 설치된 각 학교장에게 이를 위임한 바 있다.
 
 ■ 영어체험센터에서   '손 떼려는' 학교(교육청)
하지만 문제가 불거진 것은 지난달 7일, 구로·금천·영등포구를 관할하는 남부교육지원청(초등교육지원과)이 '영어체험센터의 인력채용, 예산집행 등 행정업무를 구청에서 운영해줄 것'을 영등포구청에 공문으로 요구하면서부터다.

이 같은 소식을 접한 지역내 고산영어체험학습센터 이용자들 사이에서 "그 다음은 구로구"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것. 영등포구 소재 영어체험학습센터(당산초, 대동초)도 고산센터와 함께 지난 2007년 '구청-교육지원청' 간 업무협약을 통해 개소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문은 지난 4일 구로구청과 교육지원청 관계자, 고산초 교장 등이 참석한 협의회에서 학교 측이 '영어체험센터 운영 관련 문제점'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준비해오면서 일파만파로 커졌다.

 

또 지난 10일에는 "센터 운영계획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10월 초부터 표시해온 남부교육지원청이 4일 열린 협의회에서 "관련 업무가 과중해서 (이대로는)곤란하다"고 말한 사실이 전해졌다.
 이에 대해 고산영어체험학습센터 조영희 센터장(계약직)은 "이는 영등포구의 수순을 그대로 밟고 있는 것"이라고 지난 10일 밝혔다.
 

구로 ·영등포구청     " 예산지원 해달랄땐 언제고"  황당
 학교 ·남부 교육청   " 행정업무 과중 … 곤란 "  
학부모  등                  " 현행대로 학교서 운영 …민간위탁 원치 않아"

 


 ■ 왜?
이와 관련해 고산초등학교 김중회 교장은 지난 10일 "논의가 오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김 교장은 "하지만 자치단체가 운영을 하는 것이 맞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고산초의  김 교장과 오순자 교감은 영어체험학습센터의 운영주체가 구청으로 넘어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 "(학교가 센터를 운영한다고)받는 것은 1원 한 장 없는데 골치만 아프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말하는 '골치'란 '구청에서 지원하는 예산이 언제 끊길지 모른다는 걱정', '영어체험센터 계약 직원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후 학교 소속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는 걱정', '영어체험센터 관련 민원이 언제 발생할지 모른다는 걱정' 등이다. 학교 측에 따르면 아직까지는 이 걱정들이 현실화 된 사례는 없다.

'센터와 관련된 과중한 행정업무'도 학교 측이 밝히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학교는 "지원해야 할 행정업무가 매일 있는 것은 아니며, 웬만한 업무는 센터장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질문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은 반면 "귀찮아서 손을 떼겠다는 것이냐"는 물음에는 긍정의 의사를 표하기도 했다.

또 "손을 떼게 된다면 (남부교육지원청과는 상관없이)학교가 결정한 것으로 봐도 되느냐"는 질문에는 "그렇지는 않은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영어체험센터가 잘 운영되고 있다 보니 학부모들이 걱정이 많을 것"이라는 김중회 교장은 "확실한 건 영등포구(당산초, 대동초)가 계속하면 우리도 계속하고,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어렵다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 학교(교육청)가 손 뗀    영어체험센터, 무엇이 달라지나
구로구청보다 앞서 이와 관련한 구체적 논의를 진행해온 영등포구청은 "센터를 현행대로 운영해줬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공문을 통해 각 학교장에게 전달했다"면서 "만약 협조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교육과 관련해서는 (학교나 교육청보다)비전문가집단인 구청으로서는 전문 업체에 위탁운영을 맡길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지난 9일 밝혔다.

이 같은 입장은 구로구청 또한 마찬가지이다. 구로구청 교육지원과는 지난 10일 "학교(교육청)가 손을 뗀다면 민간위탁업체를 선정하는 것이 가장 유력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구로·영등포구청 관계자와 조영희 센터장, 또 익명을 요구한 영등포구 영어체험센터 센터장 등은 "민간위탁을 하게 된다면 수업료가 높아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하고, '모닝수업' 등이 사라지는 등 공교육에 대한 개념이 희박해질 것"이라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초 영어체험학습센터를 설립한 취지에 어긋난다는 이야기다.  

수강료 문제 외에도 '행정기관이 운영하는 영어체험센터'라는 장점이 사라진다는 의견도 있다.
아들이 3년째 고산영어체험센터를 다니고 있다는 심효정(41, 오류동) 씨는 "만약 '사설'이었다면 불안해서라도 오류동에서 고척동까지 아이를 보내지 않았을 것"이라며 "조금 귀찮다고 '교육'을 민간업체에 맡겨야만 하는 상황을 조장하는 것이 교육 당국이, 교육자가 할 일이냐"고 강하게 성토했다. "교육활동과 관련해 교육청이 공문을 시행하면 행정적 권위가 있다"는 영등포구 영어체험센터 관계자의 의견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 '남의 집 불구경 하듯'      남부교육지원청 입장은
구로구청과 영등포구청은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남부교육지원청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구로구청 교육지원과는 지난 10일 "지난 2007년 업무협약 당시 '예산(1개 센터 1억 9,400만 원, 2014년 기준)만 지원해주면 운영을 맡겠다'던 남부교육지원청이 2011년에는 학교장에게 영어체험센터를 위임하더니, 이제는 그 학교가 마치 구청이 해야 할 일을 자신들이 떠맡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며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영등포구청 또한 "남부교육지원청이 '예산(2개 센터 4억 원, 2014년 기준)만 지원해주면 나머지는 다 하겠다'고 해서 시작한 건데 이제 와서는 '과도한 행정업무', '안전문제' 등을 운운하고 있다"고 지난 9일 밝혔다.

이에 대해 남부교육지원청 초등교육지원과는 "우리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영어체험센터와 관련해서는 지난 2011년 이후부터 '수료증 발급', '직인 날인', '학생 모집 공문발송' 등의 업무만 담당했을 뿐 운영은 학교가 맡고 있다는 이야기다.

초등교육지원과 한철수 과장은 "교육지원청이 해당 학교들을 관할하고 있고, 또 업무를 위임한 만큼 지난 2007년 당시 업무협약에 대해서는 책임이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시작할 때는 중등교육지원과가 해당 업무를 진행했기 때문에 우리(초등교육지원과)는 알 수가 없다"고 지난 16일 밝혔다.

아울러 "교육지원청은 업무가 타 부서로 이관되면 인수인계도 진행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구성원 대부분이 1년~1년 반 사이에 자리를 옮기는데다 조직개편도 잦아 그런 경향이 있다"는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남부교육지원청은 '업무협약서'조차 보관하고 있지 않다가 본지가 취재를 시작한 이후 구로구청 측에 "업무협약서를 보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지난 4일 이후 "교육지원청은 논의의 자리만 마련할 뿐 아무런 권한이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 해온 초등교육지원과 이수진 장학사는 "그렇다면 이에 관한 협의·결정은 전적으로 각각의 구청과 학교가 진행할 일이냐"는 질문에 대해 "3자(구청, 교육지원청, 학교)가 함께 의견조율을 해야한다"고 지난 16일 대답했다. "그 말은 교육지원청도 관여한다는 의미냐"는 질문에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모호한 답변을 내놓았다.

최근 고산영어체험센터 운영방식에 대한 학부모설문조사결과 절대다수가 외부업체 위탁운영보다 '현행 운영방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고산영어체험센터는 지난 9일 약 100명의 이용자(학부모)를 대상으로 '영어체험센터 운영계획'에 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현행대로 운영'과 '외부업체 위탁운영'을 놓고 실시한 이 조사에서는 학부모의 절대 다수가 '현행대로 운영'에 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