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갯속 가리봉개발 "희망은 어디에..."

가리봉균촉 지정 이후 '제자리걸음' 주민 허탈 분노 냉담

2012-02-17     송희정 기자
▲ 가리봉재정비촉진사업구역 전경. 구역지정후 7년 째 제자리걸음인 이곳은 최근 서울시 뉴타운 신정책발표가 있자 개발관련 무성한 소문들로 또 한차례 크게 술렁이고 있다.

 "묻지도 말고, (사진)찍지도 마셔. 뭔 놈의 개발…."


 점심 때 친구 분들과 나눈 반주 한 잔에 불콰해지신 이수창(가명, 70대) 어르신이 불 같이 성내며 한 마디 툭 던지신다. 여기선 개발의 'ㄱ'자도 꺼내지 말라신다.


 대기의 찬 기운이 가시고 볕이 내리쬐던 14일 오후 가리봉동. 다닥다닥 집들이 이어진 주택가 골목 어귀에서 만난 주민들의 마음은 수년째 육중한 자물쇠가 내걸린 가리봉마을한마당 앞 철문처럼 냉랭히 닫혀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2003년 11월 서울시 시범 균형발전촉진지구로 지정된 이래 무려 7년간 '계획단계'에서 제자리걸음이다. 지난 2010년 4월 재정악화 등으로 LH공사가 사업성 전면재검토라는 '악수(惡手)'를 던진 지도 벌써 2년 가깝게 흘렀다.


 그 사이 구로구청과 LH공사, 주민대표회의 등 3자주체가 '신사업방식'이라는 새로운 카드를 빼내들고 나름 분주히 움직이고 있지만, 여전히 가리봉재정비촉진사업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안개정국 속에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30일 서울시가 발표한 '뉴타운·정비사업 신정책구상'과 이달 1일 개정 공포된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은 들끓는 주민들의 마음에 기름을 끼얹었다.


 주민들은 대화 중간 중간에 "아예 해제를 해버리든가…"라는 말을 자주 토해냈다.


 "주민들이 구역 지정해 달라 매달렸나? 양 씨(양대웅 전 구청장)가 밀어붙였지. 그땐 그래도 부동산경기가 좋았을 때잖아. 지금은 아니야, 아니라고. 우리가 바본가? 신문도 보고 뉴스도 보고 다 아는데 매번 기다리래. 정치인들은 분명 총선, 대선까지 질질 끌 거야. 빨리 가든가, 빨리 해제하든가 뭔가 결정 좀 해보란 말이지. 제발 우리한테 희망을 좀 보여달라고."


 가리봉 인근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한 점포주(60대)가 최근 마을민심에 대해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며 속사포처럼 이어붙인 말이다. 일간지 기자들처럼 겉만 훑지 말고 속을 들여다보라는 권고에 주택가 골목 후미진 곳까지 발길을 옮겼다.


 "저기 집들 좀 봐요. 죄다 금가고 벽체가 후두둑 떨어져요. 외풍 때문에 비닐 없으면 겨울을 나지도 못해요. 사람살이가 이런데 작년에 LH가 공시지가의 120%를 쳐준다니까 다들 난리가 났죠. 최근엔 서울시 발표가 있자 해제대상이다, 아니다, 실태조사 한다, 안 한 등등 소문만 무성하고 누구하나 속 시원히 말해주는 사람이 없어요. 답답하죠."

 일부 주민 개발반대 서명운동

 서울시발표이후 소문 무성


 가리봉교회 인근 주택가에서 만난 이채원(가명, 여, 50대) 씨의 하소연이다. 가리봉동의 일부 주민들은 지난해 말부터 개발반대를 위한 주민서명을 받고 있다.


 가리봉비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현재 약 300명 가까운 주민들이 서명에 동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원희 가리봉동주민자치위원장은 "(서울시 발표처럼) 세입자, 수급자 다 도와주면 여기 사업성은 지금보다 더 떨어질 것"이라며 "늦어도 총선 끝나면 전체주민설명회를  열어 개발 반대가 50% 넘으면 가리봉균촉은 없던 일로 하고 주민들의 고충을 해결할 다른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도정법에 따르면, 가리봉재정비촉진사업처럼 추진주체가 구성된 구역의 경우 토지등소유자 10~25% 이상의 동의가 전제될 경우 구청장이 실태조사를 실시할 수 있으며, 이후 주민여론 수렴을 통해 취소를 요청할 때는 해제를 추진할 수 있다. 단, 추진위나 조합(가리봉의 경우 주민대표회의) 설립에 동의한 토지등소유자의 1/2~2/3 또는 전체 토지등소유자 50%의 동의로 해산을 신청하는 경우에만 해당된다. 구체적인 동의율과 방법 등은 오는 4월경 서울시 조례로 확정될 예정이다.


 구로구청과 LH공사, 주민대표회의 등 3자는 16일 오후 3시 현재 서울의 모처에서 가리봉재정비촉진사업 관련해 민간건설사 대상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 관계자는 "가리봉재정비촉진사업은 서울시가 최근 발표한 실태조사 의무대상인 317개소에는 해당되지 않지만 추진주체가 구성돼 있기에 조합(주민대표회의) 설립에 동의한 토지등소유자 1/2~2/3 혹은 전체 토지등소유자 50% 이상의 동의로 해제 가능한 293개소에는 포함돼 있다"며 "(293개소에 대한) 실태조사 및 해제 관련 구체적인 지침과 동의율 등은 4월 중 시 조례로 제정되기에 실태조사 등도 조례 제정 이후에나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가리봉 전체주민설명회는 법정설명회이기는 하지만 선거법에 저촉될 우려가 있어 4월 총선 이후에 개최할 예정"이라며 "최근 바뀐 도정법에 따라 개략적인 추정분담금 표준치를 마련해서 주민전체설명회를 갖고 만일 설명회장에서 극과 극의 의견이 나온다면 서면조사 등을 통해 다수의 주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고 말했다.