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_구로공단 50주년]5. 기억 그리고 유산

서울역사박물관이 발간한 종합보고서 '가리봉' 눈길

2014-03-11     신승헌 기자

구로공단이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이름을 바꾼 지도 십 수 년이 지났다. 사람들에게 구로공단은 어떤 의미로 남아있을까. '근로자'로 발을 들인 구로공단에서 '사장'이 됐고, 지금은 인천지역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평가받고 있는 전모(구로2동) 씨는 "힘들었던 과거를 굳이 들춰내고 싶지 않다"며 한사코 기억 더듬기를 거부했다.

반면 어떤 이는 "희한하게 공장 창문을 통해 한참 떨어진 곳에 있는 삼립 빵공장의 빵 냄새가 났다"며 흐뭇하게 당시를 추억하기도 했다. 동생이름으로 공장에 위장취업을 했던 서혜경 씨는 그 때 맺은 인연들에게 해마다 500만 원을 후원하기도 한다.
 
 ■ 지워야할 과거
지난달 14일, 서울시의회 도시안전위원회 소속 정승우(민주당) 의원이 '구로동 명칭 변경에 대한 1, 2차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여론조사는 구로동이 과거 공업단지의 이미지를 연상시키고 있어 개명이 필요하다는 일부 주민들의 의견이 있어 실시됐다. 실제 주민들 중 일부는 '구로 1동'을 '구일동'이라고 부르는 등 과거 구로공단과 관련된 이미지를 지우려는 노력을 해왔다.

지역주민과 디지털단지 근무자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여론조사결과, 동 명칭 변경에 대한 찬반의견은 팽팽했다. 하지만 개명을 찬성하는 쪽이 절반을 넘었으며 특히 디지털단지 근무자들의 찬성의견은 68%로 명칭 변경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보존해야 할 유산
이 같은 현상에 대해 구자광(구로 2동) 씨는 "구로공단이 국가산업발전에 효녀노릇을 많이 했다"며 "오히려 자랑스러워해야 할 일을 왜 지우려하는 지 모르겠다"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구로구가 알려진 것도 구로공단 때문이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서울시가 수립한 '자치구 동네관광 상품 프로그램 개발·운영 계획'에 따라 지난해 '구로공단 19662013'을 공동집필한 강철웅 씨는 "구로공단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긍지와 자부심이 많이 부족하다는 걸 느낄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강 씨에 따르면 심지어 지난해 진행한 '구로공단투어' 해설사 양성과정에 참여한 사람들조차 구로공단 이야기를 꺼내면 "왜 옛날이야기를 자꾸 하냐"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10주의 교육과정을 마치자 의식전환이 이루어졌다"며 "편견을 걷어낸다면 구로공단은 얼마든지 지역의 긍지와 자부심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강철웅 씨는 "묵묵히 산업발전에 기여한 공단노동자들의 업적을 이제는 재평가해야 한다"며 "역사적 현장들이 사라지고 있는데 더 늦기 전에 사람들의 이야기 등을 남겨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구로공단과 관련하여 최근 서울역사박물관은 가리봉에 관한 종합보고서 '가리봉동' 을 발간했다. 산업관광육성사업의 일환으로 구로공단 실사를 다녀간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해당 지역을 두고 "보물창고"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