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동기획_ 사람들]70년대엔 '범죄없는 마을'로 선정

2013-12-09     구로타임즈 기획취재팀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이 100년도 더 된 집이야. 4대가 이 집에서 생사(生死)를 했어"

이순금(70, 사진가운데) 할머니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수십 년 전 집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쇼와 17년에 집을 올렸다'는 문장이 서까래에 적혀있는 걸 보았다고 한다.

일왕의 연호를 사용한 쇼와 17년. 계산해 보니 서기 1942년이다. 집은 할머니의 말처럼 100년이 넘지는 않았다. 그래도 '오래' 됐으며 '4대가 살아온' 집이란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할머니가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들어온 건 48년 전이다. 22살 꽃 같은 나이에 이곳에 신접살림을 차리고부터 반백년이 가까운 세월을 이집과 함께했다. 할머니를 이곳으로 데리고 온 새신랑이 하늘나라로 먼저 떠난 날에도, 이곳에서 태어난 2남 1녀가 가정을 꾸려 집을 떠난 날에도 할머니가 이부자리에서 바라보는 천장은 늘 그대로였다.

그런 이순금 할머니에게 이곳이 개발된다는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에게 이 집과 항동마을은 삶의 전부와 다름없지만 처음에는 내심 반가웠다고 한다.

"개발이 되기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수도 하나 들어온 거 빼고는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거든. 우리 집뿐만 아니라 마을 전체의 집들이 너무 낡아서 누전이나 누수 등 생활하기 불편한 점이 여간 많은 게 아니야."

하지만 수년째 개발이 미뤄지는 동안 처음의 반가운 마음만큼 걱정도 커졌다고 한다.

"여기 이 할머니를 20대에 만났어." 이순금 할머니가 옆에 있던 김순태(77,,사진왼쪽) 할머니를 마을 고스톱 왕이라고 소개한다. 

"이 언니뿐만 아니라 다른 마을사람들도 수십 년을 알고 지냈는데 개발이 되면 뿔뿔이 흩어 질 생각을 하니 마음이 불편해. 또 나이 먹고 사람 새로 사귀는 건 어디 쉽나."

이순금 할머니는 요즘 들어 부쩍 옛 생각이 많이 난단다.
  "물맛도 인심도 못잊어"

"예전에는 칸칸마다 신혼부부나 공부하는 사람들이 세 들어 살았어. 마을이 활기찬 게 사람 사는 것 같았지. 인심은 또 얼마나 좋았다고. 70년대에는 구로경찰서에서 범죄 없는 마을로 지정하기도 했는걸."          

"인심만 좋나. 공기랑 물은 또 얼마나 좋아. 마을을 떠난 사람들도 약수터 물맛을 못 잊어 그걸 뜨러 여기까지 오잖아." 옆에서 듣고 있던 김순태 할머니가 이 할머니의 말을 거들었다. 

할머니들은 아직 마을에 남아있는 사람들 중에서는 개발을 대비해 이사 갈 곳을 정한 사람이 없다고 했다. 이 할머니와 김 할머니도 아직 이사 갈 곳을 생각해보지 않았단다. 하지만 확실한 건 개발이 끝나면 두 할머니는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거라고. 

"사정이 있어 돌아오지 못하는 마을사람들도 있겠지." 이순금 할머니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하더니 이내 얼굴표정이 밝아진다. 아마 즐거웠던 한 때를 회상하는 듯하다.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도 어디에선가는 '이곳에 살 때가 좋았지'하며 마을을 추억할거야. 그만큼 항동마을은 참 살만한 곳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