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_구로공단 50주년]4. 구로공단에서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2000년부터 시작된 '새바람' … 4개 건물만 옛모습

2014-03-11     신승헌 기자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라는 시간이 5번 지났다. 구로공단 역시 지난 50년 동안 큰 변화를 겪었다. 이름부터 바뀌었다. 구로구와 금천구 일대 산업단지의 정식명칭이 '한국수출산업공업단지'에서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지난 2000년 12월 변했다. 사람들은 이제 '구로공단'을 'G밸리'라 칭한다. 구로공단역, 가리봉역도 구로디지털단지역, 가산디지털단지역으로 개명했다.

바뀐 것은 이름만이 아니다. 정부가 1997년 수립한 '구로공단 첨단화계획'을 계기로 우리나라 첫 벤처집적시설인 키콕스벤처센터가 지난 2000년에 들어섰다. 민간 건설사들의 지식산업센터 건립도 이어졌다. '구로공단 첨단화계획'은 제조업만 가능하던 입주업종을 지식기반산업으로 확대하고 민간 건설사의 지식산업센터 건립이 가능하도록 규제를 완화하는 것을 골자로 했다.

현재 옛 구로공단 1단지 자리에는 오닉스시스템(구로동 197-30), 산업기술시험원 별관(구로동 830), 세계정밀(구로동 855), 신애전자였던 만민교회(구로동 235-3) 등 4개 건물만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나머지는 평균 20층 규모의 고층빌딩으로 모두 재개발된 상태다.

1단지에서 코트 등을 만들던 '삼경복장' 자리에는 '코오롱빌란트 1차'가 세워졌다. 미국으로 바비인형을 수출하던 '대협'은 '대륭포스트타워 1차'로 대체됐다. 현재 '에이스테크노타워 2차' 부지는 TV, 라디오 등을 생산·수출하던 '동남전기'가 있던 자리였다.

구로동맹파업(1985년)의 중심지였던 가리봉오거리(현 디지털단지오거리)도 마찬가지다. 새마을연수원이 있던 자리에는 대형마트(이마트)가 들어섰고, 파업을 주도했던 대우어패럴이 있던 곳에는 패션몰 '하이힐'이, 효성물산 자리에는 패션몰 '마리오아울렛'이 우뚝 서있다. 패션아울렛 'W몰'은 1969년 2공단에서 가장 높은 수출실적(439만 불)을 올렸던 서울통상이 있던 곳이다. '상전벽해'를 외칠만한 변화다.

주종을 이루는 산업도 섬유, 봉제 등 경공업 중심에서 첨단 산업으로 변했다. 국가산업단지 입주 시 부여되는 세제혜택(취등록세 면제, 재산세, 종합토지세 5년간 50% 감면)과 금융혜택(서울시, 중소기업진흥공단 자금지원)을 받기 위해 강남 테헤란밸리 등지에서 벤처기업들이 대거 이전해 온 결과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 입주기업 10,823개 중 IT기업체 비율은 2011년 기준으로 79.1%(8,561개)에 달한다.

남색 작업복에 흰 두건을 둘렀던 앳된 여공들이 있던 자리엔, 자유분방한 사고와 캐주얼한 차림의 젊은 IT 인력들이 대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