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13주년 특집]IN구로마을이야기 2_이심전심 개봉3동이야기

"이것이 진정한 민주주의 아니겠어"

2013-03-13     송희정 기자

 개봉3동 개웅산 자락 거성아파트 뒤편은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단독·다가구주택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 전형적인 저층주거지다. 오래된 마을이 그러하듯 이곳 주민들은 지금도 볕 좋은 날이면 이웃집 마당에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즐기고, 골목어귀에 위치한 동네슈퍼에서 이웃집 안부를 나눈다. 의리 있고 정 깊은 시골마을의 정서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마을에 집을 소유한 주민 대부분 이곳에서 20~30년 이상 살아온 토박이 어르신들이다.
 
 ■ 2010년 시작된  성대 학생들과의  각별한 인연
이 마을에 지난 2010년 성균관대학교 학생들이 찾아왔다. 현재 인근 마을인 344번지 일대 경관협정사업의 총괄기획자(MP.Master Planner)로 있는 신중진 건축학과 교수의 지도로 마을만들기 현장수업에 참여한 대학원생들이다.

당시 학생들이 도출한 아이템은 국토해양부 도시활력증진지역 개발사업 공모에 당선돼 2억3,600만원(국비50:구비50)의 예산 지원을 받아 소막골·절골어린이공원 진입로와 마을마당, 거성A 옆 노후계단 개선공사 등이 진행됐다.

개봉3동과 각별한 인연을 맺은 성대 학생들은 2년 후 또 한 번 큰일을 벌였다.
당시 현장수업에 참여했던 정지혜 성대 도시건축연구실 연구원이 대학원생 박재우 씨와 학부생 양우경, 김용현, 소희 씨 등 4명과 함께 개봉3동 270번지 일대(거성A 뒤편) 6통, 7통, 21통 지역을 대상으로 서울시 '2012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 학생공모전에 응모한 작품이 '대상'에 선정된 것이다.
 
 ■ 서울시 공모전 대상 …      참여형 재생사업 현실화
'이심전심(이웃을 중심으로 안전하고 안심하는) 개봉3동 이야기'라는 이 작품은 최근 서울시 결정으로 학생들과 주민들이 도출한 아이템을 현실세계에 구현하는 주민참여형 재생사업으로 전환됐다. 시는 본격적인 지구단위계획 수립용역의 사전단계인 기초조사용역을 이례적으로 성대 학생들에게 맡겼다. 이미 두 차례 거사를 도모하면서 찰떡궁합 호흡을 자랑한 성대 학생들과 6·7·21통 주민들은 지난해 12월부터 매월 2회 진행하는 워크숍을 통해 살고픈 마을의 밑그림을 그려내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나는 처음에 기대 안했어. 당시 통장이었으니까 도움 주는 차원으로다 현장수업 나온 학생들을 만났는데 나중에 그것이 국토해양부 공모사업(2010년)에 선정됐대. 학생들도 기뻐하고 우리도 기뻐하고 난리 났지. 나중에 공사를 해서 계단도 말끔해지고 놀이터 분위기도 싹 바뀌니까 주민들이 나한테 고맙다고 말하더라고(웃음). 그때 한 번 덕을 봐서 작년에 학생들 또 왔을 때 우리 마을을 선택해준 그 자체만으로도 참 고맙더라고." 7통 김창한(63) 전 통장의 말이다.

 ■ "모든 일이 이렇게 진행되면 참 좋겠어"
12년 동안 수행했던 통장 일을 올 초에 내려놓은 김 전 통장은 지금까지 학생들과 함께한 작업에 대해 "진정한 민주주의의 토착화"라고 평가한다.

"행정기관이 하면 실제 주민들의 문제점을 빠트릴 수 있거든. 그리고 늘 주장하는 사람만 주장하게 돼. 그런데 모든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니 평소 목소리 내지 못했던 할머니들도 뭐라 뭐라 의견을 내게 돼. 시민의식도 높아졌어. 주민이 나서서 마을의 기반을 닦는다는 느낌이 좋아. 모든 일이 이렇게 진행되면 참 좋겠어."

학생들과 주민들의 유대가 처음부터 끈끈했던 것은 아니다. 2010년 수업과제 일환으로 들어왔을 때는 마을통장 등 소수의 주민들과 조우했고, 2012년 학생공모전을 준비할 때 역시 마을통장을 중심으로 몇몇 주민들하고 만났더랬다. 6통 이옥자(66) 통장은 작년 연말부터 시작된 주민참여형 재생사업 기초조사용역 과정에서 학생들과 첫 대면했다.

"집에 있는데 학생 3명이 찾아 왔더라고. 데면데면했는데 내가 차 한 잔을 내줬거든. 그런데 나중에 들으니 그 때 내가 엄청 친절하게 해줬다고 기억에 남는대(웃음). 처음엔 학생들인데 이게 제대로 될 수 있을까 싶었어. 그런데 이렇게들 우리 마을을 위해 열심히 해주니까 뭐가 보탬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돼. 열심히 도와주고 싶어. 나 엄청 많이 노력하거든(웃음)."

오래된 주택가가 다 그렇듯 이곳 역시 한때 개발바람이 불었다. 몇몇 주민들을 중심으로 개발추진위 비슷한 모임도 결성됐다. 하지만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1종과 2종이 혼재돼 있는 데다 부동산경기가 가라앉으면서 개발이야기는 자취를 감췄다.

그렇다고 노후한 주택가가 안고 있는 고질적 문제까지 함께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웃 간 얼굴 붉히게 만드는 심각한 주차난에다 골목골목 치안사각지대는 주민들의 큰 골칫거리다. 여기에 한 번 손대면 수백, 수천의 견적이 나올 법한 낡은 가옥의 문제도 산적해 있다. 이들 오래된 집들의 주인은 대부분 월세가 수입의 전부인 할머니, 할아버지시다. 김창한 전 통장과 이옥자 통장은 입을 모아 향후 진행될 지구단위계획 수립용역에 꼭 담겼으면 하는 마을개선방안을 이렇게 전한다.

 ■ 주차난해결 주택수리비보조 등 실현되길
"주차문제만이라도 해결되면 좋겠어. 애들과 손님이 와도 차 댈 곳이 없어 밥도 편하게 못 먹어. 또 오래된 집을 갖고 계신 할머니들은 당신들 스스로 수리도 못해. 때문에 세를 놓아도 집이 낡으니 싼 값에 살 수 있는 저소득층들이 많이 들어와. 세받느라 할머니들 속이 문드러져. 국가 보조나 저리융자 같은 시스템을 만들었으면 좋겠어. 놀이터 옆에 시유지가 있는데 거기도 주민이 활용할 수 있는 쉼터 비슷한 거 만들었으면 좋겠고…."

이곳의 주민참여형 재생사업은 이제 막 첫 발을 내딛은 것에 불과하다. 향후 지구단위계획수립을 위한 용역업체가 선정되면 약 6개월간의 용역기간을 거쳐 세부계획을 도출하게 된다. 성대 학생들은 3월말 기초조사용역이 끝난 후에도 주민들과 만날 계획이다. 정지혜 연구원은 주민이 도와달라고 메시지를 보내면 "당연히 출동"이라고 말한다.

 ■ 어르신들 SOS엔 "당연히 출동"
"개봉3동의 장점은 인적자원이 다른 동네와 비교할 수도 없게 훌륭하다는 거예요. 여기 어르신들은 사는 동네 말고도 옆 동네, 다른 통 얘기도 본인의 일처럼 말씀하세요. 순수하고 마을에 대한 애정이 깊은 분들이죠. 이런 모습을 뵈면 우리가 정말 수를 잘 내서 잘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전문용역업체가 들어오면 우리가 듣고 본 내용들을 최대한 잘 정리해서 전달해주는 것이 우리임무지만 이후에도 주민들을 돕는 일은 계속할 겁니다. 마을의 젊은 분들 참여가 부족한 게 사실인데 마을을 계속 만들어가다 보면 지금보다 넓은 계층의 참여가 일어날 거라고 생각해요. 길게 생각하면 희망이 더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