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깃발 꽂은 구로청소년들

청소년휴카페 담쟁이넝쿨 초중생 10명 21일간 영국탐험 마치고 귀국

2013-08-12     송희정 기자

구로지역 청소년들이 장장 20박21일에 걸친 영국대장정을 다녀왔다.

런던과 더럼, 버밍엄 등을 오가며 미술관과 박물관, 역사유적지 탐방은 물론 현지봉사활동과 4박5일 야외캠핑까지 두루 섭렵하고 돌아왔다.

남매인 개명초 6학년 강건 군과 개웅중 1학년 강윤진 양, 그리고 개웅중 3학년 동갑내기인 이수지 양, 이희재 양, 배하린 양, 강희범 군, 문형인 군, 이민욱 군, 권석현 군, 김강훈 군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 10명은 개봉3동에 위치한 청소년휴카페 '담쟁이넝쿨'의 용감무쌍 재기발랄한 '제1기 영국탐험대'다.
 
■ 설마…    "학년도, 성격도, 식성도 다른 10명의 아이들이 20박21일 동안 함께하면서 배려와 이해, 용서, 솔선수범의 미덕을 스스로 깨우치고 체득했어요. 아이들과 인솔자 모두 설렘 반 두려움 반의 마음으로 출발했는데 갔다 와서는 '우리가 해냈다'는 자신감에 충만해졌어요. 멋지고 자랑스럽고 감동적인 여행이었습니다."  인솔자로 함께한 박은성(영문교회 담임목사) 담쟁이넝쿨 대표의 소감이다.

박 목사가 영국탐험대 구상을 밝혔던 1년 전만해도 주변의 반응은 반신반의였다. 아이들에겐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이겠지만 수 천 만원의 경비가 소요되는 영국여행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박 목사는 '설마…'하는 주변의 시선에도 몇 년 전 자신이 캐나다유학시절 경험했던 "다른 나라, 큰 세상의 감동"을 아이들에게도 선사해주고픈 마음에 영국프로젝트를 끈기 있게 준비해 들어갔다.

영국탐험대는 준비기간만 1년 넘게 소요됐다. 제일 큰 난관은 당연히 '돈'이었다.

후원은 나중의 일이고, 우선 비행기 삯이나마 스스로 마련해 보자는 생각에 뜻을 함께한 엄마들과 적금을 붓기 시작했다. 팍팍한 생활고에도 아이들에게 너른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던 엄마들은 한 달에 5만원, 10만원씩 종자돈을 모아갔다.

그러던 중 박 목사의 절친인 영국현지 박용주 목사의 끈으로 자발적 후원인들이 생겨났다. 더럼교회의 알렌목사와 이름을 밝히길 꺼려한 현지교포사업가가 영국체류 시 숙식과 모자라는 경비 등을 대겠다고 나선 것이다.

여기에 담쟁이넝쿨 후원인들도 힘을 보탰다. 20박21일 영국일정에 필요한 무려 6천만원에 달하는 경비는 이렇게 해서 마련됐다.

■ 좌충우돌  "정말 아껴 썼어요. 일인당 하루 숙박비와 교통비만 5만원에 달하는 현지물가를 극복하기 위해 갖은 애를 다 썼어요. 런던에선 매일 아침 샌드위치를 만들어 그날 끼니를 해결했죠. 차를 렌탈해 직접 운전했는데 현지교통체계에 익숙하지 못해 사고가 날 뻔한 아찔한 순간도 있었어요. 현지에서 겪은 우여곡절과 시행착오는 책 한권으로도 모자랄 정도입니다."

현지에선 아이들끼리도 투닥투닥 일들이 많았다. 낯선 타국에서 몸과 마음이 지친 아이들은 불평 불만의 화살을 종종 친구들에게 돌리곤 했다. 박 목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혹여 사고라도 날까싶어 걱정하는 마음은 종종 잔소리로 표출됐고, 이에 예민해진 아이들은 곧잘 원망과 짜증으로 응수했다. 박 목사는 여행 일주일째 되던 날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버밍엄의 숙소 앞 잔디밭에서 아이들에게 공개 사과했다.

박 목사의 이 발언은 몇몇 아이들에게 영국여행 중 가장 감동스런 장면으로 꼽히기도 한다.

"미안하다, 용서해다오 라고 솔직히 말했죠. 사실 히드로 공항에 처음 내렸을 때 어른이고 아이고 모두 멘붕 상태였어요. 긴장되고 불안한 가운데 그간 서로 잘 몰랐던 각자의 성격들이 액면 그대로 나온 거죠. 일단, 저부터 사과하고 그날 저녁 설거지를 했어요.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아이들이 스스로 설거지와 청소 당번을 정하고, 형들이 동생들을 살뜰히 챙겨주기 시작하는 거예요. 이후의 여정은 한층 가벼워졌고 감동은 더욱 진해졌죠."
 

■ 변화    아이들은 하루하루 변해갔다. 여행 8일째 날 포커스교회에서 앞 못 보는 영국어르신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훌륭히 마쳤고, 4박5일간의 야외캠프도 거뜬히 해냈다.

여행 마지막 날에는 자유여행의 기회를 줬는데 인솔해주는 어른들 없이 아이들끼리 런던시내 곳곳을 탐방하고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돌아왔다.

출국 날 오전에도 히드로공항 어디서 몇 시에 만나자고하고 자유여행시간을 줬는데 숙소에서 각자 떠난 아이들 모두 정확한 시간에 집결장소에 나타났다.

이번 영국여행이 첫 해외여행인 강윤지(개웅중1, 개봉3동) 양은 "단체생활을 하다 보니 가끔 불편할 때도 있고, 힘들었던 때도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서로 배려하고 인내하고 소통하면서 함께 생활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며 "가수 싸이 때문에 한국이 유명해진 줄 알았는데 아직 낯설어하는 외국인이 더 많은 것 같아 훗날 열심히 공부해서 어른이 되면 한국의 문화를 외국에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 도전   박 목사는 2년 후를 목표로 또 한 번의 해외탐험대를 준비할 계획이다. 그때는 지역사회와 함께 후원을 조직해서 좀 더 많은 청소년들의 참여를 도모할 생각이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멋진 어른이 되고픈 동기부여가 됐다는 점에서 영국탐험대는 성공한 프로젝트라고 말할 수 있죠. 하지만 제가 보기에 진정한 성과는 3~4년 후에 나타납니다. 이 아이들이 청년이 돼서 해외탐험을 떠나는 후배들을 인솔자로 이끌었을 때, 비로소 자기경험을 공유하고 나누는 진정한 변화와 성장을 맞게 되는 거죠. 기대해주세요. 담쟁이넝쿨의 해외탐험대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