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1_구로의 또다른 얼굴]중국동포와의 공존 해법 찾아야 할 때

지역인구 20명중 1명꼴 ...도시 농촌 문화적 차이 이해 필요

2014-03-11     박주환 기자
▲ 중국동포들의 끊이지 않는 쓰레기 무단투기에 대한 주민 불만이 커지자, 구로구청은 과태료 기준등의 내용이 담긴 안내판을 설치하고 어두운 밤 사람처럼 보이는 마네킹을 세웠다. 사진은 가리봉동 거리에 설치된 마네킹.

2만2,336명. 2013년 기준 구로구에 거주하는 중국동포의 수다.
이는 관내 총 외국인 2만7,204명 중 82.1%에 해당하는 숫자이며 주민등록인구를 포함한 구로구인구 45만2,168명 중 4.9%에 이르는 인구수다.

이 같은 인구 통계는 적어도 구로구에선 중국동포들이 더 이상 외부인일 수 없음을 시사한다.
가리봉동 김형근 동장은 중국동포들의 1일 동 유동인구가 1만 명을 넘는다고 했다. 중국동포와의 공존이 선택의 문제가 아님에 대한 방증이다.
 
중국동포들의 한국 초기정착지로 유명한 가리봉동의 경우엔 2013년 중국동포의 수가 5,948명으로 가리봉동 전체 인구 1만9,437명 중 30.6% 수준을 보이고 있다. 가리봉동에서 스치는 주민 3명 중 1명가량은 중국동포라는 것이다. 서울시내 단일 자치구로는 최대비율이다. 7,421명으로 가장 많은 중국동포가 거주한다는 영등포구의 대림2동도 그 비율은 29.6%로 가리봉동보다 낮은 수치다.

가리봉동뿐만이 아니다. 구로2동엔 2012년을 기점으로 가리봉동보다 더 많은 중국동포들이 거주하기 시작했다.

인근 임대업자들은 가리봉동의 거주공간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중국동포들이 집값이 비슷한 구로2동과 구로4동으로 퍼져나갔다고 증언했다.

가리봉동의 재개발이 묶여 주거환경이 열악해지자 주변으로 이동했다는 설명도 있었다.

2013년 기준 구로2동의 중국동포는 6,436명으로 가리봉동보다 488명이 더 많았다. 구로4동도 매년 조금씩 증가해 3,862명이나 됐다.

구로구에 중국동포가 본격적으로 유입하기 시작한 것은 2004년 재외동포법이 개정되면서부터였다.

이 법의 개정으로 조선족이라 불리던 구한말의 후손들은 비로소 재외동포의 지위를 획득했다.

관내 중국동포 수는 2000년 500여 명이었던 것이 2004년엔 6,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방문취업제가 실시된 2007년엔 무려 7,300여 명이 급증해 2만2,200여 명으로 지금과 비슷한 수준을 이뤘다.

이후 중국동포들은 1970~80년대 산업화시대 공장노동자들을 대체하며 일용직, 식당, 간병 등의 단순노무직을 일임하기 시작했다.

 쓰레기무단투기 치안불안 등
 '동네 갈등' '주민갈등' 증폭

관내 거주 중국동포가 늘어나며 가장 먼저 갈등의 요소로 떠오른 건 기초질서문화에 대한 인식차이였다. 특히 중국동포들의 쓰레기봉투종량제 사용 부실에 대한 문제는 이들의 정착 초기 단계부터 끊임없이 거론됐다.  

 

지난 1월14일 구로4동의 동 신년인사회에서도 이와 같은 민원이 제기됐다. 민원의 요지는 중국동포들이 쓰레기를 버릴 때 종량제 봉투를 사용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배출하는데 왜 그냥 수거해가느냐는 것. 불법을 용인하니 이들이 더욱더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버려 동네 미관을 해치고 있다는 불만이었다. 이 지역 주민들은 이 때문에 직접 쓰레기봉투를 뒤져 영수증 등의 자료를 찾아내 400여 건 가까이 고발조치하기도 했다.

가리봉동에서 통장직과 함께 깔끔이 봉사단에 참여하고 있는 A씨의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A씨는 "매일 같이 동네를 돌아다니며 청소를 하는데 어떤 곳에선 쓰레기종량제봉투가 하나도 안 나오고 전부 비닐통투일 때도 있다"며 "정리하다보면 하루에 50L 종량제 봉투를 2~3장씩 쓰는 것은 기본이고 많은 날은 10장 가까이 될 때도 있다"고 말했다.

A 씨가 보기에 중국동포들의 쓰레기 무단투기 문제해결은 아직 요원한 일이다. 최근 쓰레기 투기 장소에 중국어로 된 안내판을 붙이고 마네킹을 세우면서 예전보다는 쓰레기양이 조금 줄어들긴 했지만, 통장들이 청소를 하는 걸 뻔히 보면서도 쓰레기를 버리는 동포들을 볼 때면 통장이 아니라 청소부가 된 것 같아 답답한 마음이라고 토로했다.

이밖에도 가리봉동을 비롯한 구로2동과 4동의 주민들은 고성 등 기초질서준수에 대한 불만을 제기했다. 특히 여성주민들의 경우엔 여름에 속옷이나 내복바람으로 골목에서 돌아다니는 동포들을 볼 때 당황스럽다고 한다. 길거리에서 걸어 다니며 담배 피우고, 침을 뱉고, 밤낮없이 큰 소리로 대화하는 것도 거주주민들이 위화감을 느끼는 요소였다.

치안문제는 대다수의 주민들이 현실적으로 느끼는 위협이었다. 구로2동 통장협의회 이종덕 회장은 "주민과 중국동포 양측 간에 걱정할만한 심각한 갈등은 없는 편이지만 서로의 생활이 거의 분리돼있고 문제가 생길 경우 동포들의 과격한 반응이 걱정돼 마찰을 최대한 피하려 하는 게 주민들 대다수의 입장이다"라고 전했다.

청소를 하는 자원봉사주민들의 경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단투기를 목격했을 때 문제를 지적하면 되레 화를 내는 경우가 많아 대화를 꺼리게 된다는 것이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중국동포가 잘 못한 걸 봐도 웬만하면 달려들지 말라는 의견들이 돌고 있다고 한다.

이 지역 주민들은 대부분 최근엔 치안상태가 많이 안정됐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과거 직접 목격하거나 들은 폭행 문제들로 인해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밝혔다.
 

  중국동포에 대한 편견" 억울
 강력범죄 동포 전체 문제 아냐
중국동포들은 이 같은 문제 제기에 일면 억울하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쓰레기봉투문제에도 중국동포들에 대한 편견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가리봉동의 외국인자율방범대 김용운 대장은 "지난번에 지구촌사랑나눔 김해성 목사와 함께 동네 (무단투기)쓰레기봉투를 확인해보니 10개 중 7개는 한국 사람들이 버린 것이었다"며 "다 똑같은 사람인데 거리가 더러우면 가리봉동의 문제라고 해야지 중국동포들이 이렇다 저렇다 하면 정말 속이 상한다"고 말했다.

김 대장은 치안문제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오원춘 등의 강력 범죄가 불거지면서 뉴스에 나오면 그것이 마치 동포사회 전체의 문제인 듯 비춰지는 게 답답하다고 했다.

예전에야 몇몇 동포들이 병을 깨고 싸우는 등 과격한 행동을 보이기도 했지만 외국인자율방범대가 현장에서 '이러면 안 된다, 돈 벌러 와서 실수 한 번으로 다시 돌아갈거냐, 한국에서는 처벌이 크다'는 식으로 설득하고 설명하면 대부분은 수긍한다는 것이다.

가리봉지구대 측도 치안에 대해선 중국동포들의 입장을 옹호했다.

구로경찰서소속 가리봉지구대 양명우 팀장은 "4~5년 전만 해도 밤만 되면 피투성이가 돼 지구대를 찾는 경우가 더러 있었지만 지금은 지속적인 법규나 질서에 대한 홍보활동으로 흉기나 둔기를 사용하는 과격한 경우는 드물다"며 "폭행사건들의 경우 외부에서는 심각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직접 가서 확인해보면 술 마시다가 감정이 격해져서 다투는 수준의 사례가 다수다"라고 말했다.

양 팀장은 또 "중국인들이 골목이나 바깥에 모여서 무리를 형성하는 모습들이 주민들에겐 위화감을 느끼게 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여름 무렵 쪽방 안이 너무 더워 바깥에 나왔다가 심심해서 함께 모인 경우들이다"라며 "밖에서 장기를 두거나 대화를 나누는 게 전부다"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한국인들의 편견 외에도 월급미지급, 주거환경 문제 등 중국동포들의 고질적인 고충은 여전했다. 지난달 26일에도 중국교포가 외국인자율방법대를 찾아와 일한 후 돈을 못 받았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김용운 대장에 따르면 이들은 한국인 업주를 찾아가 목소리를 높여 항의했지만, 업주는 돈을 안주는 게 아니라 줄 돈이 없다며 되레 신고를 하라고 했다.

인근 중국동포들은 이런 사례가 잦다고 증언했다. 분명히 집도 있고 차도 있는 업주인데 모두 부인이름으로 돌려놓고 제 돈이 아니라며 임금을 떼어 먹는 다는 것이다.

뿐만이 아니었다. 일하는 동안에는 잘 챙겨주기도 하고 살살 구슬리기도 하며 일이 끝난 후 돈을 주기로 약속해 놓고 길게는 몇 개월의 작업이 끝난 후에 입을 싹 닦는 다는 것이다.

주거문제도 매우 심각해 보였다. 중국동포들만이 아닌 내국인 주민들도 이들의 열악한 생활환경을 지적하며 화재 발생 시 언젠가는 한 번 큰 일이 날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냈다.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김기동 사무국장은 이런한 갈등의 격차가 좁혀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한국 다문화 정책의 부실함을 지적했다.

김 사무국장은 "한국은 다문화 정책이 만들어지고 예산이 투입되는 속도는 매우 빠른편이지만 대부분 아이디어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정책을 입안하는 목적이라든가 효과 등에 대한 깊은 논의와 고민의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공회대 사회학과 이종구 교수도 현쟁 진행되는 정책에 기대기보다는 지역 내 오피니언 리더 층을 중심으로 한 대화의 장 마련이 훨씬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교수는 "구청은 물론, 동포사회에서 신망을 얻고 있는 종교단체의 장이나 주민자치단체 등이 주도해 양측이 허심탄회 하게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며 "체육대회도 좋고, 술자리도 좋고, 서로 부대끼면서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야 갈등도 최소화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실제로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 속에서도 이같은 소통과 공존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다수의 내국인 주민들은 중국동포와의 공존이 피할 수 없는 현상임을 이미 받아들인 것처럼 보였다. 함께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질서를 존중해주고 문제가 있을 때 말다툼이 아닌 대화로 해결할 수 있다면 함께 살아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중국동포들도 마찬가지였다.

외국인자율방범대 김용운 대장은 "지금 있는 중국동포 중 100이면 99는 살기 좋은 한국에서 오래 거주하길 원하고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싶어한다"며 "우리도 사람이고 사람에겐 다 감정이 있는데 편견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