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서 퇴원한 지 보름만에...

또 다른 복지사각지대 중장년 정신장애

2013-05-06     송희정 기자

지난달 30일 개봉2동의 한 연립주택 1층. 매캐한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부엌 한쪽에 일흔셋의 노모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곁에서 타다만 물건을 포대자루에 담고 있는 작은 아들도 말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송모(73) 어르신이 큰 딸(48), 큰 아들(44)과 함께 살고 있는 20평 남짓한 이곳은 이틀 전 화재를 당했다.

일요일이던 지난 4월 28일 낮 3시43분께 발생한 불로 작은방과 거실, 부엌 등이 전소돼 구로소방서 추산 1,000만원의 재산피해를 입었다. 이 불로 2층집에 사는 이모(43) 씨가 연기를 들이마셔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날 불은 송 어르신의 큰 아들이 낸 것이다.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큰 아들이 병원에서 퇴원한 지 불과 보름 만에 이 사단이 났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군 제대 후 복학해서 장학금까지 받아왔던 큰 아들은 20대 후반부터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앞길이 구만리 같은 아들 인생에 큰 오점을 남길까봐 장애등급 판정도 받지 않았다. 혹여 나이 들어 상태가 호전될 수도 있다는 일말의 희망이 지금껏 노모를 버티게 한 힘이었다.

서류상으로 정상인인 아들과 함께 살기에 정부의 각종 지원혜택에서도 비켜나 있다. 생활비는 30만원 남짓한 연금과 은행이자 몇 십 만원이 전부다. 세 식구 모두 별도의 벌이는 없다. 퇴원과 입원을 반복하는 아들 밑에 원금을 쏟아 붓느라 이제는 은행이자마저도 간당간당한 상태다.

상태가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아들을 다시 병원에 입원시킨 것이 지난 2월 중순의 일이었다. 하지만 갑갑하다며 집에 가고 싶다는 아들 성화에 두 달 만에 퇴원시키고는 곁에 두기로 했다.

불이 발생한 날 아들은 전에 없이 불안해했다. 쥐죽은 듯 조용한 집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며 종이에 끄적거리고는 다시 쓴 글을 읽고서 괴로워하는 행동을 계속했다.
  
힘들어하며 불 같이 화를 내는 아들을 피해 노모와 큰 딸이 집을 나간 사이 아들은 라이터로 종이에 불을 붙이다 불을 냈다. 아들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진 불에 놀라 노모에게 전화를 했고, 이날 노모의 119신고로 소방대원들이 출동해 불길을 잡았다.

송 어르신은 "불이 난 후 아들은 다시금 병원에 입원한 상태"라며 "장애가 심해 방화혐의로 입건되더라도 처벌은 안 된다지만 불에 탄 집을 복구하는 일이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중·장년의 경우 학령기아동에 비해 서비스지원체계가 부족해 상대적으로 복지서비스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때문에 이들에 대한 돌봄의 책임은 대부분 부모나 형제자매의 몫으로 오롯이 떠넘겨져 있다.

이웃들의 따스한 관심과 함께 지역사회기관의 적극적인 발굴과 서비스연계 노력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