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_항동의 추억, 항동의 유산 5] 항동마을 문화생태지도

2013-12-18     구로타임즈 기획취재팀

항동의 골목과 산야는 보석같은 다양한 빛깔들을 갖고 있다. 아름드리 은행나무부터 나무대문의 고택, 깊은 산골에서나 마주칠 것 같은 담뱃가게, 포도덩쿨 골목길, 우물, 약수터 등이다.

또 개발과 도시화의 그늘속에 추억속으로 사라졌지만, 유서깊은 문화와 전통도 숨쉬고 있다. 그 가운데 주요한 몇가지를 지도로  담아본다.                                                                <편집자 주>

[글싣는 순서]

1. 서막, 항동의 유래와 변천
 2. 항동사람, 평생을 살다 1
 3. 항동사람, 평생을 살다 2

 4. 항동사람, 오늘을 살다
 5. 항동마을  문화생태지도
 6. 항동의 꿈, 항동의 기록

 


 

■ 부화장 & 종계장 : 60, 70년대 대한사료공업주식회사의 부화장이 있던 곳. 경인로변에서 성공회대앞을 지나 푸른수목원으로 좌회전하기 전 삼거리 우측에 있는 2층 건물이다. 지금은 목양교회 건물로 쓰이고 있다.

부화장은 외국에서 수입해온 종란에서 병아리를 부화하는 곳. 여기서 부화된 병아리는 인접한 굴봉산에 건립한 대한사료공업의 종계장에서 알을 낳는 종계로 사육됐다. 당시 산속에 지어놓은 종계장의 사육규모는 1만수가 넘었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지금도 당시 닭을 키웠던 닭장등의 건물외형은 등은 부분적으로 남아있다.

■농촌진흥원 원종장 터: 농산물의 원종을 개량해 보급하던 경기도농산물원종장. 경기도 농촌진흥원의 사업소중 하나로, 경기도 부천과 서울 항동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일제시대인 1917년 농촌진흥사업을 위해 설립된 경기도 종묘장에서부터 비롯. 경기도의 행정체계 개편등으로 1998년 폐지돼, 그 기능은 경기도 화성 경기도농업기술원에서 진행하고 있음.

1960년대 초에는 이 원종장에서 다시 새로 개발한 벼품종인 '유신' '밀양21호''통일벼'등의 보급은 물론 각종 원예와 채소및 과채류재배등도 진행됐다. 경기도 농촌진흥원시설중 창고와 사무실등이 항동 쪽에 위치해있었는데, 그 자리에 지금의 서울수목원현대홈타운이 들어선 것. 창고부지였던 곳은 지금의 홈타운 후문앞으로 2차선 도로가 돼있다.

■농촌진흥원내 느티나무 : 농촌진흥원 마당에 있던 400년 된 나무. 아파트와 도로가 들어서면서 농촌진흥원의 흔적 조차 남아있지 않은 것처럼, 느티나무가 있던 자취를 찾을 수 없다. 항동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주민들도 희미한 기억으로만 있을 뿐.
 
■몰미산 : 서울 항동과 경기도 부천시 범박동의 경계가 되는 곳. 높이 59m~82m봉우리 세 개가 'ㄷ'자 모양으로 이어져있어 마치 소가 누어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여 일명 '와우산'(臥牛山)이라고도 불렸다. 범박동에서 항동으로 가려면 배모퉁이처럼 튀어나온 산등성이를 돌아가야 하는데, 바로 이 모퉁이 인근에 수백년된 느티나무가 있었다고 전해내려옴. 을축면 홍수때 소사펄이 물바다가 되었는데, 마을사람들이 피난을 가기 위해 뗏목을 만들어타고 내려오다 이 나무에 배를 매어두고 정착하면서 동네가 형성되었다고 전해내려온다.
 
■앞내깔 : 지금은 사라진 농사시험장 저수지에서 천왕동 앞으로 흘러 옥련동으로 나가는 내로, 내의 양쪽에 논이 있어 '앞 내깔'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항동주민들이 고기도 잡고, 김치거리를 씻고 빨래를 하던 곳.
 
■망   골 : 개척지마을 위쪽에 있는 골짜기. 개척하기 힘이 들고, 여기서 살면 망하겠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매화빌라 : 1989년 주거환경개선지구로 지정되어 1997년 18평형 146세대로 서울시도시개발공사에서 건립해 분양. 1960년대 말 영등포 등에서 밀려난 철거민들이 들어와 군용천막 한 개에 8가구씩 살면서 부락을 이뤄 철거민촌으로 불렸던 곳. 이후 비가 오면 바로 옆 하천인 역곡천이 범람해 유독침수돼 주거환경개선지구로 지정.

■항동저수지 : 경인로와 인접해있지만 산으로 둘러싸여있던 항동의 주요 경제활동은 농업. 논농사를 위해 활용되다, 푸른수목원내 생태공간으로 변하기 전까지는 외지에서 찾는 강태공들의 낚시터로도 유명했던 곳. 많은 동네주민들에게는 젊은 시절 여름엔 고기를 잡고, 겨울엔 썰매나 스케이트를 타던 추억의 장소.

■서낭당 : 항동에서 건지산 봉우리를 향하여 천왕동과 옥길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에 있음. 지금은 오색천이나 돌무덤 등의 흔적도 없다. 다만 주변 나무들과 달리 신목이었던 나무의 껍질이 다 벗겨져 매끄럽고, 나무 주변 땅속으로 돌들이 유난히 많은 것 정도가 서낭당이 있었던 곳임을 짐작케 한다. 지금은 극히 일부 주민들 외에는 알 수 없을 정도이다.
 
■서낭당고개 : 오류2동 금강수목원아파트 옆 항동철길을 따라 항동푸른수목원 방향으로 걸어오다 보면 산의 한가운데로 난 철길을 걷게 된다. 이 길을 약 70여m정도 걷다 오른쪽으로 보면 산의 고개였을 정도로 다소 높은 곳이 보이는데, 이 곳이 서낭당당고개가 있던 곳.

■항동산신제 터 : 산세가 심해 호랑이가 마을로 내려오면서 호환을 막기 위해 시작해 매년 10월초 마을주민들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해온 연례 행사. 서울지역에서 보기 드문 전통이라 90년대에는 매스컴에서 관심을 갖기도 했다. 산신제를 올렸던 산에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터줏가리가 있었으나, 지금은 잡목으로 덮여있을 뿐이다.
 
■품무골 : 주민들이 식수로 가장 많이 이용했던 마을의 공동우물터. 약수터 수맥이라 물맛도 좋고 빨래터로도 이용됐다고 한다. 1990년대 농사용 관정설치를 하면서 봉쇄됐다. 주변에 잡풀만이 무성할 뿐이다.

■뒷골우물 : 매년 10월초 동네 주민들이 하나가 되어 올리는 항동산신제에 쓸 정한수로 이용된 것. 마르지 않는 우물로, 산신제 전날부터 우물내부를 청소 해 깨끗한 물을 올리도록 했다.

■김영봉 노인회장댁 : 항동마을을 이룬 집성촌 김해김씨 집안의 9대종손 댁. 70여년 전에 새로 지은 기와집의 ㅁ자 마당 구조와 흙토담 뒤꼍, 300여년 된 회나무 등이 눈길을 끈다.

■항동약수터 : 굴봉산 서쪽 기슭에 있는 약수터. 지금도 주민들과 인근 지역민들이 이용하고 있다.

■방공호 : 항동약수터를 지나 산으로 10여분쯤 오르다 보면 천왕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오르기 직전 왼편으로 경사가 심한 산비탈의 7부 능선쯤에 6.25동란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방공호 흔적이 남아있다. 지금은 낙엽등으로 거의 덮여있으나 비탈사이로 인근의 다른 곳과 달리 평평한 선이 보여 방공호였음을 짐작케한다. 동네주민들은 "인천상륙작전 때 항동은 이북쪽의 서울방어선이라 군사적으로 중요해 수십m씩 옆으로 이동하는 방공호가 여러개 있었다"고 전한다.
 
■농심 서울물류센터 : 항동 보금자리지구로 지정된 이후 농심 물류센터는 이전돼, 현재 비어있는 상태. 농업기반의 항동지역에 1970년대 전후해 직원만도 200여명에 이를 정도의 대규모제조업체인 한국플라스틱공업이 들어서, 이후 장판지 제조업체인 세청화학, 농심물류센터로 변모했다. 
 


 

  ■ 기획취재팀: 김경숙· 윤용훈· 박주환· 신승헌 기자

 ■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