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동기획_사람들]새로 피운 항동의 삶

항동과의 만남 40여년째, 이순정할머니(82)

2013-12-09     구로타임즈 기획취재

이순정(82, 여) 할머니는 41세였던 해,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에 항동으로 옮겨 왔다. 남편이 영등포에서 큰 도매상을 하다가 망하자 빚을 모두 청산하고 남은 돈으로 항동에 온 거였다. 이 어르신은 "여기는 망한 사람이, 없는 사람이 들어오는 데야, 여기는 그래서 다 없는 사람끼리 이 동네에서 살고 그랬다"고 말했다.

이 어르신은 항동에 처음 들어왔을 때 너무 무서웠다고 했다. 깜깜하고 밤 만 되면 담요를 치고 울었다고 했다.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 남편에게 밖으로 나가자고 하소연도 했지만  '이 사람아 영등포 나가면 이거 전세거리 밖에 안 된다. 여기서 살면 나중에 큰돈 된다'라는 대답에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남편은 항동으로 이사 온지 6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이 어르신은 당시 영등포에 있던 상호신용금고에 다니며 혼자 힘으로 4남매를 모두 고등학교까지 가르쳤다. 당시를 회상하는 이 어르신의 목소리엔 삶에 대한 무게와 먹먹함이 묻어났다.

이 어르신은, 현재는 부천에서 작은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개발 이후 항동에 있는 집이 팔리면, '조금 큰 집에서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기대를 하고 있다.

주말이면 이곳에서 만난 친구들과 아직도 연을 이어가며 함께 노인정과 교회에서 담소를 나눈다. 이 어르신에게 항동은 돌이켜 보면 힘든 삶의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노년을 기댈 수 있는 추억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